밀라노의 한인 2세대, 안토니오 임
밀라노에 있는 한인교회에 가면 많은 한국인 청년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성악으로 유학을 온 친구들이고 패션이나 디자인 분야로 유학을 온 친구들도 있다. 젊은 나이에 꿈을 위해 부모님 곁을 떠나 스스로 공부하고 삶을 개척하는 이들을 보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참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유학생의 삶이 만만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외모는 한국 사람이지만, 이탈리아 말과 제스처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친구들이 있다. 바로 한인 2세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은 부모님이 이곳으로 유학을 온 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탈리아에 남는 걸 선택했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 이 친구들을 볼 때마다 이탈리아 한인 2세의 삶이 과연 어땠을지 궁금했다. 지금이야 코리아가 어떤 나라인지 다들 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코리아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럽의 나라에서 동양인의 외모로 살아가는 건 과연 어떨까?
이번에 만난 안토니오가 바로 이탈리아 한인 2세이다. 그와 인터뷰를 하는 중에 크게 놀란 게 한 가지 있었다. 한인 2세로 이탈리아에 사는 것이 많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지금 바로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겠다.
선량: 자기소개 부탁드려요(웃음).
안토니오: 안녕하세요! 저는 로마에서 태어나서 8년을 살았고, 한국에서 약 1년을 살았고요. 다시 로마로 와서 2년 살다가 베네치아에 가서 10년을 살았습니다. 베니스에서 초중고를 졸업했고요, 로마에서 대학을 다녔어요. 근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대학 마지막 학기는 베니스에서 비대면으로 수업 듣고 졸업했습니다.
선량: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셨는데 지금은 밀라노에 살고 계시군요. 거기에도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건 나중에 물어볼게요. 먼저 부모님은 어떻게 이탈리아에 오시게 되셨나요?
안토니오: 부모님은 90년대 초반에 성악으로 유학을 오셨어요.
선량: 아, 부모님께서 성악으로 유학을 오셨다가 안토니오와 동생을 낳으셨군요. 그런 분들이 꽤 많더라구요.
안토니오: 네. 저희 부모님도 그러셨어요.
선량: 여기서 계속 성악을 하셨나요?
안토니오: 아니요. 부모님은 2천 년대 초반까지 성악을 하셨고요. 제가 5살 때 IMF가 터져서 그때 그만두셨어요.
선량: IMF가 참 여러 가정을 힘들게 했죠. 부모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안토니오: 아버지는 지금 베네치아에 계시고, 어머니는 건강 문제로 2년 전에 한국에 가셨어요. 이제 곧 오실 거예요.
선량: 그렇군요. 한인 2세로 이탈리아에 살면서 학교 다니는 건 힘들지 않았나요?
안토니오: 저는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그냥, 평안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선량: 의외네요. 한인 2세들 중에 굉장히 힘들게 학교를 다닌 친구들을 봤거든요. 특히 베네치아나 로마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고 들었거든요.
안토니오: 사실 저희는 베네치아 본섬에 살진 않았으니까요. 본섬에서 좀 떨어진 시골에 살았어요. 가끔 식당에 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막 느껴지긴 했죠. 그리고 가끔 '니하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크게 차별을 하거나 하진 않았어요.
선량: 저는 모든 한인 2세들이 그런 차별을 당하며 살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제가 가진 편견이었나 봐요.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는 게 힘들진 않았나요?
안토니오: 저는 로마에서 이탈리아 현지 학교를 초등학교까지 다니다가 베네치아로 와서는 국제학교를 다녔어요. 그때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고등학교 때였어요. 친구는 있었지만 학교 생활이 재미가 없었어요. 공부도 별로 관심이 없었고요, 성적도 좋지 않았고요.
선량: 그때 주로 뭘 했었나요?
안토니오: 저는 공부 안 하고 게임하거나 축구를 했어요. 제가 촌동네에 살았는데요, 집 밖으로 나가면 허허벌판이었거든요. 옥수수밭이 있었어요. 시내 놀러 가려면 버스 타고, 기차 타고 가야 했죠. 그래서 주로 온라인에서 활동을 많이 했어요(웃음).
선량: 부모님께서 걱정이 많으셨겠어요.
안토니오: 제 동생이 저보다 5살이 어려요. 제가 첫째다 보니 저에게 공부에 대한 기대나 압박이 심하셨죠. 한 번은 가족이 놀러를 가는데 저만 집에 남아서 공부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정말 억울했어요. 그런데 나중엔 시켜도 안 된다는 걸 부모님께서 아신 것 같아요(웃음). 동생한테는 중학생 때까지 공부하라고 하시더니 그 뒤로는 그냥 내버려 두시더라고요. 좀 못해도 막 칭찬해 주시고, 알아서 하라고 그러시고요. 제 생각엔 공부를 아무리 시켜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것 같아요. 나중에 부작용이 와요. 그런 사람 많이 봤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선량: 그렇게 공부하기 싫어했던 안토니오도 안토니오 동생도 지금 잘 커서 스스로 자기의 길을 가고 있으니, 부모님께서 정말 든든하실 것 같네요.
한국에서 잠시 학교를 다녔다고 했는데 그때는 어땠나요?
안토니오: 음.... 안 좋은 기억이 너무 많아요.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은 추억이라 생각하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죠.
선량: 저희 아이들도 한국에서 학교를 한 번도 안 다녀봤잖아요. 그래서 한국 학교에 대한 공포가 좀 있어요. 주로 학교에 대한 안 좋은 뉴스만 기사에 나오니까요. 안토니오는 어땠나요?
안토니오: 제가 정식으로 입학하기 전에 잠시 학교에 방문을 했었어요. 그런데 애들이 저를 외계인처럼 보는 거예요. 제가 생긴 건 완전히 한국 사람인데 이탈리아에서 살다 온 아이라고 하니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나 봐요. 입학한 후엔 학교 밖에선 친구가 몇 명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친구가 없었어요. 아이들이 왕따를 시키거나 그냥 저를 무시하더라고요. 공부도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 교과서의 흰 공백이 있잖아요. 거기에 빼곡히 메모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한국 학교를 1년 정도 다녔는데요, 제가 적응을 너무 못하니까 어머니가 안 되겠다 생각하셨어요. 아버지가 이탈리아 일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오셔서 취직을 하려고 했는데 다시 이탈리아에 남기로 하셨죠.
선량: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나와 조금 다른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그래도 부모님께서 안토니오를 위해 큰 결심을 하셨던 것 같네요.
근데 한국에서 학교를 1년밖에 안 다녔는데도 한국말을 엄청 잘하는데요?
안토니오: 모두 부모님 덕분입니다. 집에서는 한국말만 하고요, 한인교회에서도 한국말을 썼고, 토요일마다 한글학교도 다녔으니까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근데 2세들끼리 만나면 여전히 이탈리아어로 대화해요.
선량: 동생과는 어떤 말로 대화하나요?
안토니오: 동생과는 이탈리아어로 대화해요.
선량: 오, 정말요? 저희 아이들은 프랑스학교를 다니면서도 둘이 한국말로만 대화해요. 학교에서도 둘이 우연히 만나면 한국말만 한데요. 참 희한하죠. 저희 아이들은 유튜브로 한국말 배워요. 요즘엔 mz 신조어까지 말하더라고요.
베네치아, 로마에서 주로 사셨는데 지금은 밀라노에 살면서 직장을 다니고 있잖아요. 그것도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하고 계시는데요, 어떻게 밀라노로 오게 되셨나요?
안토니오: 제 전공이 '외교국제정세'였어요. 거기 나오면 대학원을 가서 유엔이나 국제기구로 주로 취직을 해요. 그런데 대학 마지막 학년 때 코로나 때문에 거의 비대면으로 수업을 했어요. 그때 대학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3개월을 살다 온 후에 밀라노로 와서 취직을 했어요. 사실 밀라노에 대한 기억이 좋았어요. 현대적인 건물도 좋아 보였 고요. 또 일자리가 다른 도시에 비해 많고, 기회가 많으니까요.
선량: 한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녀도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래도 독립해서 혼자 살기엔 돈이 많이 드니까요. 그런데 안토니오는 좀 이른 나이에 독립을 한 것 같아요. 언제 독립했나요?
안토니오: 저는 스물두 살 때 독립했어요. 직장생활을 하니까 부모님과 살기가 싫더라고요. 그리고 한 집에 살면 그렇게 싸우게 되더라고요. 가족이랑 좀 떨어져서 지내니까 오히려 사이가 좋아진 것 같아요. 저는 20년 동안 부모님께서 뒷바라지해주셨는데, 성인이 되어서까지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지 않았어요. 대학교 졸업하면 무조건 독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죠.
선량: 동생도 그럼 독립을 했나요?
안토니오: 동생은 지금 네덜란드에 살고 있어요. 원래는 파리에 있는 대학에 입학을 했는데 안 맞는다고 자퇴를 한 거예요. 그런데 동생도 부모님 아래서 의지하면서 살기 싫다고 네덜란드로 가더니 거기서 돈 벌면서 하고 싶은 음악을 배우고 있죠.
선량: 와우. 정말 의외네요. 네덜란드에 살다니.
안토니오: 거기가 더 재밌다고 해요. 영어도 훨씬 더 잘 통하고요. 다인종이라서 생활하기가 훨씬 편하다고 해요. 지금은 일식집에서 라면 만들고, 타코야키 만들면서 돈 벌고 있죠.
선량: 아들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지지해 주는 부모님들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도 아이들에게 스무 살 넘으면 독립이다~라고 말은 하지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는 건 어떤가요? 한국의 기업문화 때문에 힘들진 않나요?
안토니오: 나쁘지 않아요. 좋아요.
선량: 요즘 이탈리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한인 2세 구하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어, 영어, 이탈리아어 모두 되는 친구들이니까요. 근데 아무래도 한인 2세라고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니 생각이나 문화는 이탈리아 스러울 것 같아요.
안토니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장점은 이탈리아 문화와 한국 문화 둘 다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에요. 보고 배운 게 있다 보니 눈치가 있어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알죠. 이탈리아 사람들과는 조금 더 사교적으로 수다도 떨고 커피도 마시면서 친근하게 지낼 수 있고요. 상황에 맞춰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있죠.
단점은 어쨌든 저희도 이탈리아 사람인데 한국문화를 따라야 한다는 게 좀 부담이 되죠. 샌드백이 1킬로만 있으면 되는데 2킬로가 있는 느낌. 그런 게 좀 쉽지 않아요.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한국인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그래도 괜찮은데 더 이탈리아 스러운 친구들은 아무래도 힘들어하죠.
선량: 안토니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참 단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께서 그렇게 자녀들을 믿고 지지해 주면서 키웠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안토니오: 사실 저희 부모님께서 일이 너무 바빠서 자리를 많이 비우셨어요. 밤늦게 들어오시기도 하고, 저희한테 신경을 많이 못 쓰셨죠. 두 분이 많이 싸우기도 하셨고요. 부모님은 지금도 그 일을 미안해하세요. 그런데 부모님도 부모님 역할이 처음이셨으니까 서툰 부분이 있으셨을 거라 생각해요. 그때는 저도 어렸기에 상처도 받았지만, 서로 부딪히고 싸우고, 화해하고 안아주면서 지금의 저희가 된 것 같아요. 많이 단단해졌지요. 그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경제적인 서포트를 많이 해주셨어요. 덕분에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부모님께 정말 감사해요.
선량: 부족함 없이 살았다는 걸 알아주는 아들이 얼마나 고마울까요.
저는 종종 제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할까.... 한 번씩 떠올려 봐요. 저는 아이들을 저를 믿고 기다려주던 엄마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어요. 안토니오와 안토니오의 동생이 지금 자신만의 길을 잘 갈 수 있는 것도 곁에서 믿고 기다려 준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겠죠.
안토니오를 보니, 아이들이 공부 좀 못해도 혼내지 말아야겠어요. 공부할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하고, 안 할 아이들은 아무리 시켜도 안 한다는 말, 기억할게요.
끝으로, 지금 옆에 계신 예나 씨의 어떤 면에 반하셨나요?
안토니오: (웃음) 예나 씨는 긍정적이고 마음이 넓어요. 제가 허튼짓을 하고 말을 이상하게 할 때 다른 사람들은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예나 씨는 '그럴 수 있지' 이렇게 말해주더라고요. 제가 가끔 선을 넘는데요, 그러면 예나 씨도 가만히 있지 않아요. 그게 오히려 다행인 것 같아요. 이 사람도 선이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사랑할 줄 알고, 이해해 주고, 예쁜 건 너무 당연하고요. 제 부족함을 많이 채워줘요. 그래서 좋아합니다.
선량: 사실, 얼마 전에 예나 씨의 첫 남자친구가 안토니오라고 하길래 저랑 제 남편이 "여러 사람을 만나 봐라. 처음 만난 사람과 결혼까지 하는 건 너무 아깝다."라고 말했었거든요. 안토니오에게 좀 미안해지네요.ㅎㅎㅎ
그럼 예나 씨는 안토니오의 어떤 점이 좋았나요?
예나: 저는 안토니오의 표현력이 좋았어요. 사실 그전에도 저에게 대시를 한 사람이 여러 명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하면 다들 나가떨어졌었어요. 근데 안토니오는 계속하는 거예요. 저는 남자로 안 보인다,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했는데 이 친구가 "나는 친구로는 못 지낸다. 사귀는 거 아니면 널 만날 이유가 없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제가 결정을 해야 했죠. 그래서 한번 만나보자 하고 시작을 했어요.
선량: 역시, 안토니오는 이탈리아 남자였군요. 이탈리아 남자들 얼마나 말 잘하고, 표현력 좋은지... 한국 여자들이 껌뻑 넘어간다고 하잖아요.
지금 옆에 계신 제 남편의 표정은 "아이고, 좋을 때다~" 이런 표정이네요. ㅎㅎㅎㅎ
두 분 성향이 다른 것 같지만, 또 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단단한 무언가가 느껴지네요.
두 분 모두 지금 각기 다른 한국기업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데요, 일도 사랑도, 모두 잘 이루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밀라노에 살고 있는 두 청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예나 씨도, 안토니오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지난 삶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미래에 대해 기대할 줄 안다.
이것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 봐야 터득할 수 있는 삶의 지혜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청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