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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Sep 16. 2024

중세도시를 거닐며 젤라토를 먹다 <몬테리조니>

이탈리아의 여름이 그리워 질 때

시에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에 있는 도시 중 하나로 아름다운 소도시 여행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우리는 여러 소도시 중에 가장 먼저 몬테리조니에 가보기로 했다. 에어비엔비 숙소가 있는 카스텔누오보 베라르덴가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이탈리아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지속적으로 분열되어 여러 도시국가로 존재했다. 그러다 1859년에서 1870년 사이, 사보이아 가문이 통치하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을 중심으로 여러 도시국가가 통일되기 시작했다. 거의 천년 만의 국가통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라가 하나로 통일된 지 겨우 1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보니 지역색깔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타 지역에 대한 적대감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역에 대한 자부심 또한 남다르다. 이는 이탈리아 축구 리그인 '세리에' 경기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세리에 축구경기가 있는 날에는 서로 몸조심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행정과 경제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이탈리아는 각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에 위치한 대형 마트에 가보면 대형유통업체의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나는 상품이 주를 이룬다. 와인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곳에 가던지 "우리 고장 와인이 최고다"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그 지역의 문화유적지와 역사적 장소가 존재한다. 몬테리조니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몬테 리조니 입구



몬테리조니(Monteriggioni)는 작은 언덕 위에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중세마을로 1214~19년에 시에나 인들이 피렌체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성이다. 중세시대에는 시에나와 피렌체의 분쟁이 심했는데 몬테리조니가 방어 전략적인 위치였던 것이다. 시에나 인들은 이곳에서 피렌체와 다른 여러 도시 국가의 침공을 견뎌냈다고 전해진다.


몬테리조니는 단테의 <신곡>에  언급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유비소프트 사의 게임 《어쌔신 크리드 II》에등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근에 우리나라 방송인 홍진경 님이 방문해 조금 더 알려지기도 했다.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님 유튜브

800년 전에 만들어진 도시 모습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그곳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게 놀랍다.


800년 된 건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도시 여기저기를 걷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올록볼록한 돌의 곡선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개울가의의 돌 징검다리를 건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80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돌바닥 아래로 전기와 가스가 흐른다고 하니, 과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조하는 것 같다. 이 도시에 전기와 가스를 연결할 때 돌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겨 빼내었다가 공사를 모두 마친 후엔 모자이크 하듯 번호를 맞춰 돌을 제 자리에 끼웠다고 한다. 과거를 과거로만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으로 이끌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력과 지혜에 감탄이 절로 났다.

현금인출기

오래된 건물 사이에 현금인출기계가 보였다. 남편이 그곳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동안 우리는 오래전에 사용했을 법한 우물 앞에서 이것저것 만져보았다. 삶의 공간과 문화유적지의 공간이 나누어져있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이 뭔가 신비로웠다.


해가 질 무렵 작은 도시의 광장엔 저녁을 먹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한쪽에선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또 한쪽에선 가족들이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여러 언어가 섞여 들려왔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한국말로 웃고 떠들었다.

이 작은 도시를 보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여행을 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한편으론 내가 밀라노에 살고 있다는 게 정말 감사했다.


몬테리조니 광장

우리는 숙소에서 라면을 먹고 나왔기에 배가 고프지 않았다. 대신 뜨거운 햇살을 식히기 위해 젤라토를 하나씩 사서 벤치에 앉았다. 뉘엿뉘엿 지는 태양 뒤로 시원한 바람이 한줄기 불어왔다. 그때 마침 광장 앞에 있던 성당에서 저녁 8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아름다운 중세시대의 도시를 바라보는 눈,

근처 식당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토마토 스파게티 냄새,

여행지에 있는 행복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들리는 교회 종소리,

시원한 젤라토의 촉감,

그리고 달콤한 젤라토의 맛까지.

오감을 가득 만족시켜 주는 몬테리조니에서 나는 내 삶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떠올려보았다.


우리는 대부분 알려진 장소를 선호한다. 이탈리아 패키지여행을 갈 때 베네치아-로마-피렌체 등 꼭 누구나 아는 도시를 다녀와야 진짜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곳이 아닌 이렇게 숨어있는 보석 같은 곳이 있다. 이런 보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뜨겁게 내리쬐던 해가 지고 나니 오랜 역사를 품은 도시 곳곳으로 시원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이게 바로 이탈리아의 여름이다.

영원히  뜨거운 것도, 영원히 추우운 것도 없으니,

해가 있을 때 마음껏 햇살을 받고,

바람이 불 때 마음껏 바람을 품는 것.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 여유 하나 놓아두는 것.

이것 바로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필요한 마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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