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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Sep 02. 2024

별똥별이 떨어지던 밤 같은 하늘을 보며

<카스텔누오보 베라르덴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행 당일이 되었다.

아이들은 이미 며칠 전 작은 캐리어에 각자의 짐을 챙겨두었다. 남편은 당일날 아침에 일어나 옷을 대충 골라 캐리어에 쑤셔 넣는다. 언제나 미리 짐을 챙기지 않는 이 사람이 참 신기하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주먹밥을 만들었다. 아침에 출발해 시에나까지 가려면 4시간이 족히 걸리는데 분명 배가 고플 게 뻔하다. 물론 휴게소에 들러 샌드위치나 파니니를 사 먹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나이 들수록 빵종류에 손에 가질 않는다. 나는 잘 익은 김치와 (이탈리아산) 리오 참치를 함께 볶아 참치김치를 만든 후 하얀 쌀밥을 동그랗게 말아 그 안에 넣었다. 겉에는 김가루를 잔뜩 묻혀 한번 더 손으로 동글동글 말아주었다. 이것이야 말로 동서양 조화의 맛이 아닌가!!!


우리는 매번 에어비엔비로 숙소를 예약한다.

남들처럼 호텔에 머물면서 조식도 먹고, 룸서비스도 시켜 먹고 싶지만, 우리 형편에 에어비엔비도 감지덕지다. 에어비엔비 숙소에서는 밥을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한다. 9박 10일 동안 얼마나 해먹을지 감이 오지 않아 일단 눈에 보이는 것들을 챙겨 넣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쌈장, 고춧가루, 간장, 참기름, 김치이다. 이것들은 일반 마트에서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짐을 조금만 챙기려고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주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꼴이 되었다. 어쩔 수 없다.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



남편이 구글맵으로 목적지를 잡았다. 이름도 처음 들어본 "카스텔누오보 베라르덴가' 우리말로 하자면 "새로운 성, 베라르덴가"이다. 거기가 어떤 곳인지 검색을 해봐도 정보가 없다. 근처에 유명한 곳도 없다. 그저 포도주 농장이 근처에 많다는 내용만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와이너리 투어를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우리 남편은 와인을 안 마시니 그것도 패스.


"숙소를 왜 여기로 잡았어?"

궁금해서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시에나와도 가깝고 다른 장소와도 가까워서."



그는 항상 숙소를 이런 식으로 잡는다. 시에나에 여행을 가지만 숙소는 시에나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잡는다. 그래야 시에나도 보고 다른 지역도 볼 수 있다면서. 퍼뜩 지난 크리스마스 때 떠났던 여행이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마캣으로 유명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로 여행을 간다고 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Mahlberg라는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이었다. 라인강을 가운데 두고 동쪽은 독일, 서쪽은 프랑스인데 독일의 물가가 훨씬 싸고, 운전해서 가면 1시간 안에 스트라스 부르, 콜마르 등 프랑스도 여행할 수 있고, 숙소 근처의 독일도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남편은 말했다. 이렇듯 남편은 일타 쌍피를 노리는 여행을 한다.


운전은 오롯이 남편의 몫이다. 20년 장롱면허 소지자인 나는 운전을 험하게 하는 이탈리아에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운전연수를 받아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남편은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얼마나 운전을 뭐같이 하는지 아느냐면서. 덕분에 조수석에 앉아 편하게 갈 것 같지만, 조수석 역시 바쁘다. 과자를 까서 입에 넣어주고, 생수 뚜껑도 열어주고, 구글맵이 이상하면 다시 잡아주고, 운전자가 지루하지 않게 유튜브도 적절하게 찾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2시간 정도 지난 후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이탈리아 고속도로에서 휴게소에 갈 때마다 한국의 휴게소가 그리워진다. 그중에서도 버터감자와 핫바와 소떡이 가장 그립다. 대신 이곳엔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브리오쉬와 파니니가 있다. 아이들이 휴게소 매점에서 감자칩과 콜라를 살 때 나는 휴게소 바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고소하면서도 쌉쌀한 만 끝에 딸려오는 설탕의 단맛. 한국에 가면 이 맛이 분명 그리워질 게  뻔하다. 미래에 느낄 너무나도 당연한 이 그리움 때문에 커피를 끊지 못한다....


다시 2시간을 달려 숙소가 있는 카스텔누오보 베라르덴가에 도착했다. 그 마을은 꽤 작았지만, 전원주택이 여러 개 있고, 중심엔 바와 식당, 그리고 큰 성이 하나 있었다. 숙소 앞에서 기다리니 주인아주머니가 열쇠뭉치를 들고 나왔다.  

한국의 에어비엔비는 대부분 비대면이다. 출입문은 미리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면 되고, 이미 프린트된 안내사항을 읽으면 끝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에어비엔비는 모든 게 '대면'이다. 대부분의 집이 열쇠로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문, 출입문, 현관문. 이렇게 문도 여러 개여서 열쇠 꾸러미도 주렁주렁이다.

인자한 인상을 풍기는 주인아주머니는 그 집의 1층에 살고 있었고, 우리가 잠시 머물 곳은 2층이었다. 우리는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며 어설픈 이탈리아어로 소통을 했다. 드디어 2층 숙소에 들어간 후 아주머니는 냉장고부터 욕실, 침실, 발코니까지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아주머니의 말을 알아듣는 날 보며 이탈리아어 공부를 한 게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심지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확인하는 일이었고, 장시간 운전 한 남편은 소파에 널브러져 쉬는 일이었다. 나는 집에서부터 가져온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고, 숙소에 구비되어 있는 커피 머신에 커피 캡슐을 넣었다.  아.... 어찌하여 캡슐 커피조차도 맛있단 말인가..... 내가 커피를 끊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카스텔누오보 베라르덴가



여행을 간 첫날은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은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 근처 가게를 검색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연 가게가 없다.

"그냥 컵라면 먹자."

냄비에 밥을 하고, 김치를 꺼냈다. 물을 끓여 컵라면에 물을 붓고 3분을 기다렸다. 먹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가족들이 고마웠다. 하긴, 아이들은 컵라면이 가장 맛있을 것이다.




어느새 해가 지가 어둠이 내렸다. 낮에 주인아주머니가 했던 말이 퍼뜩 생각났다.

"밤에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이 정말 아름다워요."


그 말은 정말이었다. 저 멀리 성벽에서 비치는 불빛이 은은하게 퍼졌고, 어디선가 뻐꾸기가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쏟아질 것처럼 반짝였다.



"우와, 잠깐 나와봐. 하늘에 별이 한가득이야."

발코니에 있던 소파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어, 별똥별이다."

"어디 어디?"

남편의 말에 아이들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 저기. 나도 봤어."

그때부터 우리는 하늘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별똥별을 기다렸다.

"나는 아직 못 봤어."

"여기저기 보지 말고 한 곳만 오랫동안 응시해 봐. 그러면 보일 거야."

아빠의 말에 딸아이는 동쪽 하늘을, 아들아이는 서쪽 하늘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어, 저기!"

나와 딸아이가 같은 곳을 바라보다가 동시에 소리쳤다.

"내 버킷리스트가 별똥별 보면서 소원빌기였는데!"

"야, 별똥별은 그냥 돌덩이야. 저기다 소원 빈다고 이루어질 것 같아?"

"아 뭐야. 오빠 진짜 대문자 T야."

아들의 방해에도 상관없이 딸아이는 소원을 빌었다.

"이번 새 학년에 반 배정 좋게 해 주세요. 좋은 친구 만나게 해 주세요...."



내일이면 새 학년이 시작된다. 딸아이는 5년 동안의 초등과정을 마치고 이제 중등 1학년(프랑스학제로 6 eme)이 된다.

3살 때 방글라데시에서 시작한 프랑스 교육을 11살이 된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미래에 대한 정확한 명확한 계획 없이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이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계획한 여행은 아니지만, 이렇게 기대하지 못한 곳에서 기쁨을 맛보는 여행. 우리가 같은 곳의 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별을 보고 함께 웃고 떠드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나는 분명, 먼 훗날 이 날을 엄청나게 그리워할 것이다.

그 미래를 떠올리면 지금도 울컥 눈물이 차오른다.

castelnuovo Berardenga, Siena, Italy. 2024.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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