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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ug 22. 2024

<프롤로그> 이탈리아의 여름이 그리워질 때 꺼내 읽어요

이탈리아의 여름이 그리워질 때

이탈리아의 8월은 "쉬는 달"입니다. 말 그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으로, 들로, 바다로 휴가를 떠납니다. 몇 개의 대형 마트를 제외한 상점들도, 유명한 가게도 한 달씩 문을 닫아요. 그건 회사도 마찬가지인데요, 성모승천일인 8월 15일을 전후로 대기업이든, 작은 회사든 모두 문을 닫고 여행을 떠나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여름휴가를 위해 일 년을 일한다고 말하는데요, 이처럼 8월 여름휴가는 이곳 사람들에게 '일요일은 쉬는 날'처럼 일상적인 것입니다.

이탈리아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여름 방학을 맞아 본국에 다녀옵니다. 한국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아이들은 학원에 보내 뒤쳐진 공부를 시키기도 합니다. 저희는 작년에 한국에 다녀왔기 때문에 올해는 이탈리아에 머물기로 했어요. 한국에 한번 가려면 비행기 값부터 체류비까지, 어마어마하게 돈이 들거든요.


"우리 이탈리아 남부 여행이나 다녀올까? 소렌토, 포지타노에 한번 가보는 거 어때?"

"그럴까?"

"거기 가려면 미리 숙소를 예약해야 한대. 여름 다 돼서 예약하려면 숙소가 없대."


지난 3월, 여름휴가를 어디서 어떻게 보낼지 의논하다가 남편에게 넌지시 물었어요. 마침 이탈리아 체류허가증이 만료되어 재신청을 했는데 미팅 날짜가 8월 말로 잡혔습니다. 체류 허가증이 없으면 유럽 다른 나라로 갈 수가 없기에 꼼짝없이 이탈리아에 머물러야 했지요. 그렇다고 집에서 긴긴 휴가를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남편은 제 말에 에어비엔비 앱을 켜고 숙소를 검색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며칠 뒤, 그가 말했습니다.


"숙소 예약했어."

"뭐? 벌써? 언제 가는 건데?"

"8월 중순. 일단 소렌토 숙소만 예약했어. 거긴 미리 예약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근데 밀라노에서 소렌토까지 가려면 10시간 정도 걸리니까 중간에 다른 곳에 들려서 갈 거야. 그건 나중에 천천히 예약하면 될 것 같아."


소렌토, 포지타노는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어요. 층층이 올려진 알록달록한 집 앞에 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는 마치 환상 속의 장소처럼 보였습니다.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 또한 '너무 멋있고, 아름답다'는 내용뿐이었지요. 몇 년 전에 포지타노에 다녀온 둘째 고모가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도 했어요. 그러니 그곳에 대한 기대와 환상은 점점 더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그런 곳을 우리가 직접 가볼 수 있게 되었다니, 꿈만 같았습니다.

딱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요,  바로 계절이 이었어요. 이탈리아의 여름이 얼마나 더운지, 게다가 남부지방의 여름이 어느 정도나 더운지 저희는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을 위해 봄부터 준비했어요. 바로 비키니를 입기 위한 준비였지요. 소렌토의 푸른 바다에 비키니를 입고 풍덩 들어갈 계획이었습니다. 44년 인생 동안 신혼여행 때 딱 한번 입어보고, 그 이후론 단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던 비키니를 사두었어요. 그리고 저녁을 먹지 않고, 되도록 탄수화물을 자제하고, 날마다 1시간 이상 공원을 걷거나 뛰면서 운동했습니다. 저는 올해 들어 갑자기 살이 찐 후 빠지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겸사겸사 '비키니'라는 목표를 정해두고 운동과 식이조절을 하면서 날마다 체중을 체크했지요. 꿈쩍도 안 하던 체중이 여름이 되니 3킬로 정도 빠졌어요. 하지만 뱃살은 여전했습니다.  저는 과연 이 상태로 비키니를 입을 수 있었을까요?

이런저런 의구심과 걱정을 안고 여름, 이탈리아 여행을 위한 짐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밀라노 집으로 돌아와 지난 여행 때 찍은 사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여행 내내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매 순간 충만했어요. 시간이 더 지나면 이 충만했던 감정이 빛바랜 사진처럼 퇴색될 것 같았어요. 추억이 많은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죠. 저는 기억이 추억으로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얼른 목차를 적어두었습니다.  

이 기록이 이탈리아의 여름이 그리운 누군가에게 가 닿아 잊고 있었던 추억을 떠올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는 이탈리아의 여름이 궁금하신 분들에게 작게나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길 바랍니다.


염두에 둘 것은 이 여행에 동행한 두 아이가 모두 십 대라는 사실입니다. 한 아이는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한 아이는 이제 곧 사춘기가 시작될 예정입니다....(긴 말 필요 없겠지요....)


매주 월요일, 이탈리아의 여름 여행에 동행하실 독자님들, 모이세요~~


여름, 포지타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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