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찌에 성당
밀라노에 산지 2년 반이 되었다. 그동안 밀라노에서 유명한 곳들을 여행하듯 방문했지만, 가보지 못한 장소가 한 군데 있었다. 그곳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위대한 작품, 최후의 만찬 벽화가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이었다. 그 성당은 밀라노 시내에 위치해 있는데 여러 번 그 곁을 지나쳤지만, 정작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티켓 구매가 하늘의 별따기였기 때문이다. 공식 사이트에서 저렴하게 티켓을 사려면 3개월 전, 정해진 날짜에 티켓을 사야 한다. 하지만 오픈하자마자 매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전부터 꼭 한번 가보려 했지만 매번 시기를 놓쳐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
여름휴가를 한 달 앞둔 어느 날, 남편이 최후의 만찬 가이드투어를 예매했다며 티켓을 보내왔다.
공식 사이트에서 티켓을 구매하는 것은 어렵지만 입장권과 가이드투어를 패키지로 판매하는 사이트에서 조금 비싼 가격에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우리는 성인 79유로, 아동 69유로로 총 4인 가족 296유로에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다. 공식 사이트에서는 단돈 15유로이다.
사실 가이드 투어까지는 할 생각이 없었는데 마음을 바꾼 건 밀라노에 30년 사신 분의 조언 때문이었다.
"예술 작품을 볼 때는 꼭 가이드 투어를 하는 게 좋아요. 최후의 만찬도 아무런 지식 없이 보면, 진짜 볼 게 없거든요. 그냥 벽에 그림 하나 달랑 있는 거니까요. 근데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면 그림 속에 숨은 의미와 스토리를 알 수 있어서 훨씬 재밌어요."
평소 같으면 허튼 곳에 절대 돈을 쓰지 않는 남편이 최후의 만찬 관람에 이렇게 거금을 들인 이유는 그가 믿는 신념 때문이다. 그의 삶은 기독교적 신앙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6년 전, 인도 뭄바이에서 1년을 산 적이 있었다. 그때 한인교회 집사님 한 분이 아이들에게 한글책을 주시면서 ‘최후의 만찬 그림 퍼즐’을 주셨었다. 당시 남편은 종종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증상으로 힘들어했었는데 그 퍼즐을 맞추며 잠시나마 힘든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퍼즐은 우리가 뉴델리에서 지낸 2년 동안에도 늘 함께 했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에 갇혀 있을 때도 위안이 되어주곤 했다. 그러다 밀라노로 이사를 오면서 퍼즐 상자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렸는데, 이 밀라노에 진짜 “최후의 만찬” 벽화가 있는 것이었다. 밀라노에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최후의 만찬 벽화가 밀라노의 어느 성당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그때 그 퍼즐은 우리가 밀라노로 가게 될 거라는 하나의 암시가 아니었을까??"
남편은 삶의 작은 우연에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종종 그런 의미부여가 삶의 위안이 되어준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물의 객관적이고 실제의 모습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인 것이고, 바로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혹은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나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그저 웃었다. 너무 힘들어 삶의 끝을 경험했다는 그가 이제는 밝게 웃으며 여행을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에게 위안이 되어주었던 최후의 만찬이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다.
밀라노 집에서 최후의 만찬 벽화가 있는 산타 마리아 델리 그라치에 성당 Santa Maria Delle Grazie까지는 차로 15분 걸린다. 7월 한 달 내내 집에 널브러져 방학을 즐기던 우리 집 십 대 두 아이들은 늦게까지 늦잠을 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얼굴이었다. 최후의 만찬이 있든가 말든가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엄청 유명한 벽화야. 얼마나 의미 있어?"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시큰둥하다.
가이드투어 집합 시간인 아침 9시 15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앞으로 가니,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각자의 가이드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미 몇 시간 전에 해가 떠올라 성당 앞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아우 개 더워."
"뭐야, 사람들 개 많아."
무슨 말만 하면 "개"가 되는 십 대 아이들이다. 그러든가 말든가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엄마, 나 찍지 마."
"엄마 또 릴스 찍지? 그만 좀 찍어."
와.... 이 자식들 봐라..... 언제는 카메라 앞에서 춤추던 아이들이 이제는 아예 찍지 못하게 한다. 개 서럽다...
입장에 앞서 오디오를 하나씩 받아 귀에 꽂았다. 벽화가 전시되어 있는 곳엔 음식물이나 물을 가져가면 안 된다. 그래서 입장하기 전에 작은 캐비닛에 물품을 따로 보관해야 한다. 우리 팀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일본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다. 드디어 우리 팀 차례가 되어 입장을 시작했다. 성당 옆에 나 있는 작은 쪽문으로 들어가니 벽화가 있는 곳으로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벽화가 많이 훼손되어 지금은 딱 15분씩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들어가는 동안 중간 자동문이 15분에 맞춰 문이 열리고 닫힌다.
최후의 만찬 벽화가 있는 곳은 성당 수도원의 식당이었다고 한다. 당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후원해 주던 밀라노의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가 요청해서 그리게 된 벽화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미완성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최후의 만찬은 그의 몇 안 되는 완성작품이었다. 하지만 가장 많이 손상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식당으로 사용되던 장소가 매우 습했기 때문이다. 벽화 자체가 얇은 외벽을 바탕으로 그려져 습도에 매우 민감한 상태였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예수님의 발 부분에 해당하는 아래쪽으로 벽 출입구를 내어버렸다. 지급은 그 부분이 아치형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2차 세계 대전 때 폭격을 맞았는데 다행히도 다른 곳은 모두 무너졌지만, 벽화는 무사했다고 한다.
"최후의 만찬"은 기독교에서 매우 의미 있게 다루는 부분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열 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는 장면으로,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셨다. 3년 동안 함께 했던 제자 중 한 명이 자신을 팔 것을 미리 아셨던 예수님의 고뇌와 제자들에게 권면하는 모습이 성경에 담겨있다.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의 충격받은 모습이 이 그림에 섬세하게 담겨 있다.
재미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비롯한 열 두 제자 얼굴의 모델이 실존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예수님 옆에 있는 사람이 요한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막달라 마리아"라고 했다. 실제로 보니 예수님 옆에 있는 인물이 정말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가이드는 이렇게 말했다.
"요한의 얼굴 모델이 실제로 여성이었습니다. 다빈치 코드에서 말한 부분은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그저 소설의 이야기죠."
가장 재미있었던 일화는 바로 예수님을 배신한 제자, "유다"의 얼굴을 누구로 그릴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유다의 얼굴 모델을 찾기 위해 밀라노 길거리를 오랫동안 배회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의 후원자 스포르차 공작이 "자신을 배신할 것 같은 사람의 얼굴을 그려달라"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얼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가장 아름다운 청년 모델을 썼다는 말과 제빵사를 모델로 썼다는 말도 있었다.)
최후의 만찬 벽화를 본 지 15분이 되어 우리는 퇴실을 해야 했다. 그림에 대한 배경과 설명을 들으며 감상을 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엄마, 다리 아파."
"집에 언제 가?"
“너무 더워.”
위대한 작품을 보고 나온 아이들의 첫마디였다.
언제가 되면 이 아이들이 "아, 우리가 그때 정말 위대한 작품을 보고 왔구나...."하고 깨달을까?
앞으로 남은 9박 10일간의 여행이 기대가 되면서도 동시에 걱정이 되었다. 남쪽은 밀라노보다 더 더울 텐데….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