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여름이 그리워질 때
시에나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의 도시이다. 토스카나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인 피렌체에서 조금 더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 역시, 역사적인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우리 가족이 8월에 시에나에 간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염려 섞인 말들을 했다. 가장 더울 때, 가장 더운 도시에 간다는 이유였다. 그들의 염려에 나는 호기롭게 대답했다.
"저희는 인도에서 3년을 살았는걸요!!
40도가 넘는 여름에 공원을 걸어 다녔다고요!!"
나는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해 가장 더운 오후 3시에 한 시간씩 공원을 걸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걷고 나면 기분이 한결 상쾌해지곤 했다. 그래서인지 시에나의 더워가 그리 무섭지 않았다.
문제는 역시 아이들이었다. 덥다며 집안에 콕 처박혀 뒹굴거리던 아이들은 조금만 더워도 힘들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래도 시에나에 왔으니, 두오모는 보고 가야지!"
숙소에서 느리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핸드폰을 보며 뒹굴거리는 아이들을 부산하게 잡아끌었다.
"엄마, 어디가?"
"두오모에."
"이탈리아에는 두오모가 왜 이렇게 많아?"
"그러게. 도시마다 두오모가 있더라."
"근데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어."
"그렇긴 하지만...."
두오모(Duomo)는 이탈리아 말로 "성당"이라는 의미이다. 큰 도시, 작은 도시 할 것 없이 도시 중앙엔 두오모가 있다. 그 두오모를 중심으로 광장이 있고, 그 주변으로 상권이 밀집해 있다. 도시마다 두오모의 규모와 형태가 다르다. 피렌체 두오모와 시에나 두오모는 서로 더 크고 화려한 두오모를 짓기 위해 경쟁했다고도 한다. 한마디로 두오모는 그 도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건축이나 역사에 관심이 없는 10대 아이들은 크기만 다를 뿐, 두오모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두오모 내부로 들어가면 보이는 엄숙한 분위기와 벽화는 모두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별 감흥이 없다.
"역사적으로 엄청 유명한 곳이야."
아무리 말해도 그 역사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이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지금을 떠올리며, "아... 내가 정말 대단한 곳에 다녀왔구나!!" 하고 깨닫는 날이 오기를....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골목길을 걸어 올라갔다. 시에나는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이고, 두오모는 그 언덕 끝에 있기 때문에 열심히 걸어야 했다. 등에서 땀이 흘렀다. 아이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덥다며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무시하며 열심히 골목을 찍었다. 가장 더운 날이었지만, 여행객들은 여전히 많았다.
중세의 거리를 걸어 올라가다 보니 좁은 골목 사이로 시에나 두오모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처음 온 곳이었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두오모의 모습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뾰족한 첨탑과 화려한 조각은 밀라노 두오모를 닮았고, 가로 줄무늬의 모던한 디자인은 피렌체 두오모를 닮았다. 각 도시의 두오모 건축은 다른 도시의 두오모 건축에 영향을 주고받았던 모양이다. 시에나 두오모의 아름다운 모습에 피렌체에서도 두오모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완성된 피렌체 두오모의 웅장한 모습에 시에나 두오모를 증축했다고 하니,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국가들은 서로 경쟁하며 발전했던 모양이다.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데 모자도 없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벌겋게 달아오른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두오모 앞 노점상에서 다양한 모자를 팔고 있었다.
"저기에서 모자 좀 사자."
남편이 아이들을 이끌고 가서 모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햇빛을 넉넉히 가릴 수 있는 챙이 넓은 모자 3개를 고른 후 하나씩 쓰고 그늘을 찾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햇빛을 피해 광장 가장자리 난간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물과 음료수를 사서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시에나 두오모를 바라보며 멍~~ 을 때렸다.
"우리 여기 왜 온 거야?"
"두오모 보러."
"다 봤으니, 이제 가는 거야?"
"아니. 좀 더 돌아봐야지."
"나 더워서 죽을 것 같은데...."
"조금만 참아."
이미 아이들의 영혼이 육체를 탈출해 저 위로 증발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볼래?"
"아니."
단호박 같은 아이들의 대답에 전의를 상실한 나는 입장료 5유로를 아낄 겸 그냥 앉아 있었다.
"너무 더워. 도대체 지금 기온이 몇 도야?"
아이들의 말에 현재 기온을 확인해 보니, 43도라고 뜨는 것이 아닌가.... 어쩐지 생각보다 더 덥더라니....
"자, 가자!"
앞장서서 걷는 아빠를 따라 아이들이 느릿하게 따라 걸었다. 여러 무리의 단체관광 팀들이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 두오모 반대편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더 많은 사람들이 넓은 광장 앞에 모여 있었다. 좁은 내리막길에서 만난 광장은 굉장히 넓었다. 그곳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불리는 캄포광장(Piazza del campo)이었다.
캄포광장은 유럽에서 가장 큰 광장 중 하나로 여겨진다. 광장을 중심으로 여러 화려한 궁전들이 광장을 조개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어서 광장 전체가 평평하지 않고 완만하게 굴곡져 있었다. 광장 중간엔 빨간 벽돌이 촘촘히 박혀있었는데 가운데 하얀색 대리석 벽돌로 경계선을 만들어 놓은 게 인상 깊다.
중세에 세워진 저 건물이 아직도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옛 문화를 과거의 것으로만 두지 않고 현재로 끌어와 삶의 조화를 이루는 이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저 넓고 아름다운 광장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참 멋질 것 같았지만, 너무 더운 낮이라 그런지 광장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신 그늘진 계단에 앉아 서로 사진을 찍거나 젤라토를 먹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 머물고 싶었지만, 더 있다간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아이들의 말에 발길을 돌렸다.
내려왔던 골목길을 다시 올랐다.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의 뒤를 천천히 따라 오르며 이 도시의 흥망성쇠를 떠올렸다.
언덕 위에 만들어진 도시인 시에나는 다른 도시와 연결된 밀접한 도로가 없었기에 로마시대에는 크게 번영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종교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관심 밖의 도시였다. 덕분에 다른 도시 국가의 침략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잔티움 제국의 이탈리아 원정으로 시에나가 노출되었고, 북부 점령지와 로마를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로 시에나를 이용했다. 그 후 시에나는 성지 순례자들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15세기에는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번성했고, 십자군 원정의 통과점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후 시에나 공화국은 수백 년간 존재하며 황금기를 누렸다. 이 작은 도시의 인구가 5만 명에 이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1348년에 시에나를 강타한 흑사병으로 다시 후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모든 나라는 흥망성쇠의 길을 걷는다. 영원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할 것 같았던 로마제국도, 전 세계를 통일할 것 같았던 칭기즈칸의 몽골제국도 결국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어떨까? 유럽의 문화가 가장 좋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시아의 문화가 유럽으로 퍼지고 있다. 한국이 어딘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지금은 케이팝에 열광하고, 코리아 화장품에 관심을 보인다.
우리 아이들은 밀라노에 살지만 정체성은 완전한 한국인이다. 거기에 더해 한국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국뽕"에 젖여있다.
"역시 한국 제품이 좋아. 역시 한국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가끔 찬물을 끼 얻는다.
"한국 사람들 중에도 사기꾼이 많아. 조심해야 해. 한국 제품이 항상 좋은 건 아니야. 한국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야. 무조건 옹호하는 건 좋지 않아. 비판적인 시건을 갖도록 해. 이러나 나락으로 갈 수도 있어."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또 너무 진지해진다며 나무란다.
좌우로 취우 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사는 것 그리고 흥할 때일수록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은 언제나 옳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도대체 주차장이 어디 있는 거지?"
걷고 또 걸어도 주차장이 나오지 않자 아이들의 입에선 다시 불평이 쏟아졌다. 10대 아이들과 여름에 여행을 하는 것은 참고 또 참아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숙소로 갈 거야?"
"아니!!"
우리의 뜨거운 시에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