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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r 22. 2019

해외에 살지만 여행은 좋아하지 않아요.

나도 한때는 여행을 좋아했었답니다.

해외 생활 7년 차.

하지만 해외여행은 많이 다녀보지 못했다. 남들은 방학 때마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데, 우리는 그저 한국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한국 음식을 실컷 먹고 오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겨우 네팔, 방콕에 잠시 다녀온 것이 다이다.


20대 때는 나름 혼자만의 여행을 즐겼다.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이틀 오프를 받는 날이면 가방을 챙겨 훌쩍 여행을 떠났다. 해남 땅끝으로, 마이산으로, 강천산으로 겁도 없이 홀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갈 수가 없다.


우리 가족이 여행을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큰 아이의 차멀미, 둘째의  코피,
남편의 불안증.....


큰 아이는 차만 타면 멀미를 한다. 장거리던 단거리던 차만 탔다 하면 울렁거린다며 드러눕는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차멀미가 심했었기에 크면 좋아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차만 타면 멀미를 하는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구토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차를 오래 타야 되는 경우에는 미리 비닐봉지를 준비해야 한다.


둘째는 코피가 자주 난다. 비염도 심해 자주 코가 막힌다. 조그마한 콧구멍이 코딱지나 콧물로 꽉 막히면, 엄마는 콧속에 식염수를 넣고 빼준다. 하지만 갑자기 코피가 나면 정말 당황스럽다. 한 번은 비행기가 이륙 중에 코피가 터졌다. 휴지도 없었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결국, 쿠션을 들고 아이의 코를 대충 막고, 비행기가 정상 괴도로 올라가길 기다렸다. 여러 번의 당황스러운 경험으로 이제 항상 화장지를 들고 다니긴 하지만, 집이 아닌 밖에서 코피가 뻥 터지면 당황스럽긴 매 한 가지다.


남편은 불안증이 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에 살 때 발현된 공황장애의 여파인지, 가끔 이유도 없이 불안해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정신적으로 힘들 것 같은 상황은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인도에 살고 있지만 여행을 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다른 사람들은 인도 여기, 저기 잘도 여행을 다니는데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난 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 욕구 보다도 가족이 우선이기에 잠시 내 욕구를 뒤로 미루고 있다.



가끔, 아이와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왔다는 글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내 아이들과 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한 달씩 살다 오라고 하면 절대 못 갈 것 같다. 어느 나라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머무는 것이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게다가 한 달씩이나? 그게 가능한가?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살면 된다.

최근, 해외에서 아이와 한 달 살기가 하나의 의무처럼 번져가는 현상은 좀체 이해할 수 없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평소 아이와의 소통, 아이와의 관계, 아이와의 스킨십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을 갈 수 있는 상황과 여건이 되고 그것이 즐겁다면 가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일상생활 속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남들 다 가는데 나만 못 간다고 자책하며 비교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제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자기야, 10년 뒤에 내 나이 50이 되면 나 홀로 배낭여행을 떠나겠어. 잡지 마.”

그는 비웃었지만, 나는 진지하다.

여행적금을 하나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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