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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01. 2019

 엄마가 되어도 여전히 칭찬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며칠 전, 별것도 아닌 일에 아이들에게 크게 화를 냈다.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엄마가 왜 저러나 하는 표정이었다. 나 조차도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분노가 폭발한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평상시에는 좋은 엄마였다가도 한 번씩 폭발을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화가 분노가 되어 폭발하는 시발점이 매번 비슷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문제점, 또는 내 아이들의 문제점을 되 집어 보게 되었다.



나는 남편과 결혼해 해외 생활을 한 뒤로 줄 곳 가정주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고 있다. 딱 한번, 한국 아이들을 데리고 책 놀이 수업을 하면서 수업비를 받기도 했지만 인도로 오게 되면서 세 달 만에 끝내야 했다. 내 마음속에는 항상 돈을 벌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엄마는 좋겠다. 우린 학교 가고 아빠는 회사 가는데 엄마는 집에서 편안하게 있으니."

 이 말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는 않다. 집에서 하루 종일 논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엄마의 일이 하찮게 느껴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무리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 그나마 집안일 중에서 가장 티가 나는 일이 “요리”이다. 요리는 결과물이 있다. 결과물을 통해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행위이다. 처음부터 요리를 즐겨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집에서 내가 요리를 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더욱이 해외생활 7년 차에게 가족의 입맛과 건강을 고려해 매번 다른 요리를 내놓아야 하는 것은 거의 사명감에 가깝다. 한국처럼 외식을 할 만한 식당이 많지도 않거니와 배달시켜 먹을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 오롯이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 한다.


음식을 만들어 내는 일이 쉽지 않지만, 아이들과 남편의 “맛있어”라는 말을 들으면 그 노고가 모두 씻겨 나간다.  “맛있어”라는 말은 나의 노동에 대한 대가이다. 하찮게 보이는 집안일에 대한 평가이다. 이 말은 “엄마의 일은 하찮지 않아. 엄마가 하는 일도 매우 소중해.”라고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매번 내 요리가 맛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두 아이의 식성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항상 두 아이의 식성에 맞게 요리를 하기도 힘들다.(남편은 주는 대로 먹는다.)


 며칠 전, 볶음밥을 내놓았다. 큰아이는 볶음밥을 좋아하는 반면, 둘째는 싫어한다. 하지만 그 날 저녁 메뉴는 볶음밥이었다. 둘째 아이는 밥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아 뭐야, 나 볶음밥 싫어하는데.”

“싫어도 오늘 저녁은 볶음밥이야. 네가 좋아하는 것만 매번 해줄 수 없어.”

둘째 아이는 억지로 숟가락을 들고 밥을 조금 떠서 입에 넣었다. 억지로 몇 숟가락 떠먹더니 이네 숟가락을 놓는다.

“밥 더 먹어.”

엄마의 말에 아이는 다시 숟가락을 들고 더 먹는다.

“우웩, 맛없어."

순간 분노가 치솟았다.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예의의 문제이다. 엄마의 노동을 무시하는 둘째 아이의 행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 분노의 결과물, 바로 엄마의 샤우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이의 밥을 치워버렸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엄마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맛이 없다고 반응할 때, 먹기 싫다고 말할 때, 잘 먹지 않고 다른 짓을 할 때 주로 화가 난다.

그것은 날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바로 내 결과물에 칭찬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화나게 만든다.  


넷째 딸로 태어난 난 어려서부터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어보지 못했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칭찬을 먹고 크는 것 아니었던가? 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칭찬 한 마디로 미래에 대한 꿈을 결정하기도 하고, 진로를 결정하기도 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과도한 칭찬은 역효과를 내겠지만 적절한 칭찬은 아이들에게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준다. 하지만 내가 아이였을 때 난 칭찬을 들어보지 못했다. 상장을 받아 와도, 백일장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타도 부모님은 칭찬해 주지 않았다.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어 열심히 공부를 했다. 간호사가 되었고 돈을 벌었다. 간호사가 된 뒤에는 인정받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 열심히 일을 했다. 환자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보호자, 의사들에게도 인정받고 싶어 항상 웃으며 일했다.

 “이달의 친절한 간호사”

이 타이틀이 그렇게 좋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친절하게 해도 난 이달의 친절한 간호사가 되지 못했다. 이 달의 친절한 간호사는 항상 우리들이 그렇게 싫어하던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던 선배 얼굴이 떡하니 붙어있었다.


간호사 시절, 별로 친하지 않은 선배에게 30만 원을 빌려주었다. 함께 일한 적은 없었지만 같은 학교 출신이었고, 같은 층의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오고 가며 인사하는 사이였다.

다음 달에 갚겠다던 선배는 소식이 없었다. 그다음 달에도 난 돈을 받지 못했다. “돈을 갚으세요.”라고 말하면 되는 일인데 말하지 못했다. 고민하다 그 선배에게 쪽지를 썼다. 돈을 조금이라도 갚아 달라고. 그리고 그 선배의 방 문에 붙여 놓았다.  

하지만 “곧 갚을게.”라는 말만 돌아왔을 뿐, 그 선배는 끝까지 갚지 않았다. 결국, 30만 원을 받지 못했다. 그 선배는 얼 마 후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난 병원을 그만두었다.  

나의 이 바보 같은 일화는 평생 동안 날 따라다닌다. 부모님에게, 가족들에게, 친구에게, 그냥 아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나의 삶. 그저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만 남겨야 했고, 사람들의 입에서 칭찬을 듣고 싶었고, 착하다는 한마디 듣고 싶었던 나의 삶.  


결혼을 하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니 나의 그 욕구는 다른 모습으로 불쑥불쑥 뛰쳐나왔다.   

내가 남편에게 선물을 해줬는데 별로 반응이 없을 때, 청소를 깨끗이 해놓았는데 눈치채지도 못할 때, 정성이 가득 담긴 요리에 반응이 좋지 않을 때 화가 났다. 난 남편에게도 인정받고 싶었고 칭찬을 듣고 싶었다. 나이는 들고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어렸을 적 채워지지 않은 그 욕구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돈을 벌고 싶었다. 돈을 버는 행위를 하고 싶었다.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 바로 돈을 버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전, 우연한 계기로 ‘블로그 기자단’ 일을 하게 되었다. 정성스럽게 정보를 수집하고 짧은 영상을 만들고 글을 써서 내 블로그에 포스팅을 했다. 그리고 3만 원이라는 돈을 벌었다.

3만 원.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사면 끝나는 돈.

한 끼 식사로도 쓸 수 있는 돈.

하지만 나에게 3만 원은 더 큰 가치였다. 내 글이 인정받았다는 가치. 내가 쓴 글로 번 돈. 난 돈을 벌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작가는 아니지만 매일 글을 쓰고, 미술가는 아니지만 매일 그림을 그리는 일. 이 일 또한 내가 인정받고 싶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그것이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인정의 행위.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



어릴 적의 시간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진다.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결핍의 모습이 나오게 될지 조금 두렵다. 이런 이유로 가끔 나의 행동과 말을 되새겨 보게 된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야 말았다. 화를 냈을 때 보다 화해를 할 때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엄마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화해를 시도해본다. 엄마의 감정변화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화가 난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화해를 한다.


나의 결핍이 아이들에게 대물림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분노가 아이들의 가슴에 쌓이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또 다른 결핍이 쌓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도록 남겨놓으려 한다.

오늘도 나의 결핍을 인정하고, 스스로 결핍을 채우려 노력하는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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