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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03. 2019

소심한 사람의 탈소심기

성격은 변하는 것

난 항상 소심했다. 너무나도 소심해 사람들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부탁 비슷한 것도 하지 못했다. 선배에게 돈을 빌려주고도 갚으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한 번도 좋아하는 남자에게 먼저 고백해보지 못했다.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이 다 였다. 그것은 소심함을 넘어 자존감의 문제였다. 난 자신감이 전혀 없었다. 나의 배경, 외모, 학벌,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나였기에, 나의 자존감은 항상 바닥을 기었다.


남편은 이런 나의 모습에 처음엔 착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결혼 후에는 답답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당연히 거절해야 할 일에 거절하지 못하고, 당연히 도움을 받아야 할 일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살았던 난, 그냥 바보였다.


이렇게 사십 평생을 살아온 내가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가장 놀라워하는 사람은 역시 남편이다. 소심하고 자존감도 없던 내가 조금씩 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뭄바이”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인 것 같다. 나의 탈 소심기는 바로 이곳, 뭄바이에서 시작된다.



뭄바이라는 도시에 온 후, 한국 친구들보다 다양한 외국 친구들과의 교류가 더 많다. 특히 아이들 학교에서 만난 학부모들, 그중에서도 동양인 친구들과는 날마다 채팅방에서 수다를 떤다. 시답잖은 농담부터 진지한 삶의 이야기까지 정말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직접 만나 대화를 할 때 보다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편한 이유는 모르는 영어 단어를 바로바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도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바로바로 대답을 할 수가 있다. 당연히 영어 공부도 된다.


이 친구들과 처음 친구가 되었을 때 당연히 부담감이 많았다. 특히 베트남 친구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딴소리를 하기 일쑤였다. 함께 만나 뭔가를 할 때 잔뜩 긴장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생각은 이 환경에 지지 말자는 것이었다.

두렵다고, 부담이 된다고 도망가기가 싫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 보다도 그 친구들의 마음이 훨씬 넓었다. 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만나면 남 이야기하기 바쁘다. 말이 돌고 돌아 다시 내 귀에 들린다.

하지만 외국 친구들은 내가 좀 못해도 험담을 하지 않았다. 따돌림은커녕, 오히려 서로 챙겨주기 바쁘다. 나의 외국 친구들 덕분에 나의 자존감이 한 계단 올라가게 되었다.



나의 그림 그리는 재능을 알아봐 준 친구 역시 베트남 친구 “민”이다. 그녀는 나에게 그림을 그려서 함께 팔아보자는 제안을 해주었다. 자신 없어하는 나에게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괜찮은 그림이 보이면 나에게 보내주었다. 함께 리틀 마켓을 해보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날마다 인도 엽서에 그림을 그리며 그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몇 주 전, 프랑스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5월에 프랑스인들을 위한 단체 “Bombai Accueil”에서

little market을 하니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은 신청을 하라는 메시지였다. 이 날을 위해 준비하긴 했지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누가 내 엽서를 사기느할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참가 신청서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정말 일을 저질러 버렸다. 이제 더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수밖에.


며칠 후, 참가비를 내라는 메일이 왔다. 참가비를 내려면 담당자의 집에 직접 찾아가야 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프랑스 여인을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를 처음 만나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는 온통 영어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짧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충분히 할 수 있을지?

다행히도 그녀는 매우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참가비를 내면서 그녀의 남편이 베트남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걱정스러웠던 내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그리고 어제, 참가자들의 브랜드와 로고를 만들어 보내줘야 했다. 브랜드도 로고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사진을 찍고 로고를 간단하게 만들었다.

파일 첨부를 한 후 메일 전송 버튼을 눌렀다. 드디어 내 그림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순간이다. 난 한참 멍하니 앉아있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는 지금, 가장 능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고 앞으로 나가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들을 하나, 둘 하고 있다.

이 새로운 경험들을 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이 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준비한다.

내가 만든 엽서가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경험들이 쌓였으니 조금도 아쉽지 않다.


2주 뒤, little market이 시작되면 수많은 외국인 고객들을 만나야 한다. 가장 큰일이 남아있다. 나의 숨겨진 적극성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내 그림과 엽서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팔아야 한다.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외모가 변한다. 성격도 변한다. 당연히 소심했던 사람이 적극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나의 이 적극적인 모습이 인도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소심했던 예전보다 조금은 무모한 지금이 더 좋다. 살짝 긴장되는 떨림이 기분 좋다. 어느새 가슴의 두근거림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조금은 적극적인 사람, 자존감도 조금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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