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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04. 2019

한국에 가기 싫다는 아이

엄마의 고민


며칠 전,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더운 날씨에 지친 엄마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우리 그냥, 한국 들어갈까?”

사뭇진지하게 물어보는 엄마의 말에 아이들 역시 진지하게 대답을 했다.

아니 엄마, 난 한국 가기 싫어.”


의외의 대답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던 아이들이었다. 우리가 사는 곳과는 다른 깨끗한 거리, 편리한 교통 그리고 먹을거리가 풍부한 편의점, 슈퍼, 식당 등. 누릴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한 한국은 항상 아이들에게 그리운 곳이었다.


“왜 가기 싫어?”

“한국 가면 한국 학교에 다녀야 되고, 그러면 공부도 많이 해야 되고, 학원도 다녀야 하잖아. 방학도 짧고. 난 그냥 인도에서 학교 다니고 싶어.”


한국에서 한 번도 학교를 다녀보지 않았으면서 알건 다 안다는 말투이다. 하긴,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기도 했고, 한국에 휴가차 들어갔을 때, 사촌 형과 언니가 학원 다니느라 바빠 놀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이미 간접적으로 체험한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한국학교는 약간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서 학교 다니면 한국말로 하면 되고, 친구들도 많고 더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지안아?”

“그래도 싫어. 엄마도 집에 없을 거잖아. 한국 가면 일 해야 한다며. 엄마가 없는 집이 싫어.”


지안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는 전업주부이다. 지안이에게 엄마는 항상 집에 있는 사람이다. 학교에 갈 때도 집에 올 때도 항상 엄마가 옆에 있다. 집에 오자마자 부비부비 할 수 있는 사람, 배고프면 간식을 챙겨주고, 끼니마다 밥을 주는 사람이다. 저녁마다 함께 책을 읽고 함께 누워 잠을 자는 사람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아직 친구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고, 버팀목이다. 뒤돌아서면 항상 같은 자리에 엄마가 있다.


“난 아직 어린데 엄마가 먼저 죽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해?”

사뭇진지하게 질문을 한다.

“그럼, 지안이랑 소은이랑 아빠가 서로 도우며 살면 되지.”

“엄마가 죽는다는 생각만 해도 슬퍼서 눈물이 나.”

이미 눈물이 글썽이고 있다.

“아유, 걱정하지 마. 엄마 지금 엄청 건강해. 별 걱정을 다하네.”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지안이는 동생이 태어났을 때 이틀, 소은이는 친구 집에서 sleep over 하면서 이틀 떨어져 본 기억이 다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들이 스트레스가 되고 힘들기는 하지만, 어렸을 적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하다. 좀 더 크면 붙잡아도 훌훌 떠나갈 테니.


특히 지안이는 엄마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9살이 되어서도 옆에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한다. 잘 때도 옆에 엄마가 꼭 있어야 안심을 한다.

어떤 이는 이런 모습을 보며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엄마와 애착이 좋지 않느냐고 하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엄마와 너무 붙어 지내서 그런 것이라고 도 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내 아이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 낸 엄마들에게 집중한다.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딱 지안이 같았어요. 그런데 크니까 알아서 분리를 하더라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원래 기질적으로 그런 아이들이 있어요. 그럴 때는 그냥 같이 있어주는 게 좋아요.”

“우리 아들은 지안이보다 더 했어요. 밖에 나가지를 못했다니까.”

잘 자람의 표본을 보이는 교회 청년 몇몇을 보면 어쩜 저렇게 잘 컸을까? 생각했는데 그 청년들의 과거는 사뭇 달랐다.  내 아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 청년들을 보며 희망을 갖는다.



뭄바이에서 친하게 지낸 어느 분이  곧 한국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두 아이는 인도에 남기로 했다. 현재 중학생인 두 아이는 부모님 품을 떠나 인도의 어느 기숙사 학교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학교를 다니던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의 임기가 끝나 한국으로 귀국해야 할 때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학교와 외국의 학교를 모두 경험해 본 아이들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숨이 막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더 힘들 수도 있는(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 아이들은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보다 한국에 들어가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는 이렇게 부모님과 떨어져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족은 어찌 되었든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기러기 아빠도 기러기 엄마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아이들이 점점 자랄수록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해가 되고, 언젠가는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제 9살, 7살인 아이들조차도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학 교를 다닌다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과목을 영어로 공부해야 하고, 한국어 공부도 따로 해야 한다. 영어만 잘해서도 안된다. 프렌치든, 스페인어든 한 가지 이상의 외국어를 습득해야 한다. 세계사는 물론 한국사도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따라가기 힘들다. 그럼에도 많은 아이들이 한국으로 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중, 고교생 10중 2~3명이 우울감을 경험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 역시 그 시절을 매우 우울하게 보냈기에 그 아이들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9~24세 청소년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 자살이라는 사실이 너무 충격이었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우울증과 자살로 내모는 것일까?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 내 아이들은 나와 같은 환경에서 공부하지 않기를 바랐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이 20년 전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것 같다.

공부와 입시로 힘들어했던 나의 세대들이 우리의 어른 세대에게 받았던 그 모습 그대로 내 아이들에게 되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인도 주재원으로 나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대기업의 사람들이 많다. ( 우리는 아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벌이 매우 뛰어나다. 서울대는 물론이거니와 고려대, 연세대, 외대 출신들도 상당히 많다. 이 사람들 중 가장 학벌이 떨어진 사람은 남편과 나다.

이들 중 상당 부분이 해외 유학파이다. 미국에서, 캐나다에서 또는 호주에서 몇 년씩 유학을 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크게 차이가 나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힘들어하고 여전히 퇴직 이후를 걱정하고 있다.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그들의 삶을 보며 좋은 대학을 가도, 대기업에서 일해도, 해외유학을 다녀와도 인생이 힘든 것은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행복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고, 좀 더 행복하기 위해서 유학을 간다. 하지만, 정말 그 안에서 행복을 발견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은이(가명)는 작년에 대입시험을 보았다. 하지만 대학을 가지 않고 일 년 더 이곳에 머물렀다. 아빠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엄마, 동생 현이(가명)와 함께 지냈다. 동생 현이는 올해 고3이다. 은이는 1년 동안 뭄바이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놀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전, 대학을 결정했는데 뭄바이에 있는 어느 대학에 가기로 했다. 평소에 수학을 좋아하는 동생 현이는 수학의 나라 인도에서 대학을 다니기로 결정했다. 한국의 좋은 대학, 미국이나 영국의 좋은 대학을 선호하는 요즘, 인도에서 대학을 다니기로 결정했다는 두 아이의 선택과 그 선택을 존중해주고 지지해주는 그 부모님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이아이들의 무대는 한국이 아니라 바로 세계인 것이다.


난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가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머뭇거려진다. 먹을거리도 풍족하지 않고, 놀거리도 없어서 힘들다. 그때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한국에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가족끼리 함께 소파에 앉아서 놀 시간, 아이들과 책을 읽을 시간, 부부가 함께 대화를 할 시간.

이 시간 앞에서 먹을거리와 놀거리가 지고 만다. 우리는 7년째 시간을 선택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것이다. 내 부모님과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곳으로. 그때가 되면 내 아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집사님, 한국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거의 15년 동안 뭄바이에 살고 있는 어느 분에게 물어보았다. 한국으로 귀국했다가 3개월 만에 다시 이곳으로 오신 케이스이다. 아이를 1학년부터 이곳에서 학교를 보냈고 지금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모르겠어. 한국 들어가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이제 2년 남았는데. 사업을 할 수도 없고. 우리도 그게 고민이야.”


그분의 고민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나의 고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해외에서 살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독립을 시킨 후, 남는 것은 부모의 문제이다.


이제 해외생활 7년 차, 큰아이 9살, 둘째 7살.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 같지만 시간은 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기에 지금부터 고민이 된다.


“한국에 가기 싫어.”


아이의 이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어떤 길을 선택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남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확신할 수가 없다.


그래서 외국에서 사는 동안에는 프랑스학교에 보내려고 한다. 공부 좀 못해도, 다른 거 좀 못해도 프렌치 하나로 먹고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정말 충분할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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