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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05. 2019

지금, 엄마 무시하는 거야?

엄마의 권위 찾기


두 아이의 2주 중간 방학이다.

프랑스 학교는 방학이 많아도 너무 많다. 두 달에 한 번씩 방학이 찾아온다.

아이들이 푹 쉴 수 있어 좋기도 하지만 엄마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다른 외국인들은 여기저기 여행을 가지만, 우리에게 여행은 머나먼 이야기.  

그저 집을 좋아하는 집돌이 집순이와 집을 지킨다.


그냥 집에 있다는 말의 의미는 나에게 “너무 힘들어

”이다.


“요즘 힘들다는 말 너무 자주 하는 거 아니야?”

남편의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

정말 힘들어서 힘들다고 하는데 그게 듣기 싫으면 너의 귀를 막아라~

라고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두 아이는 엄마 얼굴을 보기만 하면 배가 고프다고 , 간식이 먹고 싶다고 칭얼댄다.

놀아달라, 컴퓨터 하게 해 달라, 영화 틀어달라, 책 읽어달라,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오빠가 때렸어. 소은이가 날 놀렸어~


혼자만의 시간으로 재충전을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정말이지, 힘들다.

물론 책도 읽어주고, 책 놀이도 해주고, 이것 저것 해주기도 하지만, 하루가 끝나갈 무렵이면 정신이 지쳐있다.

아이들도 분명 하루 종일 엄마의 잔소리를 듣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싸우지 마라. 흘리지 마라. 방에서 먹지 마라 개미 온다. 장난감 정리 좀 해라. 이제 숙제 좀 하자. 양치 좀 해라. 제발 싸우지 마라…..


엄마의 잔소리는 끝이 없다. 아이들은 엄마의 잔소리에 귀를 닫아버렸는지,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다.


어제는 남편이 쉬는 토요일.

이미 유튜브를 실컷 본 아이가 영화를 틀어달라고 한다.


“숙제를 먼저 끝내. 네가 할 일은 하지 않고, 영화만 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숙제를 왜 해야 해. 나중에 할게.”

“나중에 언제 해? 지금 해.”

“왜 지금 해야 해?”


엄마가 하는 말마다 또박 또박 말대답을 시작한다. 요즘 9살 지안이는 앞니 세 개가 한꺼번에 빠지면서 멘탈도 함께 빠져버렸다. 어린아이의 정신세계에서 벗어나 자기의 자아를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 말인즉은,

말대답이 심해졌고 엄마의 말에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어 쳐다보고 있는데,

“숙제를 먼저 끝내야지.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꼭 해야 할 숙제는 안 하는 것이 말이 돼? 먼저 숙제부터 해.”


아빠의 말 한마디에 아이는 주섬주섬 영어책과 연필을 꺼낸다.

뭐지 이건? 지금 나, 까인 거야?


영화를 다 본 후, 아이들 방에 들어가 보니 장난감과 인형, 이불이 한데 엉켜 엉망진창이다.

“지안아, 방 정리 좀 해.”

“왜 내가 해야 돼?”

“니 방이니까 해야지.”

“소은이랑 같이 놀았단 말이야.”

“그럼 같이 정리해. 방이 너무 더러워.”

“지금 하기 싫은데.”

“지금 하라고.”

“왜 지금 해야 돼?”


갑자기 뒷골이 당긴다. 머리가 저려오기 시작한다.  그때,

지금 가서 방 정리 해.”


아빠의 말 한마디에 아이는 주섬 주섬 일어나 방으로 향하더니 방 정리를 시작했다.

아 뭐야, 나 또 까인 거야? 나 무시당한 거야?


그때부터였다. 기분이 확 나빠졌다.


조용히 아이들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용히 지안이를 쳐다보았다.


“엄마 왜?”

“너 좀 너무한다.”

“내가 뭘?”

“존댓말 하라고 했지.”

“내가 뭘요?”

“왜 엄마 무시하고 그래? 엄마 말은 안 듣고 아빠 말만 듣고, 엄마 진짜 기분 나쁘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엄마한테 사과해. “

“미안해요. 엄마.”

과연 이건 사과인가 아닌가?

그저 엎드려 절 받기이다.

“자꾸 엄마 말 무시하면 저녁밥 안 해줄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협박은 그저, 밥이다.

하지만 저녁때가 되어

“엄마 배고파...”

하는 아이들을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 닭가슴살을 자르고, 양념하고 튀기고 있다.


난 이런 엄마.

권위는 찾아보기 힘든 그냥 엄마.


아이들은 아빠보다 엄마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부터 찾는다. 밤에 잘 때도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하고, 엄마가 책을 읽어줘야 한다.

그런데 엄마의 말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가끔 매를 들기도 하고, 벌을 세우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분명히 눈물 쏙 빠지게 혼나고도 2분이 지나면 헤벌레 웃고 있다. 그럴 때마다 맥이 빠진다.


아빠는 자주 화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화를 내면 무섭게 화를 낸다. 역시 잔소리도 엄마만큼 심하진 않다. 우리 집에서 잔소리 쟁이는 엄마이다.

존댓말을 쓰게 하면 좀 좋아질까 하고 시켜보았지만, 습관이 되지 않아 그것도 잘 되지 않는다. 문제는 나에게 있다.


엄마의 가장 큰 문제는,

첫째, 권력이 없다. 우리 집에서 나이가 제일 많지만 권력자는 아빠이다. 아빠는 항상 우리 집의 모든 경제는 내가 책임지고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괜히 기분이 나쁘다.


둘째, 평소에 잔소리가 심하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붙어있다 보면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오늘부터 잔소리를 줄여볼까? 생각하지만, 생각과 별개로 이미 입에서 말이 나오고 있다. 나도 진중한 엄마가 되고 싶다.


셋째, 아이들과 너무 밀착되어 있다. 정서적으로 친밀감을 유지해서 좋기도 하지만, 아이의 말 한마디, 작은 태도에 상처를 쉽게 받는다.


아이가 크면서  저절로 나타나는 “자아 찾기”의 과정인 말대답과 말대꾸와 반항.  이제 시작인 것인가?

부디 천천히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엄마의 마음이 조금 더 단련된 후에 왔으면 좋겠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니, 그 후유증이 너무 길다.


아이는 정말 엄마 말을 무시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 하기 싫었던 것인가?


오늘부터 잔소리를 좀 줄여볼까 한다.

아이의 태도에 “무관심”으로 대해볼까 한다.

둘이 싸우든지 말든지, 흘리든지 말든지 내버려둘까 한다........


아니, 난 다시 잔소리쟁이 엄마가 되고 말 것이다.

엄마의 권위를 찾는 일 보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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