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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08. 2019

엄마와 라면

엄마 생각

“엄마, 라면 끓여줘~”

방학 동안 하루 세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한다. 밥뿐만 아니라 간식도  챙겨야 한다. 먹어도 먹어도 또 배고프다는 아이들.

라면은 정말 고마운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로컬 마트에 가면 한국 컵라면과 진라면을 살 수 있다. 현지 마트에서 라면을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격이다.  




언니들이 모두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나와 동생은 시골에 남아 엄마, 아빠와 함께 있었다.

엄마, 아빠는 날마다 논 일과 밭 일로 고단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농기구가 발달하기 전의 농사일은 그저 몸으로 해야 했다. 봄에 모내기를 하면 그 벼가 잘 자라도록 가꾸고, 중간중간 벼 사이에 자라고 있는 피(잡초)를 제거해야 한다. 피를 제거하려면 논으로 들어가 벼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며 직접 손으로 뽑아낸다. 여름에 태풍이라도 오는 날엔 혹시나 여물기 시작한 벼가 다 떨어질까, 벼가 다 넘어져 버릴까 조마조마하며 시간을 보낸다. 혹시나 강한 태풍에 벼가 넘어지면 논으로 들어가 넘어진 벼를 일으켜 세워 한 묶음씩 먹어준다. 그렇게 가을이 되어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면 드디어 추수를 한다. 요즘은 기계로 하지만 옛날엔 손으로 일일이 벼를 베었다.


논 일 외에도 밭일이 가득하다. 봄에 마늘을 심는다. 마늘이 자라면 마늘쫑을 뽑아줘야 한다. 그리고 여름에 마늘을 뽑는데, 땅속에 깊이 박혀있는 마늘을

뽑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가장 힘든 것은 고추를 따는 일이었다. 가장 더운 8월 즈음에

고추가 빨갛게 익는다. 뙤약볕에서 고추를 따고 있노라면 얼굴은 익어가고 허리는 아프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엄마의 밭에는 온갖 야채가 있었다. 배추, 무는 물론이거니와 시금치, 당근, 가지, 상추, 토마토, 각종 콩, 참깨, 들깨.....

한 가지를 거두면 또 다른 채소를 심었다.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일 년 내내 엄마의 밭에는 일거리가 넘쳤고, 나와 동생, 도시에서 공부하고 있는 언니들조차 그 채소들을 먹으면서 자랐다. 엄마는 매 번 직접 기른 야채를 언니들에게 올려 보냈다.

(엄마는 지금도 서울에 사는 아들 딸들에게 매 번 새로운 야채를 택배로 보내주신다.)


어느 무더웠던 여름.

오후의 햇살이 지고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던 저녁 무렵이었다. 엄마는 라면 네 개를 꺼내 끓이라고 했다. 그 라면을 먹을 사람은 나와 동생, 엄마였다. 오랜만에 밥과 채소가 아닌 라면을 먹을 생각에 동생과 나는 신이 났다. 커다란 냄비에 물을가득 채워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보글보글 끓었지만 엄마는

저 웃동네에 볼일을 보러 가신 후 돌아오지 않았다. 그냥 라면 네 개를 다 넣었다. 수프도 넣고 계란도 하나 넣었다. 물을 좀 많이 넣은 것 같았지만, 괜찮았다. 라면이 다 끓었는데도 엄마는 오시지 않았다.

라면이 불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더 이상 엄마를 기다리지 못하고 라면을 그릇에 담아 후루룩 불며 먹었다. 내 나이 12살, 동생 나이 10살.

우리의 먹는 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배불리 먹었는데도 라면이 많이 남아있었다. 라면이 불어 그 많던 국물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그냥 두면 더 라면이 불 텐데.

불어 터진 라면을 엄마가 좋아할까?

엄마는 여전히 오시지 않았다.


고민하다 12살의 나는 라면을 버렸다.

큰 냄비에 절반 이상 남아있던 라면을 시궁창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버렸다.


얼마 후 엄마가 오셨다. 내가 버려 놓은 라면의 면발을 보고 엄마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나에게 화도 내지 않았다. 그저 허탈해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내가 큰 잘못을 했음을 깨달았다.


아마도 엄마는 이 일을 기억조차 못하시겠지.

하지만 난 라면을 먹을 때마다 기억이 떠오른다.


라면을 버리면 안 되었다. 그냥 불어 터져도 그냥 냄비에 남겨둬야했다. 그릇과 냄비를 깨끗이 씻어 놓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어야 했다.


라면을 먹을 때마다 그때의 엄마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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