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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20. 2019

개나 소나 다 쓰고있는, 현실과 마주하다.

이제 더 이상 쓰지 못하겠다.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다. 82번으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이다. 한국이다.

나에게 전화할 한국 사람이 누가 있지?

가족들과는 카톡으로 연락을 한다. 혹시?

괜히 마음이 두근거린다.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스팸 메일 몇 개와 새로운 메일이 도착해 있다.

아래부터 메일함을 열어보았다.


“저희 출판사는 작가님과 출판사가 반 반 부담하면 출판 가능합니다. 생각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자비출판. 하고 싶지만 내 수중엔 돈이 없다.


“내용의 비중을 바꾸고, 개편, 수정하면 출판 가능할 것 같아요. 가능하면 연락 주세요.”

고민이 된다. 어떻게, 얼마나 개편하고 수정해야 할까?


“전화드렸는데 안 받네요. 저에게 전화 한번 주세요.”

OO출판사다. 나에게 걸려온 전화는 출판사였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난주, 투고를 시작했다.

올 초에 투고했던 원고는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썼다. 고치고 다듬어서 다시 투고를 했다.


전화가 왔다. 프랑스 친구 자하나의 집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벌렁이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전화기를 들고 조용한 곳으로 갔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OO출판사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밝은 목소리. 해맑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당황했나 보다.

그는, 뜸을 들이다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지만, 국문학과 나온 사람도 많고 10년 넘게 글을 쓰는 사람도 많아요.”

“네.....”

“투고를 여러 번 하셨던데, 아마 다른 편집자도 보는 눈이 비슷할 거예요. 지금도 투고를 하고 있는 거 보면, 다 안됬죠?”

“아, 네....”

“어.... 요즘 에세이 트렌드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책을 많이 읽어 보시거나, 글쓰기 수업을 들어본 것 같지 않으신데, 해외에서 열심히 사시는 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비출판은 생각 없으신가요?”


“글쎄요. 거기까진 생각을 못해보았어요.”

“네..... 글쓰기 강의를 들어보시거나... 뭐 그런...”

“조언 감사합니다.”

그는 비슷한 말을 계속 이어갔다.

“네, 알겠습니다.”

“네. 그럼.”

......


나한테 왜 전화를 한 걸까? 그것도 국제 전화로?

자비출판하라고 일부러 전화를 한 것 같진 않은데?


그가 한 말을 다시 한번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국문학과 나온 사람도 많고, 10년 이상 글만 쓰는 사람도 많아요.”

: 글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요즘은 개나 소나 다 글을 쓸려고 한다.


투고를 여러 번 하셨던데, 다른 편집자들도 보는 눈이 비슷해요.”

: 이런 글로 투고를 하다니, 아마 다 안 될 것이다.


에세이 트렌드를 모르시는 것 같아요. 글쓰기 클래스도 안 들어 보셨죠?”

:글쓰기 기본이 전혀 안되어 있다. 기본도 없으면서 글을 쓰고 투고까지 하다니, 용기가 대단하다.


자비출판은 생각 없나요.”

:정 하고 싶으면 자비  출판으로 직접 돈을 들여서 출판해라.



그는 아마도, 글쓰기의 기본도 안 된 사람이 자꾸 투고를 하니 짜증이 났을 것이다. 당신은 안되니 그만 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 국제전화를 했겠지. 그런데 목소리가 생각보다 목소리가 너무 해맑았겠지.

독설을 퍼부어 주려고 했는데 순간, 할 말을 잃었을지도. 그래서 주저리주저리 빙빙 돌려 말을 했을 것이다.




어제는 그림 주문을 20개 넘게 받았다. 이걸 언제 다 그리지 싶으면서도 내 그림이 인정받아 기뻤다. 날을 새서라도 다 그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림도 그려야 되고, 투고한 내 원고가 성사되어 글도 써야 한다면 어떡하지? 그럼 난 글을 선택해야지. 다른 사람들에겐 양해를 구해야지.

 ‘글을 써야 해서이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요.’

이렇게 말해야지.


글 쓰기가 무서워졌다.

내가 지금껏 돌린 내 원고가 갑자기 창피해졌다.

내 글이, 내 원고가 국제전화를 해서 말릴 정도로 형편이 없었던 것인가?

실력도 능력도 없으니 더 공부를 하던지, 아니면 그만두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브런치에서 작가라 불러줘서 내가 진짜 작가가 된 듯했다.

사람들이 공감된다고 말해주어 진짜 내 글이 공감되는 글인 줄 알았다.

또 누군가는 재미있다고 하기에, 진짜 내가 재미있게 쓰는 줄 알았다.


지도자 없어도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나침판이 없는 내 글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쓰고 싶은 여러 이야기들이 많이 있음에도, 쓰지 못할 것 같다.

형편없는 글을 쓰게 될까 봐 두렵다.

이제껏 꿈속을 걷다 깨어 현실과 마주했다.



그 편집자는 오늘,

본인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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