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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01. 2019

관계의 가벼움이 주는 편안함

얼굴만 아는 사이

아침마다 학교에 가면 정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 교장 선생님, 행정직원들, 그리고 그녀.

그녀의 이름은 모른다. 그녀의 아이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


아침마다 교문을 들어서면 교장선생님 또는 행정직원들과 인사를 한다.

“Bonne jour!”

“good morning!”

하지만 그녀와는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이 없다.


프랑스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거나 아는 척하는 것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여러 번 겪어본 일이기에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이런 관계가 마음이 편할 때가 있다. 아이들과 같은 반 엄마이지만, 친하지 않을 때는 그냥 쌩까는(?) 사이. 그렇다고 그들이 나를 욕할 것도 아니고 왕따를 시킬 것도 아님을 알기에 무겁지 않은 관계가 오히려 편하기도 하다.


학교에 가서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친구들은 대부분 비프랑스 사람들이다. 홍콩, 베트남 친구는 가장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이이고, 스페인 출신 바네사도 반갑게 인사한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 한국에서 프랑스 학교를 다녔는데 한국과 한국 음식을 너무 좋아한다. 그녀의 아들 죠지는 수줍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그녀는 나에게,

“경복궁 그림을 그려보는 거 어때?”

라고 말한다. 그건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인 것을.....


최근에 알게 된 파나마 출신 자헬과도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쓰고 프렌치는 모른다. 프렌치를 모른다는 것에 서로 동질감을 느낀다.


프랑스 사람들 중에는 전형적이지 않은 사람도 있다. 조하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홍콩에서 살아보았기 때문인지 약간, 아시아 사람의 분위기가 묻어있다.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소곤소곤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조하나는 동양 사람들에게 다가와 함께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있다.



어제도 두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갔다. 역시 그녀가 행정직원들과 교문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이들을 교실로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행정직원과 인사를 했다.

“Bonne Journée”

갑자기 그녀가 나에게 인사를 한다.

“Bonne Journée”

분명히 나에게 하는 인사였다. 난 손을 흔들며 기분 좋게 교문을 나섰다.

별거 아닌 인사 하나에 왠지 기분이 묘하다. 이 학교에 다닌 지 곧 1년이 돼간다. 이제 나도 좀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가?


오늘 아침. 양말을 신느라 늦장을 부린 아이 때문에 늦었다. 분주하게 학교로 걸어가는 길에 그녀를 만났다. 모른 척 지나가려는데 그녀가 나를 보며 씽긋 웃는다

“Hi.”

“Hi.”

우리는 매우 가볍게 인사를 하고 스쳐 지나갔다.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이.

그저 얼굴만 아는 사이.

이제 얼굴을 아는 사이.

우린 이제 아침마다 인사를 한다. 매우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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