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Aug 10. 2019

10년 만에 산 5cm 구두

겨우 5cm or 자신감 5cm


난 조금 내성적인 사람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진 않지만 딱히 즐기는 편도 아니다. 성격이 소극적이어서 손들고 발표를 해본 적도 없다.

성격에 맞게 외모도 그렇다. 눈 고리가 약간 쳐져있고, 엄마 아빠가 물려주신 진한 쌍꺼풀 때문에 선한 인상을 풍긴다. (쌍꺼풀이 너무 진해서 수술한 눈으로 자주 오해받는다.).

이름도 하필 “선량”이다.


성격, 외모, 이름. 삼박자에 맞는 삶을 살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조금씩 허물을 벗었다.


간호사였기에 염색이나 매니큐어를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진한 립스틱을 바르고, 눈에 힘을 주었다.


한마디로, “쌘 여자”로 보이고 싶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커리어 우먼.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여성상이었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는 높은 구두를 신고 다녔다. 특히 발목 스트링이 있는 구두를 좋아했다. 반짝반짝 큐빅이 박힌 조금 화려한 신발을 즐겨 신었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녔다. 어깨가 드러나는 옷도, 하늘 거리는 원피스도 잘 입고 다녔다.

월급을 탈 때마다 한 달 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옷을 사고, 신발을 샀다. 일이 힘들었지만, 돈을 벌어서 원하는 것을 사는 일은 즐거웠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높은 구두도, 화려한 원피스도 나에게 맞지 않는 물건이 되었다.


방글라데시에 사는 동안, 구두를 한 번도 신지 않았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높은 구두에서  내려와야 했다. 구두를 신고 아이를 보는 것만큼 불편하고 힘든 일이 또 있을까?

화려한 원피스는 너무 짧아 입지 못했다. 무슬림의 나라에서는 무릎 위로 올라가는 옷을 입으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게 된다. 깊은 옷장 속에 있던 옷들은 파랗게 곰팡이가 피었다.


이제 신발장에는 플랫 슈즈, 운동화, 젤리슈즈, 슬리퍼가 놓여있다.



아이들이 조금 크니, 착함의 3박자(성격, 외모,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면의 욕구가 스멀스멀 되살아 났다.

외출할 때 다시 붉은 립스틱을 발랐다.

다시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하지만 신발은 사지 못했다.

이미 편한 젤리 슈즈와 운동화에 길들여진 내 발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생들의 발과 비슷해졌다.


아마존에서 마음에 드는 구두를 발견했다.

굽이 5cm, 발목 스트링이 있는 크림색 구두.

장비구니에 넣어 두고 며칠을 고민했다.

‘사도 될까?’

‘아니야, 얼마나 신는다고.’

‘사고 싶다. 그냥 살까?’

‘남편이 뭐라 하는 거 아닐까?’

‘구두가 하나도 없으니 사도 되지 않을까?’

‘휴.....’

겨우 800루피(약 만 오천 원) 짜리 구두를 사면서 뭘 그리 고민하는지....


나를 위해 사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아이들 신발, 옷은 척척 사면서 나를 위해서는 왠지 아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나 자신을 더 사랑해 줘야 하는데, 날 더 아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결국, 장바구니에 넣어 둔 구두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엄마... 이 구두 살까? 어때?”

“이쁘다. 엄마 사!! 엄마 그 옆에 구두도 이쁜데? 이거 살래?”

일곱 살 딸아이의 말 한마디가 신금을 울렸다.

결국, 딸아이의 응원에 힘 입어 결제를 했다. 남편 카드로.....


 낮은 자존감으로 낮은 신발만 신고 살았는데, 오랜만에 5cm 구두를 신으니 자신감도 5cm 정도 올라간 것 같다.

비록, 구두를 신을 일은 많지 않겠지만,  신발장에 놓여있는 구두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다.


이제 카리스마 넘치는 쌘 아줌마가 되어볼까 한다.

(겨우 5cm 구두 하나로,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커버그림_pink shoes ©️sonya]









작가의 이전글 나는 왜 글을 쓰는 거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