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사는 외국인의 거짓말
창문을 열면 바다의 향기를 움켜 쥔 습한 바람이 스웽~~~ 하며 달려든다.
저 멀리서부터 내달려오는 아라비아 해의 파도가 끝없이 남실대며 철썩철썩 소리를 낸다.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딱 1년을 살았다. 난 지금 짐을 싸고 있다. 내일이면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들은 바닥에 무거운 엉덩이 를 붙이고 앉아 그릇 하나하나, 책 한 권 한 권을 쌀 테지. 굼벵이 같은 손동작에 난 옆에서 속이 터질 테지. 혹시나 뭐 가져갈 거 없나.... 하이에나 같은 눈으로 우리 물건들을 훔쳐보는 눈빛을 애써 외면할 테지......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내 손에 돌아오지 못한 물건이 여러 개 있다. 그래서 그들을 믿지 않는다. 이번 이사는 어떨지.....
집을 보러 여러 사람이 다녀갔다.
그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눈앞에 펼쳐진 바다의 자태에 매혹되었다. 더욱이 코리안이 일 년 동안 산 집이라니. 집이 싫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회사 일로 델리로 가야 하기에 가는 것이라니. 그 누구도 이 집에 어떤 하자가 있는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집이 나가든 말든 우리와는 상관없다. 우린 그저 떠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계약을 성사시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말만 해주었다.
“바람이 잘 불고, 뷰가 정말 좋고, 노을이 멋지고....”
이 말은 모두 사실이다. 허나, 좋은 점만 말하고 나쁜 점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빨리 이 집을 떠나고 싶다는 말도.
한참 짐을 싸고 있는데 지난번에 왔었던 사람들이 다시 집을 보러 왔다. 그중 한 명이 물어본다.
“혹시, 이 집에 살면서 힘든 점이나 나쁜 점 없었나요?”
“글쎄요.... 딱히.....”
그들은 알았다고 했다.
난 이 아파트가 꽤 nice하다고 했다.
솔직하게 말해야 했을까?
비가 많이 오면 비가 창문으로 들어온다고, 벽을 통해 비가 들어온다고. 세탁기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물이 넘친다고. 개미가 너무 많다고. 바람이 너무 불어 창문이 흔들려서 무섭다고. 한여름에는 비릿한 바다 냄새가 들어온다고.
한 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그 사람들이 집 계약을 하고, 집주인이 기분 좋게 보증금을 돌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리고 어느 집이나 완벽한 집은 없음을 알기에.
난 솔직하지 못했다.
말하지 못했다.
집 없는 자의 서러움은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과 철썩대는
파도의 소리는 조금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