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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ug 16. 2019

가장의 어깨가 무거워 보일 때

오늘도 고생했어!!


아이들이 방학 후, 매일 늦잠이다. 핑계를 좀 대자면 아이들이 자고 있는 그 시간이 나의 퇴근 시간이기에, 늦게 자거나 새벽에 일어나 꼼지락 거리느라 아침마다 늦잠을 잤다.


오늘도 역시나 늦잠을 잤다. 나와 아이들이 자고 있을 때 남편은 부산하게 일어나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어제부터 이삿짐을 싸고 있다. 오늘은 나머지 짐을 싸고 이삿짐을 컨테이너에 싣는 날이다. 나와 아이들은 호텔에 머물기로 하고 남편 혼자 집에 가서 일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 데리고 가 봤자 방해만 될 것이므로.


그는 아침도 먹지 않고 집으로 향했고, 나와 아이들은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은 후, 아이들과 프랑스어 학원으로 향했다. 남편은 이삿짐을 컨테이너에 모두 싣고 마지막 정리까지 모두 마친 후 우리를 데리러 왔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아 계속 기다렸다. 근처에 갈 곳도, 먹을 것도 없었다. 말없이 앉아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의 눈빛에 피곤함이 서려있다.

5시가 넘어서 수업이 끝났다. 그리고 한인식당으로 향했다. 부대찌개와 불고기를 시켰다. 하루 종일 밥을 못 먹은 그는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그는 원래 먹는 것에 그렇게 연연해하지 않는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굶는다. 아침밥도 잘 먹지 않는다. 아침밥을 몇 번 해 줬지만 아침부터 밥 먹으면 힘들다며 먹지 않았다. 그 뒤로 아침밥 대신 과일만 먹거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출근을 한다.

그렇다고 평소에 밥을 많이 먹지도 않는다. 정말 맛있거나 배가 너무 고플 때, 한 공기 반을 먹는다. 평소에는 한 공기도 남기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숙소로 돌아와 남편의 얼굴을 보니 많이 안쓰럽다. 1년 만에 살이 6킬로가 빠졌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남편 살이 빠지면 이상하게 죄책감이 든다.

살이 빠져 볼이 쏙 들어간 그의 얼굴에서 가장의 고뇌가 느껴진다.


내가 전업주부로 산 8년 동안 그는 우리 집의 가장으로 살아오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산 것도, 인도로 오게 된 것도, 지금 델리로 이사를 하는 이유도 모두 그의 직장 때문이다.


난 어렸을 적에 한 번도 해외 생활을 꿈꾸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 때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다. 난 막연하게 생각했던 해외생활이지만, 그는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벌어야 하기에 공부를 했고 취업을 했다.


그리고 소원한 대로 해외에서 살아가고 있다.

소원을 이루면 행복할까?

행복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냥 별생각 없이 살아간다.

직장생활이 힘든 것은 한국이나 해외나 똑같고, 내가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외벌이로 살아야 하고, 혼자서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부담은 클 것이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나 좀 쉴게.’

‘꿈 깨. 책이 이 세상에 나온 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야. 책을 출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중에 대부분은 소리 없이 사라진대.’

그의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쳤지만, 그의 말속에 숨어있는 고단함을 엿보았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나이 들면 시골 가서 농사를 짓거나 물고기를 잡으며 살자고.

젊은 날, 타지에서 고생했으니 노년은 시골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도 될는지.

하지만 그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할 테지.



우리가 선택한 삶이기에 순간순간 힘들어도 미래를 생각하며 다시 일어선다.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기보다는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하지만 힘들어 보이는 남편의 어깨를 보는 일은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그의 고단함은 가끔 내 감정에 전이가 된다. 그러면 나도 한 없이 우울해 지거나 감정의 어두움을 만나곤 한다.

그의 어깨가 오늘따라 더 무거워 보이는 이유는 그가 더 지쳐 보이기 때문일까? 그의 감정이 나에게 전이되어 내가 더 큰 어둠의 그림자를 만들었기 때문일까?


다음 날, 새벽 12시.

남편은 공항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오는 회사 손님 픽업을 나간 것이다. 그의 어두운 뒷모습에서 가장의 무게가 느껴진다.




내가 힘들 때 남편은 가끔 마사지를 해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꾹꾹 눌러준다.

힘들어 보이는 남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물조물 마사지해주었다.

가장의 무거운 어깨를, 어두워 보이는 그의 등을, 기운 없어 보이는 그의 팔을, 불안해 보이는 그의 다리를 꾹꾹 눌러주었다.


“고맙지? 나밖에 없지?”

좀채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그에게 셀프 땡큐를 강요했다.

“그래, 고마워.”

한마디 던지고 그는,

“머리도 좀 해줄래?”

그래. 몸보다 머리가 가장 힘들겠지.

그의 머리를 꾹꾹 눌러 주었다.


뭉쳐있던 근육과 함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도 모두 부드럽게 풀어졌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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