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을 책으로 배운 아이들

15. 해외에 오래 산 아이들의 한국어

by 선량

제 아이들은 해외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한국말을 꽤 잘합니다. 해외에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영어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편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니면 한국말이긴 하지만, 영어의 R 발음이나 th 발음이 섞여있죠.


델리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한인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요, 아이들도 새로운 주일 학교에서 새로운 한국 친구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러더군요.

“애들이 한국말을 잘 못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제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봐요. 요즘은 만화책에 폭 빠져서 학교 가고 오는 길에 꼭 만화책을 봅니다. 학습 만화도 있고,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도 있고, 짱뚱이 이야기도 있어요. 학습만화 많이 읽으면 만화책을 너무 많이 본다고 걱정 하지만, 저흰 냅 두고 있어요. 저도 만화책 좋아했거든요.

한 번은 저도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좀 했어요.

“만화책 너무 많이 보는 거 아니야? 다른 책도 좀 봐야지.”

그랬더니, 아이들이 이러더군요.

“엄마, 만화책도 책이야.”

“음....” 뭔가 말을 더 하고 싶었는데, 못했어요. 만화책도 책이니까요.


책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아이들은 자주 문어체를 사용해서 말을 합니다. 일반적인 한국 아이들이라면 잘 쓰지 않는, 그러니까 책에서나 쓰는 말을 사용해요.

큰 아이는 “게다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요.

물론 “게다가”라는 말이 이상하거나 잘못된 말은 아니지만, 좀 느낌이 이상해요.

일반적인 아이들이라면,

“넌 짜증도 많이 내. 또 울기도 잘해.”라고 말을 하죠.

하지만 제 큰 아이는,

“넌 짜증을 많이 내. 게다가 울기도 잘해.”

음.... 다른 아이들도 이런 말 자주 사용하나요???



한 번은 아이가 이렇게 물어보았어요.

“엄마 왜 자꾸 “자연스럽게”라고 하는 거야? 자연은 그냥 나무나 풀, 꽃 이런 거잖아. 왜 자꾸 자연스럽게 하라고 하는 거야? 나무처럼 하라는 거야?”

“.......”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까요?

자연스럽다
1. 억지로 꾸미지 않아 어색한 데가 없다
2. 무리가 없고 당연하다
3. 힘들이거나 애쓰지 않고 저절로 그렇게 되는 상태이다
-다음 국어사전-

휴.... 뜻풀이에 들어간 말이 더 어렵습니다.


이런 말도 자주 해요.

“엄마, 우리 집은 자연친화적이야. 식물이 많잖아.”

“엄마, 차가 너무 많아서 자연친화적이지 않아.”

“이 공원은 정말 자연친화적인걸!”

맞는 말이긴 한데, 자연친화적이다 라는 말을 이렇게 사용하는 게 뭔가 어색해요.


아이한테 뭐라고 하진 않아요. 어쩌겠어요. 좀 더 크면.... 고쳐지겠죠?



둘째도 역시나 책으로 한국어를 배웠어요. 둘째는 말을 자기만의 말로 바꿔서 말하는 버릇이 있어요. 뭔지는 알지만, 그 단어가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을 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합니다.

“엄마, 장난감이 부러졌어. 연고 좀 발라 줘.”

“......... 본드?”

“응, 본드.”


“엄마, 땅콩 차 먹고 싶어.”

“그게 뭐야?”

“그거 있잖아. 땅콩 같은 거 들어 있는 차.”

“아~ 율무차?”

“응, 그거.”


“엄마 나무를 벨 땐 곡괭이가 필요해.”

“도끼겠지.”

“아 맞다. 도끼.”


휴.....

한국말은 잘 하지만 디테일은 많이 약합니다. 그래서 한글 공부 좀 하자고 하면, 한국말 다 할 줄 아는데 왜 하냐고 그래요.

정말, 자신감 장난 아니죠.


책을 좋아하니까 계속 꾸준히 읽다 보면, 조금씩 좋아질까요? 원래는 일주일에 한 번은 한글 문제집도 풀고, 짧게라도 독후감 쓰기도 했는데, 지난주엔 아무것도 안 하고 넘어갔어요. 다 게으른 엄마 탓이에요. 아니, 사실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 게 힘들어요. 놀고만 싶은 아이들 책상에 앉혀서 문제 하나라도 풀게 하려면 잔소리하고 화도 내고해야 하는데, 하기가 싫었어요. 저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쉬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들 공부도 신경 안 쓰고 있었네요. 학교 숙제도 어제 오후에 부랴부랴 하고, 받아쓰기 연습도 어젯밤에 딱 한번 해보고.

역시, 엄마가 부지런해야 아이들도 공부를 잘하는 것 같아요.


공부, 저도 잘 못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잘하라고 말을 못 하겠어요. 오늘 단어는 꽤 어렵더군요. 받아쓰기 빵점 맞으면 안 되는데..... ^^;;;



오늘은 장똘배기와 홍시가 뭐냐고 물어보네요. 장똘배기 설명하는데, 장이 뭔지부터 시작해서 옛날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어요.

또 홍시 이야기하다가 결국, “진짜 먹고 싶다.” 하고 끝났어요.

“엄마, 그래서 홍시가 뭐냐고?”

“응, 맛있고, 말랑하고, 달콤하고..... 너무 먹고 싶네”



한국어,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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