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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0. 2019

다시 돌아온 치타공

방글라데시, 치타공에서 두 아이 키우기

나와 아이들이 한국에 있는 동안 남편은 혼자서 이사를 했다. 한인 가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쿨시’라는 지역이었다.

쿨시는 South Kulsi와 North Kulsi가 있는데 주로 North Kulsi에 한인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나무가 많고 산책할 수 있는 곳이 좀 있었다. 무엇보다도 안전한 곳이었다. 하지만 놀이터나 놀 만한 곳은 그 곳에도 없었다.

둘째 소은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 지안이 손을 잡고 쿨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공사장 모래밭에 철퍼덕 앉아 모래 놀이를 하고, 미니 자동차를 들고 나와 자동차 놀이를 했다. 땀이 뻘뻘 나는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날마다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바깥 놀이를 하면 10분만에 땀으로 온 몸이 흠뻑 졌었다.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되어 돌아와 물놀이를 했다. 물놀이하는 종종 물감과 붓을 주어 욕실 벽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며 놀게 했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해외에서 지내는 것이 힘들기는 했지만 점점 적응이 되었다.



이곳으로 이사하기 전 같은 동네에 살면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지현씨네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지현씨가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넘겨준 많은 책들 덕분에 아이들과 날마다 책을 읽으며 지낼 수 있었다. 그 책들은 지금까지도 잘 읽고 있다.

North kulsi에는 여러 한인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던 언니들은 나와 아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이미 그곳에 산지 몇 년씩 된 선배 엄마들이었다.

승희 언니는 우리 아파트 바로 앞에 살고 있었는데, 나보다 8년이나 먼저 치타공에 살고 있었다. 언니는 마흔이 넘어 첫째 지우를 낳아 키우고 있었는데, 지안이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었지만 날마다 만나서 놀았다.

“지안아, 뭐해?”

“그냥 있어요. 언니.”

“우리집으로 와. 집에 돼지고기 있어. 삼겹살 해먹자.”

“우와. 고기가 있어요?”

“응. 애들 좀 놀리고 우리 커피한잔 하고 같이 점심 먹게 얼른 와.”

“네. 바로 갈게요.”

승희 언니는 점심 때면 우리를 불렀다. 거의 날마다 언니 집으로 찾아 갔다. 언니의 집에는 없는 음식이 없었다. 귀한 한국 음식부터, 돼지고기, 떡볶이, 돈가스 등, 치타공에서는 구할 수 없는 음식들이 많았다. 그런 귀한 음식을 언니는 기꺼이 내놓았다. 음식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장난감도 많아서 지안이는 매일매일 지우네 집에 가자고 했다.

“언니, 뭐해요?”

“응, 지우랑 그냥 있지. 놀러 올래?”

“네, 지안이가 놀러 가고 싶대요.”

“그래 얼른 와.”

언니는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승희 언니는 힘들 뻔했던 내 치타공 생활에 오아시스 같은 분이다. 언니에게서 받은 그 친절과 사랑 덕분에 하루하루를 잘 견디며 지낼 수 있었다.


나에게 푸름이를 소개시켜 주었던 최원애 집사님 집에도 자주 놀러 갔다. 최 집사님 집은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그 집에 가면 항상 책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수아와 연우는 거기를 지나 다니다가 발에 걸리는 책을 손에 들고 읽고는 다시 놀았다. 집사님은 그 당시 셋째를 가지셨었는데 여전히 씩씩하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소은이, 지안이도 집사님 댁에 가면 함께 책을 보며 놀았다. 집사님은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와, 책 이야기, 책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기야, 아이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책을 읽어 주는 거야.”

“그런데 진짜 좀 힘들기도 해요. 너무 졸려서 읽어주다가 막 짜증이 나거든요.”

“그래서 나는 글자를 빨리 가르쳤어. 우리 수아가 좀 빨랐거든. 그런데 둘째는 잘 안되더라. 첫째와 둘째는 성향이 달라서 학습하는 것도 다른 것 같아.”

“네, 우리 지안이는 좀 느릴 것 같아요. 남자 아이들이 좀 느리잖아요.”

“맞아. 소은이는 좀 빠를 것 같은데? 벌써 저렇게 책 읽어주면 듣고 있잖아.”

“그랬으면 좋겠어요.”

집사님은 유아교육을 전공했었다. 그래서 항상 여러가지 책에 대한 지식과 육아에 대한 지식들을 알려주곤 했다. 덕분에 육아에 무지했던 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생각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지은언니는 한번씩 불러 맛있는 점심을 해주었다. 언니는 결혼하자 마자 이곳에 와서 두 아이를 낳아 잘 키우고 있었다. 언니도 치타공에 산지 이미 오래 되어서 모르는 것이 없었다. 치타공의 여러 숨은 공간과 식당을 잘 알고 있었다. 언니는 특히 둘째 소은이를 너무 예뻐해 주었다. 한번씩 놀러 가면 귀한 한국과자를 손에 쥐어 주곤 했다. 요즘도 한번씩 연락을 먼저 해주고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어봐 준다.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주현언니는 자주 불러 커피를 한잔씩 타주곤 했다. 해외에 살다 보면 믹스 커피가 그렇게 맛있다. 한국에서는 잘 먹지도 않는 커피였는데, 주현 언니집에 가서 마시는 믹스 커피는 너무 맛있었다. 함께 치타공에서의 어려움, 남편 이야기, 회사이야기들을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아들 셋을 키우던 현주 집사님은 우리가 치타공으로 돌아온 후 몇 달 뒤에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 아들 셋을 힘들게 키웠지만 그 내면에는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남에게 사랑을 베풀려는 마음이 있었다. 집사님은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정말 많은 책을 주고 갔다. 치타공에서는 살 수도, 구할 수도 없는 책들이었다. 집사님께서 준 책들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마르고 닳도록 읽고 있다.

쿨시 산책 길

내가 치타공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사람들 덕분이었다.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 나눠주고, 먹여주고, 베풀어 주었다. 물론 몇몇 안 되는 한인 사회에서 어려움도 있고, 작은 일에도 말이 많아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갈 곳도 없고, 놀 곳도 없는 그곳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갈 곳이 있다는 것,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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