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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0. 2019

두 아이와의 하루

바쁜 엄마의 삶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지 못하니 집이 어린이집이 되었다. 지안이가 좀 더 어렸을 때는 대충 시간을 보내면 되었지만, 조금 크니 뭔가를 해줘야 했다. 치타공으로 다시 돌아오면서부터 이것 저것 놀이를 하며 지내게 되었다. 가장 많이 했던 놀이는 물감놀이이다. 그림과 물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난 저렴한 물감과 붓을 사서 종이에, 대리석 바닥에, 욕실에 그림을 그리며 신나게 놀았다. 방글라데시의 바닥은 모두 대리석이다.

“지안아, 이거 무슨 그림이야?”

“음……. 몰라.”

“엄마가 보기엔 토끼 같은데? 이건 자동차를 닮았고?”

“응, 맞아 이건 토끼고, 이건 자동차.”

“와, 멋진데?”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형이상학적인 그림을 그리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사진을 찍어 주었다.

“지안아, 이건 무슨 색이야?”

“빨강?”

“응 맞아. 그런데 빨강이랑 파랑이랑 섞으니까 이상한 색이 됐다. 그치?”

“응, 색깔이 섞이니까 똥 색이 됐어.”

“지안이가 똥 쌌나?”

“히히히. 아니, 엄마 똥.”

“윽, 냄새~”

“히히히, 엄마 똥~”

지안이는 그때의 기억이 지금은 없지만 여전히 미술을 좋아한다. 그리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그림을 그린다. 아이가 물감과 붓을 좋아하는 아이로 큰 것이 참 감사하다.

물감놀이 못지않게 많이 했던 놀이는 밀가루 놀이이다.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찰흙이나 좋은 클레이를 치타공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중국산 클레이가 있긴 했지만 심한 석유 냄새가 났다. 그래서 가장 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밀가루를 가져다가 마음껏 놀았다. 부엌의 여러 통에 밀가루를 담아주고, 숟가락이나 국자를 가지고 소꿉놀이를 했다. 그러다 물을 조금 섞어 반죽을 하면 클레이 놀이를 할 수가 있었다. 온몸에 끈적끈적 붙어버린 밀가루를 씻어내며 다시 한번 물놀이를 했다. 매우 습하고 더운 그 곳에서는 하루에도 여러 번 물놀이를 해야 했다.

아이들이 좀 더 커서는 밀가루로 반죽을 해 쿠키나 머핀을 직접 만들었다. 직접 만든 쿠키가 사다 먹은 쿠키보다 맛은 덜 했다. 하지만 거기에 아이들의 기대 한 스푼, 엄마의 사랑 두 스푼, 아이들의 자부심 세 스푼이 첨가되어서인지 어느 과자 보다도 맛있게 먹었다. 지금도 아이들은 자주 쿠키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설탕, 버터, 계란 넣고 휘휘 젓다가 밀가루 넣고 또 휘휘 저은 후, 대충 동글동글 하게 만들어서 오븐에 넣고 구워 준다. 모양도 예쁘지 않고, 맛도 그냥 그런데 아이들은 여전히 맛있다고 먹어준다.

지안이가 가장 좋아했던 놀이는 레고 블록 놀이였다. 지현씨가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주고 간 레고 블록은 지안이의 가장 좋은 장난감이 되었다. 레고로 집도 만들고, 성도 만들고, 동물원, 자동차길을 만들며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한번 만든 레고 집은 일주일 정도 부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해 놓아야 했다. 그 레고 집을 가지고 다시 역할 놀이를 하며 놀았다. 4살때부터 가지고 놀던 레고 블록은 8살 때까지도 애지중지 가지고 놀았다. 이미 오래 되고 낡아버린 블록은 많이 헐거워져 있었다. 그래도 절대 버리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귀하게 아끼던 블록은 얼마전 다른 친구에게 양보를 하고, 지금은 작은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다. 레고로 온갖 건물을 만들던 지안의 꿈은 건축 설계사로, 지금은 호텔 사장님으로 변했다. 어떤 꿈이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꿈 꿀 수 있는 아이가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치타공 쿨시에서 4살 지안이와 2살 소은이를 키우면서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모든 놀이는 지안이 위주로 이루어졌는데 둘째는 참관자로, 관찰자로, 또는 방해꾼으로 함께 했다. 특히 멋지게 만들어 놓은 레고 성을 소은이가 헤집고 기어 다니는 바람에 항상 눈물바람이 일었다. 결국, 지안이의 모든 장난감을 책상 위로 올려야 했다. 소은이가 잡고 서면서부터는 더 높은 곳으로 장소를 옮겨야 했다. 한참 소유욕이 강한 지안이와 네 것, 내 것의 개념이 없는 소은이를 함께 돌보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지안이는 여전히 낮잠자기를 싫어했다.

“지안아, 소은이 재우고 나올 게. 거실에서 잠깐만 놀고 있어.”

“응, 엄마.”

소은이를 재우기 위해 조용히 방에 들어가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막 잠이 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벌컥 문이 열리며,

“엄마~, 왜 안 와?”

“앙~~~앙~~.”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날마다 반복되는 모습에 화를 참 많이 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둘이 한꺼번에 재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안아, 엄마가 책 읽어 줄게. 엄마 옆에 누워 봐.”

“엄마, 책 읽어 줄 거야?”

“응, 소은이는 재우고, 지안이는 책 읽어야 하니까 자지 마. 알겠지?”

“응, 난 안 잘 거야. 책 볼 거야.”

“그래, 지안이는 책 보자.”

지안이는 그렇게 내 옆에서 책을 보다가, 엄마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소은이도 옆에서 따라 듣다가 잠이 들었다. 어느 날부터 소은이가 책에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10개월 즈음부터 자꾸 책을 가져와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책을 읽어 달라는 행동이었다. 돌이 지나서 말을 배우기 시작한 소은이가 제일 많이 한 말은,

“엄마~, 짹~” 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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