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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0. 2019

호기심 대마왕 소은이

소은이는 아기 때부터 호기심이 무척이나 많았다. 모든 뚜껑을 열어보고 다녔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은 일단 입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블록, 장난감, 책은 말할 것도 없이 모두 소은이의 입을 거쳤다. 문제는 바닥에 떨어진 먼지나 작은 쓰레기까지도 입으로 가져갔다. 뭔가 조용하다 싶으면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구강기의 아기들이 대부분 비슷한 모습이겠지만, 소은이는 유독 심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쌀 한 톨까지도 찾아냈다.

치타공의 평균기온은 35도를 웃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루룩 흐른다. 그런 날씨에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하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서 집에서는 자주 기저귀를 빼 놓고 있었다. 하루는 소은이에게 기저귀를 채우지 않고 거실에서 놀리고 있었다. 잠시 지안이가 화장실에 가야해서 자리를 비웠다. 다시 소은이에게 돌아와 보니 아이 옆에 응가가 보였다. 내가 없는 사이에 동글동글 귀여운 응가를 싸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이 입에 무엇인가가 있었다.

“소은아, 너 입에 뭐야?”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 아이의 입을 얼른 벌렸다. 아이의 입에는 동글동글한 그 무언가 가 들어가 있었다.

“세상에, 이걸 입에 넣으면 어떻게. 내가 못살아, 아이고 더러워라.”

아이의 입 안에 든 그것을 억지로 빼 내고 입을 씻기면서 너무 기가 차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자주 아이들을 데리고 집 밖에 나가 공사장 근처에 쌓여 있는 모래 옆에서 놀곤 했다. 지안이는 모래 옆에서 자동차 놀이도 하고 모래 놀이도 하며 놀았다. 소은이가 혼자 앉을 수 있을 때 즈음엔 소은이도 모래밭에 철퍼덕 주저 앉아 함께 모래놀이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내 소은이의 입 주위는 모래로 가득 묻어 버렸다. 모든 것들을 입으로 맛보고 확인을 해야 하는 아이였다. 모래와 흙, 응가까지도 맛을 본 소은이는 다행히 지금까지 큰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이런 소은이의 호기심은 오빠인 지안이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지안이가 뭔가를 하고 있으면 기어이 기어와서 참견을 했다. 지안이가 먹는 것, 지안이가 가지고 노는 것, 지안이가 읽는 책까지도 욕심을 냈다. 그래서 지안이는 동생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곤 했다. 지안이는 자기를 따라다니는 소은이를 자주 밀어버리곤 했는데 그때 마다 소은이는 바닥에 넘어져 머리를 다치거나 입을 다쳤다. 한번은 대리석 바닥에 너무 심하게 쿵 하며 넘어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 마음을 졸였다. 소은이의 울음소리가 길어지자 내 마음은 방망이질을 해댔다. 병원을 가야 하는 것인지, 더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행히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치고 잠이 들었을 때, 아이의 머리를 감싸고 보호해 주고 있는 두개골 뼈가 너무너무 고마웠다. 아이의 머리가 다치지 않게 보호해 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아이의 머리에는 커다란 혹이 생겼다.

그 뒤로도 소은이는 자주 넘어지고 다쳤다. 특히 입술이나 잇몸을 자주 다쳐 피가 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지안이는 죄인이 되었다. 소은이의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지안이의 잘못으로 끝나곤 했다.


소은이의 호기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안이는 수상한 물체가 보이면 일단 서서 관찰부터 하는 반면 소은이는 뛰어가 그 물건을 집어 들고 본다. 그것이 쓰레기던, 돌맹이던 그 무엇이던 손에 들고 무엇인지 확인을 한다. 그래서 항상 아이 손에는 그 무언가 들려 있다. 길에서 주운 돌멩이, 특이하게 생긴 나뭇잎, 예쁜 꽃 한송이, 가끔 아주 작은 반짝이는 큐빅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절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손가락으로 꼭 붙들고 있다. 그래서 소은이의 주머니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들어있다. 빨래할 때 마다 아이의 주머니를 뒤져 빼놓아야 하는 일은 나의 몫이다. 아이의 호기심은 최근에 지적 호기심으로도 확장되었다. 책을 보다 모르는 말, 모르는 단어, 모르는 영어 단어 등을 곧잘 물어본다. 가끔 대답하기 힘든 난감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엄마, 모기는 사람을 물어서 가렵게 하고 좋은 일은 하지 않는데 왜 하나님은 모기를 만들었을까?”

“아빠 몸에 있는 애기 씨가 어떻게 엄마 애기집으로 들어 간 거야?”

“엄마는 책으로 세상을 배워야 한다고 했는데 책에는 사실이 아닌 일들이 너무 많아. 어떻게 고양이가 말을 하고,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사자랑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겠어?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

소은이는 하루종일 질문을 한다. 재잘재잘 하루 종일 말을 하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소은아, 너는 말을 하지 않으면 심심해?”

“응, 난 조용한 게 싫어. 난 말하는 게 좋아. 그래서 난 계속 말하고 노래할거야.”

반면 지안이는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홍소은, 말 좀 그만해. 시끄러워 죽겠어.” 하고 타박을 준다. 하지만 소은이는 오빠의 타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한다. 너무나 다른 두 아이의 성향 때문에 가끔 난감할 때가 있다.



하루는 지안이에게 물어보았다.

“지안아, 넌 뭐가 제일 힘들어? 어떤 것 때문에 힘든 지 말해봐.”

“난 소은이 때문에 힘들어. 난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은데 자꾸 시끄럽게 하고 나만 따라다녀.”

그 말을 하는 아이의 눈이 빨개지며 촉촉해졌다.

“그랬구나. 그게 많이 힘들었구나. 그럼 어떻게 하지…….”

“난 그냥 오빠랑 놀고 싶어서 그런 거지.”

소은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지안이가 혼자 놀고 싶으면 엄마한테 말을 해. 그러면 지안이는 방에 들어가 혼자 20분 동안 놀고, 소은이는 엄마랑 같이 노는 거야. 어때?”

“좋아.”

“좋아.”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인정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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