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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Oct 17. 2019

1. 셀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길

[소설] 셀 게스트하우스의 비밀


비행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설화는 팔짱을 낀 채 창 밖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낯선 도시의 모습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사이를 날아가며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7시간의 비행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2편의 영화를 봤고, 악뮤의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푹 잠을 자고 일어났다.

2편의 영화 중 하나는 평소에 좋아하던 영화 모아나였다.  그녀는 서른이 훌쩍 넘은 어른이었음에도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애니메이션을 즐겨본다. 특히 “모아나”라는 애니메이션은 이미 3번을  보았기에 대사까지 외울 정도가 되었음에도 비행기 안에서 한 번 더 보고야 말았다.

그녀는 모아나 영화를 보면 볼수록 주인공에 빠져들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당차고, 용기 있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구릿빛 피부에 납작코를 가진 모아나가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특히 덩치도 크고 힘도 세고 능력도 좋은 마우이 앞에서 절대 기죽지 않는 모아나의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다른 한 편의 영화는 이병헌과 공효진이 나오는 영화였다. 그들의 연기력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꼭 한번 보고 싶었지만, 영화관에 가서 돈 주고 보고 싶진 않았다. 마침 비행기 스크린 안에 그 영화가 있었다.  


설화는 내심 기대를 하며 그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이병헌이 나오고, 공효진이 나오고, 원더걸스 출신 소희가 나왔다. 배경은 호주였다. 소희의 연기가 생각보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소희가 워킹홀리데이를 왔다가 사기를 당할 때 즈음 설화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보니 이륙시간 다 되어 있었다. 영화의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널브러져 있던  헤드폰을 반납하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휴, 진짜 여길 왔구나.’


뿌연 먼지에 쌓인 낯선 도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화는 가방에서 콤팩트를 꺼내 얼굴을 비춰 보았다. 번들번들한 이마가 눈에 들어왔다. 퍼프를  꺼내 빠르게 이마부터 턱까지 톡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립스틱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아는 사람도 없는데, 이건 좀 오버지.’


비행기는 빠르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더니 드디어  작은 두 바퀴가 땅에 닿으며 덜커덩거리기 시작했다. 공중부양을 하고 있는 그 느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 시간이 가장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큰 비행기가 작은 바퀴에 의지해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이러다 어딘가에 콕 처박을 것 같은 공포감이 일었다.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매번 같은 생각을 했고, 매번 가슴을 쓸어내렸으며, 매번 사고가 나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멈추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 짐을 챙겼다. 설화의 짐은 매우 단출했다. 작은 크로스 백 하나, 백팩 하나, 캐리어 하나.

지하상가에서 산 크로스 백은 값은 쌌지만 주머니가 많아 꽤 유용했다. 콤팩트와 립스틱, 수첩과 펜, 머리 고무줄, 머리핀, 껌 또는 사탕. 가장 중요한 지갑까지 쏙 들어갔다.

검은색 백팩에는 가장 중요한 노트북이 들어있다. 이미 오래되어 성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5년간 동고동락하며 함께 한 노트북이기에 설화에겐 보물 1호나 다름없다. 작은 캐리어에는 옷가지들이 들어있다. 처음부터 이곳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기에 짐을 많이 챙기진 않았다. 일주일, 아니 어쩌면 4일로도 충분할 거야.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사이사이로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설화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너 알지? 해외에서는 한국 사람을 조심해야 돼. 사기꾼 중에 한국 사람이 제일 많거든. 조심해라.”

그녀의  성격을 잘 아는 친구 미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설화는 단출한 짐을 들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6월의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어디로 가야 하지?’

두리번거리는 미영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릭샤? 택시?”

설화는 갑작스러운 사람의 등장에 깜짝 놀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도에서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특히 혼자 여행 온 여자는 더 조심해야 된다고 했다.

‘나 혼자 여행 온 거 너무 티 나는 거 아니야?’

그 생각을 하며 주위를 휙 둘러본 설화는 다시 눈을 내리 깔 수밖에 없었다. 여러 택시 기사들, 릭샤꾼들,

오고 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인도의 뜨거운 열기가 머리 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핸드폰을 들고 우버 앱을 실행시켰다. 미리 한국에서 우버 앱을 다운로드하여 놓았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숙지하고 왔다.

“셀 게스트 하우스” 목적지를 지정하고 실행을 시키니 공항 근처의 여러 우버 택시가 잡혔다. 띠링~ 그중 한 대가 신호를 잡았다. 1분 후 그녀 앞으로 택시 한 대가 섰다. 그녀는  핸드폰에 나온 차량 번호와 기사 이름을 확인한 후, 차 문을 열었다. 차 안에서 캐캐 한 에어컨 냄새가 확 풍겨 나왔다. 설화는  짐을 먼저 싣고 자신의 몸도 차 안으로 들이밀었다. 이마에서 흐르던 땀이 차가운 에어컨 바람과 만나 가볍게 공중으로 증발하며 설화를 사르르 떨게 만들었다.

“유어 네임 쏠롸?”

“예스.”

택시는 조용히 출발했다. 어둠이 짓게 드리운 저녁, 뜨거운 공기를 뚫고 우버택시는 셀 게스트 하우스로 향하고 있었다.

‘과연 내가 잘하는 짓일까?’


택시 기사는 말이 없었다. 창 밖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사이드 미러를 통해 기사의 날카로운 눈빛이 언듯 언듯 비치는 듯했다. 설화는 그 눈빛이 꼭 자기를 주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뉴스에서 본 기사가 떠올랐다. 우버택시기사한테 당한 이탈리아 여자에 대한 기사였다.

그녀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쥐었다. 에어컨 바람으로 차 안은 매우 추웠지만, 손에서는 땀이 났다. “쿨럭” 기사가 기침을 했다. 사이드 미러에 비친 기사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어둠에 깊기 묻혀있었다.

설화는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운전대가 한국과 반대편에 있었고, 차가 달리는 방향도 한국과 달랐다. 왼쪽과 오른쪽이 헷갈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아, 젠장. 제대로 가는 거야. 뭐야.’

설화는 우버 앱을 다시 실행시켰다. 거기에는 가고 있는 길과 목적지가 지도로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현기증이나 울렁거림과는 아무 상관없이

우버택시는 목적지를 향해 착실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예상 소요시간 3분.

어느새 목적지까지에 거의 다다랐다. 그제야 설화는  긴장을 늦출 수 있었다. 울렁거리던 가슴이 진정되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우버택시는 어느새  셀 게스트하우스 앞에 그녀를 내려주었다. 우버 앱에 등록해 놓은 카드로 택시비가 지불되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설화는 가방을 들고 택시에서 내리며 처음으로 기사에게 말을 했다.

“땡큐”

그녀의 눈 앞에 작은 간판이 하나 보였다.

“SHELL guest house.”

글자 옆에는  작은 조개 그림이 있었다.

간판 전구가 고장 났는지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현관문 문틈 사이로 작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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