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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Oct 18. 2019

2. 마담 크리스나

[소설] 셀 게스트 하우스의 비밀

설화는 시끄러운 종소리에 눈을 떴다. 딸랑딸랑, 딸랑, 딸랑…. 무한 반복되는 종소리에 맞춰 쨍긋, 쨍긋, 쨍그르르~얇은 커튼 사이로 햇살이 춤을 추고 있었다. 눈을 뜨고 한참을 꿈뻑였다. 느낌적으로는 이미 아침시간이 훌쩍 지난 것 같았다. 5년 동안 아침 6시에 일어나 기계적으로 씻고, 화장하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선 습관 때문인지, 그러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도 그녀의 눈은 저절로 떠졌다. 휴대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 순간 매캐하면서 눅눅한 냄새가 났다. 설화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의 출처를 찾았다.

‘어디에 불이 났나? 전기가 합선되었나?’

방안을 휙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불이 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햇살과 탱고를 추고 있던 얇은 커튼을 휙 젖혔다. 그제야 설화는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창 밖의 시간은 이른 아침에 머물러 있었다. 몇 대의 빈 릭샤가 서 있었다. 릭샤꾼들은 작은 의자에 둘러앉아 소주잔처럼 생긴 유리컵에 짜이를 홀짝이고 있었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가게들은 아침 장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한 젊은 남자가 가게 앞을 쓸고 있었다. 그가 쓸고 있는 먼지들은 앞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공중으로 솟아올랐고, 그 주위를 뿌옇게 만들었다. 설화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 옆 가게의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남자는 물이 담긴 작은 종지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이내 반대 손의 엄지와 검지를 종지에 넣어 물을 묻힌 후 가게 앞에 뿌렸다. 그러더니 손을 다시 자신의 이마에 올리며 중얼중얼거렸다. 설화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티브이 속에서나 보던 모습처럼 느껴졌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종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매캐한 냄새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설화가 머물고 있는 방 안의 시간은 정오였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지금이 몇 시지?’ 휴대폰의 시계는 12시였다.

'아참, 시간을 안 바꿨구나.'

설화는 시계 설정으로 들어가 서울에서 델리로 시간을 맞췄다.이네 설화의 시간은 3시간 30분만큼 뒤로 밀려났다.

똑똑똑

설화는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벌떡 일어나 방 문을 열었다.

“블랙 퍼스트?”

어제 체크인할 때 본 젊은 아가씨였다.

“아, 네. 곧 나갈게요.”

설화는 풀어헤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벗어놓은 카디건을 하나 걸쳤다. 방문을 열자 매캐한 냄새는 사라지고 카레 냄새가 달음질치며 다가왔다. 갑자기 위액이 한꺼번에 분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다이닝 룸에는 길쭉한 테이블과 4개의 의자가 있었고, 한쪽에는 4인용 소파와 등나무로 만든 의자 2개가 놓여있었다.

“헤이, 네가 어젯밤에 온 사람이구나. 난 마리라고 해. 프랑스에서 왔어.”

긴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 안녕. 난 설화라고 해. 한구에서 왔어.”

“솔라?”

“아니, 설화. 내 이름이 발음하기 좀 어렵지.”

“그래. 쏘올롸. 좀 어렵다. 그냥 쏠이라고 부를게.”

마리는 그렇게 말하더니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설화는 마리의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커피?”

“고마워.”

주방에서 젊은 인도 여자가 커피를 한잔 들고 왔다.

설화는 커피를 홀짝이며 맞은편에 앉은 마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꽤 늘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웨이브 진 머리카락은 무심한 듯 묶여있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민 낯의 그녀 얼굴은 주근깨인지, 기미인지 모를 작은 점들이 보였다. 유난히 긴 속눈썹이 무겁게 보였다.

“넌 여기 왜 왔니?”

설화의 시선을 느꼈는지, 마리는 고개도 들지 않고 질문을 했다.

“어…. 난 그냥, 여행 왔어.”

“인도 카레 좋아하니?”

“싫어하진 않아.”

“여기선 아침에 인도 카레를 주거든. 먹기 싫으면 빵을 먹어도 돼. 커피는 주방에 있으니 먹고 싶을 때 먹어도 되고. 점심과 저녁은 알아서 해결해야 돼. 저기 일하고 있는 젊은 여자 이름은 안 비라고 해. 불편한 거나 무슨 일 있을 때 안비한테 말해면돼. 넌 여기 며칠 묵을 거니?”

“아, 난 4일 정도?”

“4일? 나도 처음엔 그랬지. 그런데 4일이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2주가 되었어. 지금은 한 달째 여기 머물고 있어.”

“어, 그렇구나. 그런데 왜?”

“음, 이 집 카레가 죽여주게 맛있거든”

설화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4일이 한 달이 된 이유를 물었더니, 카레가 맛있다고 대답하다니. 더욱이 프랑스 여인 마리의 말을 알아먹기가 힘들었다. 유독 R발음을 할 때, H소리가 났다.

안비가 카레와 밥을 담은 그릇을 가지고 나와 설화 앞에 놓았다. 설화는 그 카레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먹어봐. 진짜 맛있어. 난 인도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건 잘 먹지 못하거든. 그런데 여기 카레는 뭔가 틀려. 뭐랄까……. 오리엔탈의 맛과 21세기의 맛이 어우러진 맛이라고 할까?”

마리의 말을 들으며 설화는 숟가락을 들었다. 약간 갈색빛이 나는 카레를 떠 밥 위에 올렸다. 조금 비벼서 입에 넣어 보았다.

설화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카레의 맛은 설화가 익히 알고 있던 맛이었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그 맛을 어찌 잊겠는가? 그런데, 그런데…….

“너 왜 그래?”

멍해진 설화를 보며 마리가 물었다.

“아, 아니야. 혹시 이 카레 누가 만들었는지 아니?”

“아, 이거? 이건 마담 크리 스나가 만든 거야.”

“마담 크리스나라고?”

“응. 넌 아직 못 만났구나? 어제 네가 좀 늦게 체크인 하긴 했지. 마담 크리 스나가 이 게스트하우스 주인이야. 아니 실질적인 운영은 딸이 하고, 크리스나는 1층에서 살면서 여기를 관리한다고 하더라. 딸은 여행 가이드하느라 바쁘다는 말도 있고, 해외에 있다는 말도 있고. 암튼, 그렇대.”


마담 크리스나. 그리고 그녀의 딸.

설화가 셀 게스트하우스에 오게 된 이유는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을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카레의 맛을 본 설화는 그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마담 크리스나는 어디서 만날 수 있니?”

“1층에 가면 있을 거야. 거기서 살거든. 안비한테 물어보면 안내해줄 거야. 그런데 밥부터 먹는 게 어때? 난 프랑스 사람이라 원래 아침엔 바게트 같은 빵을 먹거든. 그런데 여기 온 뒤론 아침마다 밥을 먹고 있어.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카레 먹어본 적 있니? 그래서 난 여기 못 떠나고 있어. 젠장 오늘 아침도 너무 많이 먹어버렸어. 나 요가 가야 되는데. 내가 말했나? 나 여기서 요가 배우고 있다고? 여기서 마스터 코스까지 배운 다음에 프랑스에 가서 요가 강사가 되려고 해.”

설화는 마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더 이상 카레를 먹을 수가 없었다. 홍수처럼 분비되던 위액은 어느새 설화의 기분을 살피며 잠잠해졌다.

“안비? 나 마담 크리스나를 만날 수 있을까?”

“오, 그럼요. 절 따라오세요.”

설화는 벌떡 일어나 안비의 뒤를 따랐다.



안비의 키는 설화의 어깨만큼이었다. 긴 머리를 돌돌 말아 머리에 고정한 모습이 꽤 깔끔해 보였다. 작은 키와 다르게 그녀의 걸음걸이는 다부지게 느껴졌다. 안비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설화의 심장은 빠르게 두근거렸다.

‘그래. 그냥 눈으로 확인만 하면 되는 거야. 그래. 그러면 된 거야.’

안비와 설화는 어느새 1층으로 내려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침에 맡았던 매캐하고 찌릿한 냄새가 확 밀려왔다. 작은 그릇에 담긴 긴 막대기 세 개가 타고 있었다. 활짝 열린 발코니에 누군가가 앉아 짜이를 마시고 있었다.

“마담”

안비는 모르는 인도말로 마담 크리스나에게 말을 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몸을 일으켜 설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손바닥을 모으고 고개를 약간 숙였다.

“나마스떼.”

“아, 안녕하세요. 전 서울에서 왔어요. 마담을 만나고 싶었어요.”

“오, 마담은 영어를 못해요. 힌디만 할 수 있죠. 제가 통역해 줄게요.”

“네? 영어를 못한다고요?”

“네. 왜 그러시죠?”

“아, 아니에요.”

설화는 마담 크리스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마에는 붉은 물감이 칠해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검은색보다 흰색이 더 많았다. 긴 머리가 하나로 단정하게 묶여있었다. 피부는 주름져 있었고, 손은 거칠어 보였다. 깊고 큰 눈은 슬퍼 보였고, 긴 속눈썹은 하늘로 쏟아 있었다.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특별히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아, 아니에요. 그저 인사하고 싶었어요.”

안비는 마담에게 다시 한번 힌디로 말을 했다. 마담 크리스나는 안비의 말에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안비에게 뭐라 말을 했다.

“마담께서 한국 사람이니 특별히 잘해주라고 하시네요.”

“아, 감사해요.”



설화는 2층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먹다 만 커피가 차갑게 식어있었다. 마리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노란 빈그릇이 남아있었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쓰디쓴 커피가 다시 위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화는 입맛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아빠가 만들어준 카레와 똑같은 맛을 가진 이 음식을 더 이상 목구멍에 넣을 수가 없었다.

‘내가 잘하는 짓일까? 괜히 온 것일까?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그래, 그 딸만 만나보고 가자. 그 딸을 만나면 모든 게 확실해지지 않을까?

설화는 쓰디쓴 커피를 벌컥벌컥 마신 후, 자신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려 몸을 돌렸다. 이내 벽에 붙어있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셀 게스트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침은 인도 카레와 커피, 빵입니다. 다른 것을 드시고 싶은 분은 직접 사 오셔도 무방합니다. 점심과 저녁은 드리지 않습니다. 대신 커피와 짜이는 항상 주방에 있습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싶으신 분은 문 밖에 두세요. 방은 오전 10시에 청소합니다. 원하지 않는 분은 안비에게 말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모든 불편한 사항은 안비에게 문의해 주세요." -마담 크리스나-


이 글은 영어로, 그리고 한글로 쓰여 있었다. 설화는 한글로 써진 안내문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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