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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Oct 19. 2019

3. 다이너소어

[소설] 셀 게스트 하우스의 비밀

“대리님, 대표님께서 잠깐 오시래요.”

설화는 숨을 깊게 들어마시고 내뱉었다. 미끌거리는 무언가가 들숨과 날숨을 통해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깊은 숨을 한번 더 내뱉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실로 들어갔다.

“아, 이대리. 기획서 읽어 봤는데, 아무래도 좀 어려울 것 같아.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우리 출판사가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잖아? 아니 그렇다고 내가 페미니스트를 뭐라고 하는 건 아니고. 암튼, 난 이것보다 이게 더 좋은데. 이 원고 한번 읽어봐요.”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번번이 자신이 기획하고 싶은 원고는 퇴짜를 맞았고, 대표님이 원하는 원고가 되돌아왔다. 처음엔 신참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5년 차가 되어서도 매번 똑같은 상황은 설화를 지치게 만들었다.

“대표님, 이 원고는 페미니즘과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이에요. 그저 워킹맘의 실질적인 모습을 감성적으로 담은 글입니다.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본인의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인데, 어느 부분이 페미니즘이라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요즘 워킹맘에 관한 책이 꽤 많아요.”

“아니, 그렇긴 하지만. 너무 여성 위주 아닌가 해서. 비난받기 딱 좋은 글이잖아요. 난 우리 출판사가 총알받이가 되고 싶진 않아요. 최근에 나온 그 82년생 김지영 그거 책 나왔을 때도 엄청 말 많았잖아요. 난 그렇게 시끄러운 거 딱 질색이야.”

 

설화의 속에서는 미끌거리는 무언가가 계속 돌아다녔다. 그것을 토해내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대표님 앞에서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원고 읽어봐요. 난 이런 여행 에세이가 좋더라고. 이영하의 여행의 이유 책도 엄청 인기 있잖아. 우리도 그런 거 만들어 보자고. 또 알아? 엄청 잘 팔릴지. 우리도 장사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직원들 월급도 주고 그러지. 내 말 알아듣겠어요?”

“네. 일단 읽어보겠습니다.”


설화는 대표님이 내 민 원고를 집어 들고 자리로 되돌아 갔다. 원고를 책상에 던져놓고 탕비실로 향했다. 커피메이커에 담긴 커피를 한잔 가득 컵에 따라 들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원고 옆에 커피를 내려놓고 의자에 앉자 삐걱 소리가 났다.


5년 동안 함께한 의자에서는 앉을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났다. 처음엔 그 소리가 그저 좋았다. 자기 자리가 있다는 것이, 전용 컴퓨터가 있다는 것이 그저 좋았다. 그런데 이제 삐걱 거리는 의자의 소리도, 컴퓨터의 뻑뻑한 자판기 소리도 듣기 싫어졌다.

 

설화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국문학과를 졸업하진 못했지만, 글 쓰는 것을 좋아해 문학 동아리에 들어가 글을 썼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던 그녀는 28살이 되어서야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자격증이나 영어 점수는 그녀에게 없었다. 단지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며 쓴 글과 몇 번의 공모전 당선작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녀의 잘못은 남들 공부하고 유학 갈 때,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한 것뿐인데,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대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자기 스펙은 자기가 쌓는 거라고 했다.

그랬던 그녀가 바로 출판사에 합격을 한 것이다. 비록 작은 출판사였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만드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합격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출판사에서 출판 일도 배우고, 책도 만들며 자신의 글도 써보겠다고 그녀는 다짐했다.

 


바로 출판사에서 일한 5년 동안 그녀는 자신의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일 하다 보니, 그 글이 자신의 글인지 작가의 글인지 헷갈렸다. 큰 맘먹고 컴퓨터에 앉아 글을 써 보려 했지만, 회사에 남겨 둔 원고의 내용만 생각날 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작가 지망생이 아니었다. 책을 만드는 편집자가 돼있었다.

 

하지만 편집자의 일도 쉽진 않았다. 매일 회사 메일로 날아오는 원고들 중, 꽤 괜찮은 글을 발견해도 그 글이 책이 되기는 힘들었다. 아무리 편집자의 눈에 좋은 글이 들어와도 출판사 대표의 눈에 들지 않으면 책이 될 수 없었다.

책이 좋고 글이 좋았지만, 매 달 월급을 받아야 하는 월급쟁이인 그녀에게  출판사는 책을 만들어내는 한갓 공장에 불과했다.


설화도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직서를 품에 안고 다녔다. 한참 퇴사와 관련된 책이 우후죽순으로 나왔을 때, 설화도 퇴사와 관련된 책을 편집하고 세상에 내놓았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퇴사 관련 책에 묻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퇴사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었다. 자신의 인생도 그 책 같다는 생각을 했다. 퇴사하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자기 계발을 하는 사람들, 투자하는 사람들,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재취업을 위해 다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녀야 하는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그녀의 경력은 꼴랑 출판사 5년, 나이는 30대 중반. 매달 받는 월급에서 엄마 생활비까지 보내고 나면, 그녀는 삼포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연애 포기, 결혼 포기, 아이 포기.

 


그녀의 친구 미영은 3년 전 결혼 후 전업주부가 되었다. 바로 아이가 생겼고, 지금은 또 하나의 생명을 품고 있다. 미영은 설화를 보면 항상 같은 말을 했다..

“넌 결혼하지 마.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 절대 안 해. 내가 무슨 이 집 시다바리도 아니고. 손에 물도 안 묻히게 하겠다더니, 손 마를 날이 없다니까. 내가 집에서 논다고 생각해. 그게 말이 되니?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아니, 돈 벌어 온다고 얼마나 유세를 떠는지. 휴, 나도 너처럼 일하고 싶다. 넌 절대 절대 결혼하지 마. 혼자 자유롭게 살아.”


설화는 미영의 말에 웃고 말았지만, 그녀의 말이 배부른 투정으로 들렸다. 설화는 미영처럼 집에서 남편 밥을 해주고, 셔츠를 다려주고, 아이를 씻기고 어린이집에 보내는 그런 엄마의 일상이 매우 행복한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설화는  책상에 놓아둔 원고 꾸러미를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저게 내가 쓴 글이었으면, 저기에 내 이름이 쓰여있었으면…….’

하지만 그 원고엔 강 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름이 강철이 뭐야. 본명이야 예명이야? 아이언 맨이 낫겠네.’

원고의 제목 조차 미영의 맘에 들지 않았다.

‘나를 행복하게 만든 테이블’

‘뻔한 식신로드겠지. 이 나라 , 저 나라 여행 다니면서 얼마나 맛있는 걸 먹어대며 저런 글을 쓰겠어. 행복한 테이블? 거짓말하고 있네. 독자들은 속을지 몰라도, 난 안 속지.’

설화는 속이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한껏 여유로워 보이는 여행기가 한때는 부러웠다. 퇴사를 하고 떠나기만 하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부러움을 넘어 질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여행을 떠날 수도, 맛있는 테이블에 앉을 수도 없는 자신의 신세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이너 소어. 우후 우 후우후 우 우후후 우후 우후후 우후, 다이너 소어


그녀의 속에서 미끌거리던 무언가가 노래를 불렀다.

그녀를 억누르고 있는 이 상황은 다이너소어였다. 너무 무거웠고, 두려웠고, 때론 미끄럽기까지 했다.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용기를 낼 수 조차 없는 다이너소어.


난 아무것도 몰랐거든. 아직도 그때가 생생해.

 무서울 게 없었던 어리기만 한 나를 펄쩍 뛰게 한, 펄쩍 뛰게 한, 펄쩍 뛰게 한, 다이너소어~

 

노랫속 그들에겐 가족이 있었다. 무서운 공룡이 나와도 함께 이겨낼 수 있었다.

설화는 그런 가족이 부러웠다. 날 꼭 안아 줄 아빠가, 울먹이는 나를 토닥이는 엄마가…….

 

설화는 원고를 손에 들고 휘리릭 넘겨 보았다. 예상대로 여러 나라에 대한 소개와 함께 식사 테이블이 소개되고 있었다.

‘어? 인도네. 아빠가 좋아하던 나라인데. 요즘은 인도는 별로 인기 없는데. 한물 간 나라인데.’

설화는 인도에 대한 부분을 펼쳐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한 구절에 멈춰 더 이상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다.

“셀 게스트하우스. 이곳에서 맛본 아침 테이블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냈다. 담배, 술, 커피, 마약에 대한 중독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아침을 먹는다면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된다. 난 이곳의 아침에 중독되어 사흘이 이주가 되어버렸고, 이주 후에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멈칫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그 구절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셀 게스트하우스. 어디서 봤더라. 분명 들어봤는데.’

하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수많은 원고를 읽었고, 책을 만들었다. 그 원고들 중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쉽게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분명 업무적 공간이 아닌, 개인적인 공간에서 들어 본 이름이었다.

 

퇴근 후에도 셀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생각은 끊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그것에 대한 생각은 다이너소어처럼 커졌고, 그녀를 짓눌렀다. 알아내야 한다는 강박과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무심함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했다.

커다란 다이너소어가 강박 편에 붙어 힘껏 잡아당기자 무심함은 질질 질 끌려가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별거 아니었던 기억의 조각을 생각해냈다. 그건 바로 엄마의 목소리였다.


.

 

“설화야, 아빠한테 여자가 있었나 봐. 인도에……. 아빠 유품에서 뭐가 좀 나왔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여자라니? 아빠는 인도에 일하러 간 거 아니야?”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아빠 옛날 지갑에서 영수증이 나왔는데…….”

“영수증이 뭐?”

“셀 게스트하우스라고 써져 있는데…….”

“그게 왜? 아빠가 거기서 지냈나 보지.”

“아니, 근데 너희 아빠는 출장 갈 때마다 회사 숙소에서 지낸다고 했거든.”

“에이, 엄마.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 괜한 생각 하지 마.”

“그렇겠지? 근데, 엄마 느낌이 그냥 좀……. 이상해서. 별거 아닐 거야. 그렇지? 하긴, 이제 와서 그걸 알면 어쩌겠니. 이 세상 사람도 아닌데, 따질 수도 없고. 엄마가 한 말 그냥 잊어버려. 아, 그런데 영수증에 글자가 써져있어. 한글인데 아빠 글씨는 아니야.”

“뭐라고 쓰여있는데?”

“마야라고. 애기 글씨체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잊어버려. 별거 아닐 거야.”

 

 


설화는 컴퓨터를 열고 셀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해 보았다. 검색이 되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은 아닌 모양이었다. 구글로 들어가 다시 검색을 해 보았다. 그곳에서 아주 짧은 글 하나를 검색할 수 있었다.

셀 게스트하우스 : 아담하고 눈에 띄진 않지만, 아침 카레가 맛있는 곳. 위치:빠하르 간즈, xxxx.


순간, 설화는 다시 속이 미끌거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다이너소어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삼킬 것 같았다. 공룡에 잡아 먹히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그녀는 인터넷에 또 하나를 검색했다.

”사직서 쓰는 법”

 작은 스피커에서는 악뮤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의 옛날 동네
옛날 동네 반지하 빌라엔
네 가족 오순 도순
오순 도순 잘 살고 있었네
화장실 문 밑엔
쥐가 파놓은 구멍이
매일 밤 뒤척거리시던 아버지
No problem
난 아무것도 몰랐거든
아직도 그때가 생생해
무서울게 없었던 어리기만 한 나를
펄쩍 뛰게 한
펄쩍 뛰게 한
펄쩍 뛰게 한
Dinosaur
Dinosaur
어릴 적 내 꿈에 나온 Dinosaur
어릴 적 내 꿈에 나온 Dinosaur
비명과 함께 깼네
함께 깼네 네 가족이 다 같이
따스한 이부자리
이부자리 두 발로 걷어찼지
엄마는 날 안아줘
내 못 감추는 울먹임
TV 보며 진정하라 하셨지
깜빡깜빡 거리네
까만 방이 번쩍거리네
아직도 그 꿈이 생생해
무서울게 없었던 어리기만 한 나를
펄쩍 뛰게 한
펄쩍 뛰게 한
펄쩍 뛰게 한
Dinosaur
Dinosaur
어릴 적 내 꿈에 나온 Dinosaur
어릴 적 내 꿈에 나온 Dinosaur
우리 집 창문을 부수고
내 가족에게 포효하던
널 다시 만나면
그땐 너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를래
더 크게 소리 지를래
더 크게 소리 지를래
더 크게 소리 지를래
Dinosaur
Dinosaur
어릴 적 내 꿈에 나온 Dinosaur
어릴 적 내 꿈에 나온 Dinosaur


[DINOSAUR _악뮤]



***이 글은 모두 허구이며, 출판사와 편집자에대한 내용은 작가의 상상에 의해 창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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