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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Oct 21. 2019

4. 아이언 맨

[소설] 셀 게스트하우스의 비밀


 

비행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강철은 두 손을 깍지 끼고 하늘 높이 올려 스트레칭을 했다. 손가락 마디에서 우두득 소리가 났다.

하늘 어딘가에 떠 있는 비행기는 가야 할 길을 모른 체 갈팡질팡 하는 자신처럼 느껴졌다. 분명 땅에서 쏘아 올린 신호를 따라 하늘길을 날고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신호는 그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비행기가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면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하늘 길을 날았지만, 결국엔 목적지에 도착한 비행기처럼, 자신의 삶도 이 비행기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뿌연 먼지에 쌓인 익숙한 도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철의 심장도 빠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숨 가쁜 시간을 보낸 일이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그에게 인도는 낯선 사람과 짜이 한잔을 마시며 웃을 수 있는 곳이었다.


드디어 작은 두 바퀴가 땅에 닿으며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몸이 뒤로 쏠리는 짜릿한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며 두 다리를 쭉 뻗었다. 그의 가슴이 함께 덜컹거렸다.

비행기가 멈추자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짐을 챙겨 나갈 때까지 여유롭게 좌석에 앉아 있었다. 통로가 한가해지자 그는 천천히 일어나 짐칸에서 커다란 배낭 하나를 꺼냈다. 그의 짐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항상 노트북을 챙기고 다녔지만 이번만큼은 휴대폰을 제외한 모든 전자기기를 한국에 두고 왔다. 그는 휴대폰도 놓고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집을 나서기 직전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대신 충전기는 챙기지 않았다. 배터리가 모두 떨어져 휴대폰이 꺼지면 그냥 그대로 지낼 생각을 했다. 그에게 인도는 휴대폰이 없어도 되는 곳이었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연락이 안 된다며 답답해 할 것이다.

 

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서있었다. 그중 가장 빨리 통과될 것 같은 줄에 가서 섰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웬일인지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한두 번 겪어본 일이 아니기에 그러려니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국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눈에 띄었다. 그중 한 젊은 여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발끝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하는 여자가 혼자 저렇게 서있지?’

강철은 그녀의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주머니가 많은 크로스백에, 검정 백팩. 작은 캐리어 하나. 딱 보니 혼자 여행하러 온 사람의 모습이었다. 뭔가 불안한 듯 고개를 들어 여기저기 살피다가 다시 땅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누가 봐도 초행길임을 알 수 있었다.

‘으이그, 혼자 왔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구먼.’

이내 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는 앞으로 몇 걸음을 옮겼다. 그가 다시 눈을 들었을 때는 어느새 그의 시야에서 그녀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공항을 나서서 지하철을 역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릭샤와 택시들이 어지럽게 모여있었다. 그 사이에 아까 본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 손으론 가방을 꽉 잡고, 한 손으론 휴대폰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내 우버택시 한 대가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휴대폰과 택시를 몇 번 번갈아 보더니 뒷좌석 문을 열고 짐을 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강철은 출발한 우버 택시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택시 번호를 몇 번 읊조렸다. 어둠이 짖게 깔린 밤이었다.

 

뉴델리역에서 내린 그는 익숙한 거리를 걸었다.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좁은 도로 사이를 릭샤가 달리고 있었다. 사람과 오토바이로 엉킨 길을 보니 그는 가슴이 확 트였다. 엉켜있는 그 모습에서 그는 사람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헤이, 아이언. 다시 왔어?”

골동품 가게의 주인 라자가 그를 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헤이, 라자. 잘 지냈어? 지금 막 오는 길이야. 가게는 어때?”

“그냥 그렇지 뭐. 원래 여행자들이 많이 오는 계절인데, 이번엔 많지가 않네. 곧 몬순이 시작할거야. 그러면 손님이 더 줄 텐데. 걱정이야. 뭐 하나 사갈래? 필요한 거 없어? 좋은 물건 많이 들어왔어. 구경 좀 하고 가. 이번에도 거기 묵을 거야?”

“응. 내일 다시 놀러 올게. 지금은 너무 늦었어. 쉬고 싶어.”

“오케이. 그럼 내일 아침에 일찍 와. 짜이나 한잔 하게.”

“알겠어.”

강철은 라자 골동품 가게를 지나 셀 게스트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게스트하우스의 간판에는 여전히 불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헤이, 아이언 드디어 왔구나. 많이 늦었네.”

“응. 아, 피곤하다. 잘 지냈어, 살만? 안비도 있었네? 내 방 준비됐지? 마담은 잘 있고?”

“하하하, 천천히 해도 돼. 뭐가 그리 급해. 이번엔 며칠이나 지낼 생각이야?”

“글쎄. 돈이 떨어질 때까지?”

“아이고, 내일이면 돈 다 떨어지는 거 아니야? 저 앞에 그 영감탱이 집에 가서 돈 다 쓰고 올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았어? 안 그래도 오는 길에 만났는데. 내일 아침에 짜이 한잔 하기로 했어.”

“으이구. 그 능구러기 영감탱이가 나한테 너 언제 오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거든. 조심해. 돈 다 털리지 말고.”

“하하하. 알겠어. 조심할게. 나 피곤해서 방으로 올라갈게.”

“오, 그래. 안비 안내해드려. 아참, 좀 전에 한국 사람 한 명 더 왔었어. 깜짝 놀랐어. 우리 게스트하우스에 한국 사람은 너 뿐이었잖아. 혹시 네가 소문 좀 내준 거 아니야?”

“어, 그래? 아닌데. 소문 좀 내려고 했는데, 아직이야. 내 책이 아직 안 나왔거든.”

“뭐, 아무튼. 난 좋아. 우리 마담이 한국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거의 안 오거든. 이번 기회에 소문 좀 났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저 간판 전등이나 좀 고쳐.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저 모양이야.”

“에이, 저건 내 소관이 아니야. 마야가 와야 뭘 하지.”

“아직도 안 왔어?”

“응. 이번 여름엔 온다고 하던데. 모르겠어. 마담이 아직 말이 없네.”

“그래. 그럼 난 올라갈게.”

“그래 쉬어.”

 

강철은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갔다.

‘한국 사람이라고? 누가 온 거지? 한국 사람들은 이런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신기하네.’

 


“이쪽 방이에요. 그럼 쉬세요.”

“안비, 지금 이 게스트하우스에 손님 몇 명이나 있어?”

“지금 4명 있어요. 내일 한 명 더 오기로 예약되었어요. 그래서 3층도 오픈하려고 해요.”

“오, 그렇군. 고마워.”

“네. 쉬세요.”

 


강철은 무거운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이불에서 인도 냄새가 났다. 그는 집에 있는 향긋한 이불보다 인도 냄새가나는 이불이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씻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피곤함이 온몸을 짓눌렀다. 그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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