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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Oct 23. 2019

5. 공기 같은 사람, 소금 같은 사람.

[소설] 셀 게스트하우스의 비밀


“띠리리링, 띠리리리링~”

요란한 휴대폰 벨소리에 강철은 눈을 떴다.

“여보세요.”

그의 목소리는 반쯤 잠겨있었다.


“어이, 작가님. 아직도 자고 있어요? 벌써 아침이 한참 지났어요. 얼른 일어나시지.”

“누구세요?”

“누구긴. 바로 출판사 대표지.”

그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 대표님.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인도에 와있거든요. 여긴 아직…. 어…. 몇 시지? 암튼 아직 새벽이에요.”

“그래요? 통화료 많이 나오겠구먼, 그럼 용건만 간단히 할게요. 원래 맡기려고 했던 편집자가 갑자기, 정말 갑자기 퇴사를 해버렸어요. 퇴사가 유행이라더니. 암튼, 그래서 그 편집자 말고 다른 편집자한테 다시 맡겼거든. 아마 곧 연락이 갈 거예요. 능력 있는 사람이라 아마 잘 도와줄 거예요.”

“아, 네. 감사합니다.”

“뭐 감사는. 좋은 글을 책으로 만들어 내는 게 우리 일인데 뭐.”

“네. 아참, 제가 휴대폰 충전기를 안 들고 와서 전화가 곧 끊어질 거예요. 연락하실 일 있으면 메일로 주세요.”

“네? 휴대폰이 안되면 얼마나 불편한데. 세상에나. 그래서 내가 작가님을 좋아한다니까. 일반적이지가 않잖아. 그래도 글은 좀 일반적인 면이 있어야 하지만요. 허허허. 그럼 끊을게요.”

“네.”

 


 

 강철은 두 손을 위로 올려 스트레칭을 하면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마담이 향을 피웠나 보네.’

휴대폰 시계를 확인해 보니 인도 시간으로 6시였다. 그는 머릿속으로 3시간 반만큼의 한국 시간을 떠올렸다.

천천히 일어나 바닥에 뒹굴고 있는 배낭을 열었다. 가방 속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옷가지들과 속옷, 필기도구들이 한데 엉켜있었다.  커다란 손을 가방 속에 넣고 더듬거리며 속옷을 찾았다. 그리고 샤워실로 향했다.


밤 동안에 푹 자는 동안 방광은 가득 차 있었다. 시원하게 볼일을 본 후 옷을 벗고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미지근한 물이 졸졸졸 나오기 시작했다. 졸졸거리는 물에 머리를 들이밀고 씻기 시작했다. 물살이 세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흐르는 물에 천천히 몸을 씻으면 그의 생각도 물처럼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는 몸에 비누를 묻히며 세 달 전의 일을 떠올렸다.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가 하나 전달되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전 바로 출판사의 김형준 대표라고 합니다. 다름 아니라, 작가님의 인스타 그램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어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는 모습이 꽤 인상 깊었습니다. 혹시 써 놓은 원고가 있으신가요? 저희 출판사와 함께 책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요? 관심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강철은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유명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라 생각했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다. 최근에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꽤 많아지고 있었다. 그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미리 써 놓은 원고는 없지만, 금방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강철은 글을 쓴다거나 책을 낸다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 머물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아무도 모르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좋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책이 나온다면 아버지께 좀 더 떳떳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여느 아버지처럼 그에게 안정적인 인생을 살라고 말씀하셨다. 이미 서른이 넘었음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기만 하는 그를 못마땅해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 같았다.


그 날로 그는 그의 모든 기억을 끌어 모았다. Sns에 올렸던 사진들과 글을 보면서 긴 호흡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경험이 잿빛 추억이 되어 사라진 것도 꽤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빛바랜 기억들이 다시 선명해졌다.

그는 글을 쓰면 쓸수록 과거가 현재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곧 미래가 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쓴 원고를 바로 출판사에 보내고, 그는 출간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강철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가볍게 닦고 속옷을 입었다. 그리고 벗어 놓았던 옷을 다시 입었다. 옷에는 어제의 비행기 냄새가 아직 남아있었다.

 

그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주방에서 안비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헤이, 안비. 좋은 아침.”

“굿모닝. 아이언. 커피?”

“아니야.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셀 게스트하우스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습한 공기가 그의 폐로 확 들어왔다. 동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뭉게뭉게 뭉쳐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비가 오려나?’

그는 릭샤꾼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쳐 천천히 걸었다. 슬리퍼에서는 탁탁 소리가 났다. 라자가 가게 앞을 청소하고 있었다.

“라자. 좋은 아침.”

“오, 아이언 일찍 왔네. 들어와. 어서 들어와. 짜이 한잔 하고 가.”

“아직 가게 정리 안된 것 같은데?”

“뭔 상관이야. 의자만 있으면 되지. 어서 여기 앉아.”

라자는 가게 안으로 강철을 끌고 들어가 등나무 의자를 내밀었다.

“어서 앉아. 아 그리고 뭐 필요한 거 없는지 잘 봐봐. 좋은 거 많다니까.”

“나 돈 안 들고 나왔는데.”

“뭔 상관이야. 나중에 주면 되지. 우리 사이에.”

강철은 라자의 “뭔 상관이야.”이 말을 듣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절대 상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헤이, 여기 짜이 두 잔만 줘.”

라자는 큰 주전자와 종이컵을 들고 다니는 짜이 보이에게 짜이 2잔을 주문하고 20루피를 내밀었다. 강철은 종이컵에 든 짜이를 한 모금 마셔보았다. 설탕 한 봉지가 다 들어간 듯한 달콤함이 혀끝에서부터 밀려왔다.

“이번엔 얼마나 있을 거야?”

“글쎄. 잘 모르겠어. 금방 갈 수도 있고. 오래 있을 수도 있고.”

“곧, 몬순이 시작될 거야. 그러면 돌아다니기 힘들어질 거야.”

“나도 알아. 그럼 그냥 숙소에 있어야지. 아니면, 남쪽으로 가볼까? 첸나이나 케랄라나 뭄바이나.”

“몬순 때는 어딜 가나 고생이야. 그냥 여기 있어. 우리 가게에 매일 와. 네가 와서 지키고 있으면 장사가 더 잘 될 거야. 외국인이 있으면 외국인이 더 꼬이거든.”

“그럼 나한테 일당 줄 거야?”

“벼룩의 간을 빼먹지. 다 알면서. 허허허. 대신 내가 기념품 하나 선물로 줄게.”

“나 없어도 장사 잘하면서 뭘 그래.”

“아니야. 요즘 진짜 잘 안된다니까.”

“그래. 알겠어. 자주 놀러 올게.”

강철은 차가워진 짜이를 후루룩 마시고 일어섰다.

“벌써 가려고?”

“응. 하던 거 마저 해. 다음엔 내가 짜이 살게.”

“그래. 또 봐.”

 


강철은 라자의 가게를 빠져나와 게스트 하우스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전 10시가 되면 이곳은 활기찬 여행자의 거리가 될 것이다. 단체 관광객이 와서 기념품을 사 가고, 외국인 커플이 와서 인도의 옷을 사 갈 것이다. 강철은 이 거리가 복잡해 지기 전, 릭샤꾼들과 장사치들이 한데 모여 짜이를 마시고, 청소를 하고, 가게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이들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들의 여유로운 손짓이 그에게 전염되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뭔 상관이야.”

라자의 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여행자의 거리를 한 바퀴 돈 후,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왔을 때, 현관에서부터 카레 냄새가 났다.

‘아, 먹고 싶었던 냄새다. 배가 고프네.’

강철은 계단을 2개씩 밟으며 성큼성큼 2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2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낯선 여자가 벽을 보고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강철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테이블로 향했다. 낯설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뒷모습이었다.

순간 강철은 수정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오빠, 오빠는 공기 같은 사람이 좋아, 아니면 소금 같은 사람이 좋아?”

“그게 무슨 말이야?”

“난, 공기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랑, 오빠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랑.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사랑. 그런데 오빤 아닌 것 같아.”

“내가…. 너에게 실수한 거라도 있니?”

“아니, 없어. 난 그냥 오빠에게 어떤 존재인지 궁금할 뿐이야. 없으면 죽을 것 같은지. 아니면… 있으면 맛있지만, 없어도 먹을 수는 있는 존재인지.”

“글쎄. 난 네가 없다고 해도 죽을 것 같진 않은데.”

“그렇지. 그런 것 같았어. 나만 죽을 것 같았나 봐. 우리 그만 만나자.”

 

낯선 여자의 뒷모습에서 그는 수정의 마지막 두 단어를 떠올렸다. 공기와 소금.

 

 


 


설화는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낯선 남자의 눈빛과 마주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그 남자의 한국 인사에 설화의 눈은 토끼눈처럼 동그랗게 변했다.

“공기 같은 사람, 소금 같은 사람. 어느 쪽이 더 좋아요?”


설화는 30초 정도 생각한 후,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소금이요.”





안녕하세요. 쏘냐입니다.

제가 쓰고있는 이 소설은 제가 살고있는 인도가 배경이에요. 그래서 좀 낯설으실것 같아요.


부족한 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부터 2주간 한국으로 휴가를 떠납니다. 그래서 당분간 “셀 게스트하우스의 비밀”은 연재하지 못할 것 같아요. 빨리 비밀을 알려드리고 싶지만, 참겠습니다.


대신 한국에서의 소소한 휴가 일상으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커버사진 _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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