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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Oct 28. 2019

한국의 바쁜 일상. 이제야 글을 씁니다.

슴슴한 일상이 그리운 이유

수요일.

저녁 비행기를 탔습니다.


목요일.

아침 7시에 제2터미널에 도착했어요. 비행기에서 내려서 입국 수속을 밟고 나가는데,

“000님? 이쪽으로 오시죠.”

“네? 무슨 일??”

“혹시 축산업 관련일 하시나요?”

“......”


알고 보니, 저희 한국 주소지가 친정집으로 되어있는데, 친정집이 전라도 고흥입니다. 즉, 저희 세대주는 제 아버지.  축산업 관련자들인 거죠.

방역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짐을 들고 방역실로 갔습니다. 네모 난 상자에 들어가서 온 몸을 소독하고, 저희 짐들도 소독을 했죠. 인도는 고위험지역이라네요. 요즘 돼지열병이 심각하기도 하고요.

저희는 5일 동안 농장 출입금지를 당했습니다.

해외에 산 지 8년 차인데 이렇게 철저하게 방역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어요.


피곤하지만 아이들 데리고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낙엽만 밟아도 까르르 웃음이 나더군요.

아이들은 단풍잎도, 은행잎도 기억하지 못해요. 매 년 더운 여름에 한국을 다녀갔을 뿐, 가을에 한국에 온 것은 5년 만이거든요.

마트에 가서 과자도 잔뜩 사 먹고, 그 앞에서 500원 넣고 뽑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었죠.

전, 아메리카노 한잔을 테이크아웃했어요. 그리고 낙엽이 떨어진 길을 걸었습니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 저희에겐 특별한 일이에요.


금요일.

용산역에 가서 KTX를 타고 순천으로 향했습니다. 3시간 후 순천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고흥으로 갔어요. 1시간 후, 고흥읍에서 내려 드디어 친정엄마를 만났습니다. 휴......



 토요일.

엄마 밭에 가서 팥을 땄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어요. 바람이 엄청 불었죠. 혹시나 아이들 감기 걸릴까 걱정했지만, 아이들은 강아지마냥 뛰어다닙니다.  오후엔 순천에 살고 있는 친한 선생님 가족이 저희를 보러 오셨어요. 다카 살 때 옆집 살던 분들인데, 한국에서 보니 더 반갑더군요. 그동안 나누지 못한 수다를 떨고, 저녁으로 돼지갈비를 먹었습니다.


일요일.

아침부터 서둘러 짐을 쌓어요. 엄마 차를 빌려서 광주로 향했습니다. 광주는 제 두 번째 고향인데요,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양림동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너무 변해버린 양림동 모습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양림동 펭귄마을은 정말 낯설었어요. 옛 추억을 떠올리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습니다. 역시 친구들과의 수다는 힐링입니다. 10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도 바로 어제 만났던 친구 같고, 함께 국가고시 공부했던 친구도, 바로 어제 함께 공부했던  친구 같은데 벌써 마흔이라니.......

울컥하는 눈꺼풀을 지그시 눌러주며 깔깔깔 웃음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월요일.

지금은 통영입니다. 어제 친구들과 작별을 하고 시댁으로 달려왔어요. 저녁 늦게 남편 지인을 만나 저녁을 먹고 11시가 다 되어 에어비엔비로 예약한 숙소에 왔습니다.

하루 종일 먹은 음식이 목구멍까지 가득 차서 아래로 아래로 내리누릅니다. 아마도, 인도에서 일주일 먹을 식량을 3일 만에 먹은 것 같아요.



정말 편리하고, 먹을게 넘쳐나고, 모든 게 빠르고, 깨끗한 한국.

전 조금 어색하고, 배가 심하게 부르고, 자꾸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곳이니, 전 이방인이에요. 한국의 발전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이기도 하고요.

마트에 가서 깜짝 놀랐어요. 모든 음식이 소량 포장되어 판매가 되고 있더군요 1인 가족이 늘어나면서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효율적인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통영 가는 길에 잠시 들린 휴게소에서 깜짝 놀랐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등산복을 입고 식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일요일 늦은 저녁이었거든요.



한국에 온 후 바쁘게 돌아다니고, 보고, 만나고, 먹고...... 그런데 글을 쓸 수가 없었어요. 머릿속이 엉켜서 뭘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인도에서의 제 일상을 떠올려봤어요.

특별할 것 전혀 없는 일상, 심심하다 못해 슴슴한 일상. 그런 일상 가운데 차분히 앉아 글을 쓰던 일상 중 일상.


제 슴슴한 루틴이 깨지니, 머릿속은 정리가 안되고, 글은 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먹을 것은 없지만,  내 노트북과 펜과 노트가 있는 내 집에 가고 싶군요.


남은 일주일, 또 열심히 달려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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