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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Oct 31. 2019

팥은 여러 콩 중에서도 특히 더 사랑스러워!

팥이 사랑스러운 이유는? _엄마의 어록

아침 햇살이 넓은 창을 통해 서서히 들어왔다. 아이들은 아직 곤히 자고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켰다. 시골에서 평생을 산 부모님은 이미 집 밖으로 나가고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옆동네에 있는 교회에 가서 새벽예배를 드리신다. 예배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일을 하신다. 아빠는 5시 무렵에 일어나 농장으로 가 이런저런 일을 하신다. 그리곤 8시에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드신다.

시골의 아침은 도시의 아침보다 일찍 시작된다. 해가 뜨기 전에 시작되는데, 그래야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다른 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카디건을 하나 걸치고 엄마의 하얀 고무신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밤 동안에 차가워진 공기가 아직 남아있던 잠을 쫒아내 주었다.




올해 71이신 엄마는 꽃을 좋아하신다. 마당 가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꽃들이 잔뜩 심겨 있는데, 봄부터 가을까지 여러 종류의 꽃이 피었다 진다.

지금은 겨울을 향해 가고있는  막바지 가을.

엄마의 마당에는 여러 계절이 머물고 있다.

잠시 계절을 착각한 봉숭아꽃이 피어있고, 봄에 한번 피었다 져버린 달리아 꽃이 다시 붉게 피어나 있다.

그리고 마당에는 팥이 널려있다.


“시간 많은 할매들은 그냥 팥이 익으믄 밭에서 하나씩 하나씩 따거덩. 근디 나는 너무 바쁭께, 그라고 앉아서 팥 딸 시간이 어딨어.”

엄마의 마당에는 아직 익지 않은 팥들이 팥 줄기와 함께 널려있다. 햇빛에 잘 말린 후, 막대기로 팍팍 때려주면 팥 깍지가 저절로 열려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아직 익지 않은 팥들은 손으로 하나하나 따 주어야 한다.





밖으로 나가니 엄마가 마당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계셨다.

“엄마~ 뭐하셔?”

엄마는 나를 한번 보고는 싱긋 웃으셨다.

“응, 일어났냐?”

그리곤 계속 땅바닥을 쳐다보고 계셨다.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엄마는 뭔가를 줍고 계셨다.

“뭐하셔?”

“아이고, 말도 말어. 차 빼다가 팥이 땅에 떨어져부렀어.”


집 마당은 자갈로 되어있다. 작은 돌멩이들 사이사이로 작은 팥이 쏙쏙 숨어 있었다.

“이걸 다 줍고 있는겨?”

“그람. 다 주워야제.”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함께 팥을 주웠다. 붉은팥이 넓게 흩어져 있었다.

곧이어 남편이 나와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이내 소은이가 나오더니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다 같이 앉아서 돌멩이 사이에 빠져버린 팥을 주웠다.


“팥은 여러 콩 중에서도 특히 더 사랑스러워.”


갑작스러운 엄마의 사랑고백에 웃음이 났다.

“하하하. 진짜? 그런데 왜?”


엄마는 잠시 뜸을 들이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팥이 콩 중에서 젤로 비싸거든. 팥이 효자여. 한 되(2킬로)에 2만 원이나 해.”

“헐.......”


팥에 대한 특별한 에피소드를 기대했다. 하지만 팥에 대한 애정의 이유는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용돈을 많이 드리지 못한 난, 불효녀인가.....



시장에는 중국산 팥이 많죠.

저희 엄마의 팥은 유기농 국산 팥으로, 때깔 좋은 붉은빛이 반짝입니다.

인도에서 팥 따러 온 것 같아요. 삼일 동안 팥만 땄어요. ^^;;;;;

마늘 밭에서 아이들



[커버 사진 _ 팥 따는 홍 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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