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 살아요.....
인도는 현재 비가 많이 오던 몬순시즌이 끝나고 본격적인 건기 시즌이 되었습니다. 너무 더워 밤새 에어컨을 틀고 잤었는데, 지금은 선풍기만 틀고 자고 있어요. 여전히 햇빛은 뜨겁지만 평균기온은 많이 내려간 듯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서 가을이 왔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른 아침, 베란다에 나가 의자에 앉아서 차가워진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죠.
그런데 약간 캐캐 한 냄새가 나더군요. 그래서 Air Visual 앱을 보았죠.
와우!!! 델리가 1등 했군요. 어쩐지 이른 아침 공기가 영~ 상쾌하지가 않더라니.....
델리는 미세먼지 정도가 매우 나쁘기로 유명합니다. 저 날은 베이징보다 더 나쁘군요. 비가 오는 몬순시즌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지만, 비가 오지 않은 건기 시즌이 되면 최악입니다.
이런 도시에서 어떻게 살고 있냐고요?
환기는 시키지 않고요, 창문도 열지 않아요. 공기청정기를 틀어놓고 살고요, 밖에 자주 나가지 않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런 거 신경도 안 쓰고 살아요. 길거리에 마스크 쓴 사람도 거의 없어요.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죠.
델리에는 나무가 정말 많아요. 공원도 많고, 야생 동물도 많습니다. 산은 없지만 숲은 또 많아요. 그래서 이해가 안돼요. 왜 이렇게 공기가 나쁠까요?
너무 궁금해서 구글에 검색을 해보았더니, 몇 가지 이유 때문이래요.
가장 큰 원인은, 델리 주위의 시골지역에서 불을 피운대요. 옛날 우리나라의 “화전”처럼 밭에 불을 피우나 봐요. 그래서 그 연기가 델리 안으로 들어와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는군요.
두 번째 이유는 자동차 배기가스 때문이래요. 델리는 매우 큰 도시이고 자동차, 오토바이, 오토릭샤가 정말 많아요. 나름 정부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 확인서를 요구하는데요, 사설 업체에 돈만 주면 그냥 해주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미세먼지가 빠져나가질 못한다고 해요. 분지라고 하죠. 지형적으로 델리가 움푹 파인 형태라서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정체된다고 합니다.
암튼 이런저런 이유로 공기가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한국이었으면 이미 난리가 몇 번이나 나고, 휴교령이 떨어졌겠지만, 여긴 그런 게 없어요.
학교에는 당연히 공기정화시설이 되어있어요. 하지만 등하교 시간에나 운동장에서 놀 때는 마스크가 필요해요.
저희는 마스크를 준비하지 못했어요. 작년에 뭄바이로 올 때 미쳐 마스크 준비를 못했고, 여름에 델리로 오면서도 생각을 못했었죠.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휴가 갈 때 사 올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학교에서 공문이 왔어요. 마스크 업체가 방문하기로 했으니 필요한 사람은 사라고요. 마침 잘 됐다 생각했습니다.
오늘 아침, 학교에 갔더니 이미 업체에서 나와서 마스크를 팔고 있었어요. 여러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마스크를 사고 있었죠. 미세먼지용 마스크인데 가격이 꽤 하더라고요. 저도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2개를 샀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made in Korea인 거예요.
아까 학교에서 이걸 봤어야 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어머, made in Korea네. 내가 Korean인데. 호호호”
해줬어야 했는데......^^;;;;
이게 바로 코리안 자부심 아니겠어요?
해외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죠.
비록 요즘 한국이 서로 나눠져서 싸우고, 헐뜯지만 해외에 나와서 살면 진짜 그런 게 별거 아닌 일이 됩니다. 그저 Korea라고 써진 모든 물건에 애착이 가고, BTS를 아는 사람만 만나도 뿌듯합니다.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주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에요. 다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갖고 싶던 마스크가 생겨서 아이가 너무 좋아합니다. 그동안 마스크가 없어서 목에 가래가 생겼다나요.... 집에서 자꾸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한마디 했어요.
“너 도둑 같아~”
내일 아침엔 두 명의 도둑(사랑의 도둑)을 데리고 등교해야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