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못한 진심
장소 : 서울 신정동 어느 마트 안
“자기의 지금 행동은 무척 이기적인 거야.”
- 그게 뭔 소리야?
- 지금 빨리 갔다 오라고.
- 가기 싫다니까. 안 가도 된다고. 작년에 다녀왔어. 내 몸은 내가 잘 안다고.
- 자기가 의사야? 그래도 병원에 다녀와야지.
- 괜찮다니까. 아무 증상 없다고.
- 진짜 이기적이다. 그러다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 왜? 혼자 애 둘 키우게 될까 봐 걱정돼?
- 아, 진짜. 그냥 빨리 갔다 오라고. 장은 내가 볼 테니까.
- 아, 됐다고. 진짜 괜찮다고.
- 아, 쫌. 그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 아후 진짜 성격 이상해.
-그만 해.
- 아후, 진짜.
그에게 전하지 못한 진심.
[ 아니, 휴가기간에 딱 맞게 생리를 했는데 어쩌라는 거야. 휴가를 내 생리 주기에 맞춰서 가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방학이랑 자기 휴가에 맞춰서 온 건데. 오늘 아침까지도 살짝 피가 보였는데 어쩌라는 거냐고. 생리가 시작~ 하면 나오고 끝~ 하면 안 나오는 거냐고.
하긴, 자기는 생리가 시간에 맞춰서 나오는 줄 알았던 사람이었지.
산부인과 다녀오는 게 뭐가 어렵냐고? 산부인과가 무슨 내과인 줄 아나. 가면 옷 갈아입고, 산부인과 의자에 올라가서 내 은밀한 부위를 보여줘야 하는 곳인데. 가기 전에 얼마나 신경 쓰이는 곳인데.
남자들은 매번 비뇨기과에 가지 않아도 되는데 왜 여자들은 꼭 산부인과를 주기적으로 가야 하는지.
하긴. 자궁이 하는 일이 좀 많긴 하지.
내 나이 13살 때부터 생리를 시작해 32살에 첫 아이를 낳고, 34살에 둘째를 낳고, 일 년 동안 루프와 함께 지내기도 했고, 지금은 두 개의 근종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지.
마흔이 된 이후론 생리양이 줄어들고 있으니, 언젠가는 내 자궁의 할 일이 없어지고 은퇴하는 날이 올 거야. 은퇴하더라도 난 내 자궁을 귀하게 생각해 줄 거야. 나를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게 해 주었으니까.
산부인과 진료를 보지 않은 것은 정말 미안하지만, 이기적이라는 말은 좀 아프다. 그 말보다도 ‘많이
걱정이 된다. 꼭 진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또는 사랑한다.’라는 말이 더 좋았을 것 같아.
내년엔 꼭 산부인과 갈 테니, 휴가 3주 다녀오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