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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Nov 08. 2019

한국에서 미용실에 가지 않은 이유

그냥 살래

한국에 가서 꼭 하고 싶었던 일과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그것은 이곳에서는 할 수 없는 일 또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이런 일들이다.


읽고 싶었던 책 잔뜩 사 오기, 아이들 한글 학습지 사 오기, 못 만났던 친구들 만나기, 친정과 시댁 방문하기, 해물탕 먹기, 순대, 떡볶이, 어묵 먹기,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 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걷기, 출판사 만나기, 만나고 싶었던 지인들 만나기, 미용실 가서 머리 하기, 운동화 사기, 아이들 신발 사기, 내 옷 사기, 지워지는 펜 사기, 건강검진받기, 산부인과 가기, 아이들 예방접종시키기, 치과 가기, 소은이 이비인후과 가기, 약국 가서 약 사기.


이 중에서 절반은 했고 절반은 하지 못했다. 2주 동안 이 일들을 다 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능한 음식들을 사서 먹고, 만날 수 있는 사람만 만나고, 살 수 있는 책만 사고, 방문할 수 있는 곳만 찾아다녔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은 사실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려나는 경향이 있다. 나에겐 ‘미용실 가서 머리 하기’가 바로 그 일이었다.


언니들은 내 머리를 보며

-너 인도 여자 같아!!라고 말했다.

숱이 많고 긴 머리.  파마도, 스트레이트도 하지 않아  돼지털처럼 뻣뻣한 머리카락. (그러고 보니 2년 동안 미용실에 가지 않았네요.) 심한 새치 때문에 두 달에 한 번씩 셀프 염색을 한 바람에 울긋불긋한 머리 색깔.

그러고 보니, 딱 인도 여자들의 머리스타일 같았다. 인도에 살 때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질끈 동여매고, 돌돌 말아 똥머리를 하고,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녔다. 아무도 나에게 ‘너 머리 스타일 이상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동안 내내 신경이 쓰였다. 심지어 엄마까지도 ‘머리숱이 왜 그리 많냐?’라고 하셨다.


남편을 달달 볶았다. 짧은 커트를 할까? 단발로 자를까? 그냥 레이어드 할까? 열펌을 할까? 스트레이트를 할까? 아니야, 그냥 염색만 할까?


남편은 그냥 커트를 하라고 했다. 언니는 단발로 자르고 열펌을 하라고 했다. 다른 언니는 머리숱을 좀 치라고 했다. 또 다른 언니는 돈을 보내줄 테니 꼭 미용실에 가라고 했다.


-머리 한번 하면 10만 원 기본이야. 니 머리는 20만 원은 들겠다.

-뭐라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도에 다시 갈 건데 굳이 해야 할까? 가면 또 머리 질끈 동여 매고 살 건데.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 건데. 내 머리를 손질하는 일에 내 운전기사의 한 달 월급을 쓰는 것이 정말 괜찮을까?’


난 괜찮지 않을 것 같았다. 내 머리를 예쁘게 해서 잘 보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내가 머리를 어떻게 하든지 내 남편과 아이들은 날 사랑해 줄 것이었다. 그 외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칭찬받고 싶은 생각은 딱히 없다. 결국, 이번에도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조금 지나면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잘랐어야 했다고, 그때 머리 손질을 좀 했어야 했다고, 염색약을 사다 셀프 염색을 하면서 또 짜증을 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살고 싶다.






인도가 좋냐고 물어본다. 난 좋다고 말했다. 뭐가 좋냐고 다시 물어본다. 난 잠시 고민하다 좋은 점들을 말해보았다.

솔직히 좋은 점은 그다지 많지 않다.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놀러 갈 곳도 없고, 먹을거리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머리를 하지 않아도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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