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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Nov 07. 2019

비행기를 탈 때마다 무섭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다.

해외 생활 8년 차에게 비행기는 매우 익숙한 교통수단이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에 살 때는 한국에 가기 위해서 3편의 비행기를 타야 했다. 다카에 살 때는 2편이었고, 델리에 사는 지금은 직항노선으로 단 한 번이면 한국에 도착한다.

어찌 보면 7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편한 삶이다. 방콕에서 짐을 다시 찾아서 하룻밤을 자지 않아도 되고, 깊이 잠든 아이들을 깨워 비행기를 내렸다 다시 타지 않아도 된다. 한마디로 출세했다.


내 두 아이들은 공항을 무척 좋아한다. 이제 겨우 8년, 6년의 삶을 살아 본 아이들이지만, 태어난 후부터 꾸준히 비행기를 타고 있으니. 아이들은 이미 공항 안에 존재하는 여행자들의  아드레날린을 아는 모양이다.

반대로 나는 공항이라는 공간이 무척이나 피곤하다. 먹을거리, 책, 아이들 장난감과 옷가지들을 가득 담은 가방을 카트에 올린 순간부터 피곤이 밀려온다.

겨우 출국장을 벗어나도 넓게 펼쳐진 면세점 앞에서 다시 한번 피로를 느끼는데, 아무리 면세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과하게 비싼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겨우 카페에서 핫 아메리카노 한잔을 받아 들고, 어린이 놀이터에 두 녀석을 풀어놓으면 그제야 마음이 평안해진다.




우리 네 명은 비행기를 대하는 태도가 각기 다르다. 한국에서 인도까지 오는 약 8시간 동안, 우리 네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보낸다.


남편은 주로 수면제를 먹고 푹 잔다. 두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 특히 더 잘 잤는데, 수면제를 먹고 숙면을

취하고 있는 그가 그렇게 얄미웠다. 그게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함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요즘은 수면제를 먹지 않는다. 이번엔 자는 대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안이는 비행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비해기에 타자마자 자리를 잡고 앉아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한다. 기내식을 먹고, 컵라면까지 시켜 먹고, 주스도 두 잔이나 마신다. 그리고 절대 자지 않는다. 8시간 내내 두 눈을 부릅뜨고 뭔가를 한다. 이번에는 영화 3편을 보고, 각종 게임을 했다. 그러고도 비행기에서 내릴 때 아쉬워했다.


소은이 역시 비행기를 좋아한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한다. 그리고 노래를 듣는다. 시크릿 쥬쥬 노래를 들으며 큰소리로 따라 부르기도 한다. 너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 조용히 시켜야 했다. 소은이는 그러다 스르르 잠이 든다. 심지어 잠에서 깨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언제 잠들었지? 내가 잔 줄도 몰랐네.”

지안이가 8시간 내내 잠을 안 잔다면, 소은인 8시간 내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화장실도 가지 않고, 자기 자리에 앉아있거나 기대어 누워있거나 한다. 엉덩이나 허리 안 아프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한다.



난, 비행기가 무섭다. 매년 비행기를 타는데, 탈 때 매다 무섭다. 글을 쓸 때 상상력은 꽤 쓸만하지만, 비행기를 탈 때 상상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이런 상상을 했다.

“ 이 비행기에 무슨 일이 생겨서 우리가 사라진다면, 아마도 곧 출간될 내 책은 유작이 되겠지.”

이런 생각은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떠오른다. 무서운 생각이 들면 난 속으로 기도를 한다.

“하나님, 더 살고 싶어요.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세요.”


내 아이들은 비행기가 흔들릴 때 벨트를 매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자동차의 흔들림과 비행기의 흔들림 사이의 큰 차이를 모른다.

반면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사고 소식을 듣고, 뉴스로 보고,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봤기에,

그런 뉴스에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 다행히도 이런 생각들이 내 자율신경계를 자극하진 않아서 공포증이나 공황장애가 일어나진 않는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뭔가를 많이 안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뭘 좀 몰라야 적당히 즐기며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내 두 아이들처럼.


다행히도 몇 번의 흔들림이 있었지만 무사히 델리 공항에 착륙했다.


탁한 공기가 덮쳐오자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진한 피부의 사람들을 만나자 이상하게 반가웠다. 짐을 가득 실은 카트를 끌고 공항 밖으로 나가며 수많은 사람들과 택시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 기사를 만나,

“How are you?”

영어 인사를 건넸다. 근질거리던 입이 드디어 풀렸다. 드디어 집에 왔다.


한국에서의 2주가 참 좋았지만, 집에 돌아오니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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