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할매들이 왜 죽지 않고 오래 사는지 아니? _엄마의 어록
평생을 논과 밭에서 일을 하며 산 엄마의 무릎 연골은 모두 닳아졌다. 두 무릎은 툭 불거졌고, 양 다리는 ( ) 모양으로 휘어졌다. 키가 크신 엄마는 걸을 때
마다 뒤뚱뒤뚱 한쪽으로 몸이 쏠린다.
밭에서 몸을 구부리고 일을 하고,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지고 일하던 엄마의 허리는 심하게 협착되었다. 협착된 척추에 눌린 척수신경은 엄마의 두 다리를 지나간다.
“아이고 다리야. 다리가 왜 이런가 모르것다.”
엄마는 걸을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내신다.
자식이 다섯이나 있으면서 왜 병원에 모시고 가지 않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미 막내아들은 좋은 대학병원과 허리 수술로 유명한 교수님을 수소문해 놓았다.
서울 사는 딸들은 매번 엄마에게 전화 해 일 그만 하고 빨리 진료를 보시라 잔소리를 한다.
일 년 만에 엄마를 본 막내딸은 그저 엄마의 일을 거둘 뿐이다. 팥을 따고, 들깨를 털고, 집안일을 해드린다.
엄마는 그렇게 아프면서도 왜 진료를 받지 않으시는 걸까? 왜 서울 딸들한테, 아들한테 가지 않는 것일까?
“잉, 이거 팥만 다 해놓고 갈라고. 가야제. 갈 거야.”
엄마의 말에 나와 남편은 며칠 동안 팥을 열심히 땄다. 이 일만 다 하고 엄마를 모시고 서울로 가서 진료를 보게 할 생각이었다.
마당에 앉아서 팥을 따고 있는데, 트럭 한 대가 집 앞으로 왔다. 아는 사람인지 엄마가 반갑게 밖으로 나갔다. 두 분이 뭐라 뭐라 말을 주고받았다.
엄마는 트럭 주인으로부터 파 두 다발을 받았다.
“한 다발만 더 주씨요.”
엄마는 파 세 다발을 받아 들고 허허허 웃으셨다.
“엄마 뭐야?”
“양파 모종이여. 엄청 귀하게 구했단다. 이번에 태풍땜시 양파가 완전 귀하단다. 저양반이 보롯시(겨우) 구해왔다고 엄마 갖다 주는 거여.”
“헐...... 엄마, 팥 다 하고 서울 가기로 했잖아? 근데 저거 하려고?”
“어허허~ 양파까지 심고 가야긋다.”
엄마는 너털웃음을 지었고, 난 어이없어 할 말을 잃었다.
양파 모종 세 단을 들고 가며 엄마가 말했다.
“시골 할매들이 왜 죽지 않고 오래 사는지 알어?”
“왜?”
“할 일이 안 끝나서 그런단다. 이거 끝나면 다른 일이 또 있고 또 있고 또 있고.....”
“헐.......”
봄에 마늘을 캐고, 고추를 심는다. 그 옆에는 온갖 종류의 콩을 심고, 깨를 심는다. 여름에 고추를 따고, 녹두를 딴다. 가을이면 벼를 추수하고, 깨, 팥을 딴다.
고추를 딴 자리에 다시 마늘을 심는다. 김장철이 되면 영근 배추와 무를 뽑는다.
시골의 밭은 일 년 동안 쉬지 않고 뭔가를 만들어낸다. 시골 할매들은 일 년 내내 밭에 들어가 일을 한다.
몸이 아프면 읍내에 있는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며 또 밭으로 나간다. 시골 할매들에게 밭은 일을 해야만 하는 지겨운 곳이 아니다. 저들이
아직도 움직이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살아있음을 알게 해 주는 곳이다.
밭에서 나온 수확물을 자식들에게 보내주는
것은 시골 할매들의 안도와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 시골에는 80살, 90살 할매들이
아직도 밭에 앉아 일을 한다. 장수의 비결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