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Nov 19. 2019

6. 아빠가 사랑한 나라, 그리고 카레

[소설] 셀 게스트하우스의 비밀

6. 아빠가 사랑한 나라, 그리고 카레

 

설화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소나기에 설화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여느 여행자들처럼 거리를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살 기운이 없었다. 침대 위의 이불에서는 눅눅한 냄새가 났다. 설화는 리모컨을 찾아들고 에어컨을 켰다. 이내 에어컨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침대에 털썩 엎드린 설화의 눈이 뜨거워졌다. 15년 전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났다. 자신이 지금 이곳에 온 이유는 아빠 때문일까? 아니면 나 때문일까?

 



설화의 아빠는 S 그룹의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설화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아빠는 자주 출장을 갔다. 훨씬 그 전, 설화가 2살일 때는 혼자 인도에 가서 2년을 살고 오기도 했다. 엄마는 낯선 나라에 가서 홀로 설화를 키울 자신이 없다며 아빠와 함께 가기를 거부했다. 원체 마음이 여린 아빠는 함께 가자고 설득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처자식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으리라.

 

아빠가 대기업에 다녔기 때문에 설화는 풍족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선물을 한 아름씩 사 오기도 하고, 먹을거리를 가득 사 오기도 했다.

가끔 인도에서 가져온 카레가루와 한국의 카레가루를 적절히 배합해 전에 먹어보지 못했던 카레를 만들어내곤 했다. 처음 아빠가 그 카레를 만들었을 때 엄마와 설화는 숟가락을 놓을 수가 없다며 감탄을 했다.

 

출장을 자주 가긴 했지만 그만큼 가족들을 살뜰히 챙긴 아빠였다. 인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특별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뒤로 항상 고단함이 남아 있었다. 어린 설화는 그런 아빠의 얼굴이 안쓰러워 더 모른 척을 했다. 아빠의 고단함을 캐묻는 순간, 아빠의 얼굴에 남아있던 유쾌함 마저 사라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설화는 왜 아빠가 그렇게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며칠 동안 술만 마시던 아빠가 어느 날 홀연히 인도 여행을 갔다가 한 달 만에 돌아온 것만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엄마와 아빠가 크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설화는 못 들은 척 방안에 처박혀 있었다. 아빠의 큰소리를 그때 처음 들었기에 설화는 가슴이 콩닥거리고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설화는 모른척했다. 모른 척하면 힘든 상황들이 바람처럼 그냥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아는 척을 하면 바람이 태풍이 되어 더 큰 비바람을 몰고 올 것만 같았다.

 

그 후 아빠는 택시운전기사가 되어 더 바쁜 날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설화는 알지 못했다. 왜 아빠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는지, 그리고 또 갑자기 택시운전을 하기 시작했는지. 여전히 묻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던 여름날 뺑소니 사고였다.

아빠의 장례식장 안에서 설화는 너무 모른 척하며 살았던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하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과연 자신이 잘했던 것일까? 아빠의 고단함이, 아빠의 힘들었던 상황들이 정말 바람처럼 한번 불고 지나가버리는 것들이었을까? 내가 모른 척하고 살았기 때문에 태풍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날 이후, 설화와 엄마는 악착같이 살아야 했다. 그동안 누려왔던 물질적인 풍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여리게만 보이던 엄마가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설화는 문득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로 여행 간다는 딸을 걱정하던 엄마였다. 전화를 들고 통화버튼을 눌렀다.이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엄마, 나야.”

“어머. 설화야. 잘 도착했니? 엄마가 엄청 걱정했잖아. 도착하자마자 전화했어야지.”

“어, 미안. 정신이 없었어, 별일 없지?”

“별일 없긴. 엄마 일 시작했어.”

“무슨 일?”

“응, 특별한 일은 아니고, 엄마 친구 미숙이 알지? 걔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기로 했어.”

“거기는 카페잖아? 엄마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응. 미숙이가 그러는데 젊은 사람들은 아르바이트비가 너무 싸서 자주 그만두고, 일도 안 하려고 한다더라고. 그래서 내가 한다고 했어.”

“엄마가 커피 탈 줄이나 알아? 엄마는 믹스커피밖에 안 마시잖아.”

“얘가 엄마를 너무 모르네. 엄마도 한때는 카페에 죽치고 살았어. 너 어렸을 때 말이야. 아빠 회사 가고 너 유모차 태워서 카페 가서 한잔씩 했지. 뭐 옛날이야기지만. 암튼 엄마도 바빠졌다니까. 이제 우리 딸 용돈 줄 수 있겠다.”

“응. 그래. 그런데 엄마. 나 궁금한 게 하나 있어.”

“궁금한 거? 그게 뭔데?”

“예전에 아빠가 회사 그만두고 인도 여행 갔다 왔었잖아. 그리고 집에 와서 엄마랑 대판 싸웠던 거 기억나?”

“아이 몰라. 기억도 안나. 왜 아빠 이야길 하고 그래.”

“아니,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때 왜 싸운 거야?”

“누가 아빠 딸 아니랄까 봐 왜 인도를 가서는. 난 거기 쳐다도 보기 싫은데. 그나저나 별 결 다 기억하네.”

“왜 싸웠냐니까?”

“가만있자, 그때 왜 싸웠더라? 아 맞다. 아빠가 그때 퇴직금을 좀 많이 탔었거든. 20년 다닌 대기업 회산데 퇴직금이 좀 많았겠어? 그런데 그걸 엄마한테 말을 안 하는 거야. 얼마 받았는지, 어디다 썼는지 말도 안 해주고. 암튼 그래서 싸운 거야.

“그래서 그 돈은 찾았어?”

“찾기는 무슨. 늬 아빠 그렇게 되고 더 이상 물어보지도 못했지 뭐. 난 그냥 아빠 통장에 있거나 어디 투자라도 한 줄 알았지. 뭐, 아빠 택시 운전할 때 택시 사면서 돈을 조금 쓰긴 했지만. 암튼 한 푼도 못 찾았어. 그 인간이 어디다 썼는지. 아무래도 인도 여행 갔을 때 돈을 들고 간 것 같아. 내 생각엔.”

“인도엔 왜?”

“아빠가 말은 안 했지만, 아빠가 인도에 자주 갔잖아 회사 일로. 그리고 거기서 혼자 살기도 했잖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한테 말을 안 해주더라. 나중에 아빠 회사 동료라는 사람이 와서 미안하다고 울면서 가긴 했는데. 그땐 아빠 장례식장에서 내가 뭐 누구 쳐다볼 정신이나 있었니. 암튼 그 사람이 명함을 주고 갔는데 잃어버렸어. 아빠랑 같이 인도에서 일했던 사람 같던데.”

“아, 그렇구나.”

“그런데 그건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 엄마, 전화비 많이 나오겠다. 이거 국제전화야.”

“아참, 내 정신 좀 봐. 얼른 끊을게. 나중엔 카톡으로 연락하자. 엄마 내일부터 일하러 나간다.”

“응, 엄마.”

 


설화는 전화를 끊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빠는 도대체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혹시 아빠의 비밀이 바로 이곳이었던 것일까?


설화는 벌떡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갑자기 쏟아진 빗물로 도로가 물에 잠겨 있었다. 차들은 잘 달리지 못하고 빵빵 거렸고, 릭샤꾼들은 비가 오는 와중에도 손님들을 태우려 애를 쓰고 있었다.

설화는 문득 배가 고파졌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은 상태였다. 방문을 열고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그곳엔 식빵과 잼이 놓여 있었다. 커피포트에 담겨있는 커피를 머그컵에 따르고 접시에 식빵을 담아 거실로 나왔다. 그때 누군가가 소란스럽게 들어오는 소리가 들었다.

“아, 젠장. 다 졌었네. 벌써 몬순 계절이 된 건가? 이렇게 갑자기 비가 오다니.”

아침 일찍 요가를 하러 간 마리였다. 그때 그 남자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헤이, 마리. 너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오, 아이언. 너 언제 왔어?”

“나 어젯밤에 왔지. 그런데 넌 왜 아직도 있는 거야?”

“아, 난 그냥 이곳에 발이 묶여버렸지 뭐야. 실은 지금 요가 마스터코스 배우는 중이야.”

“정말? 두 달 전의 네 모습은 보이지 않네. 이제 좀 편안해 진건가?”

“흥흥흥. 좀 편안해 보이지? 비에 쫄딱 졌은 내 모습이?”

설화는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으며 테이블에 앉아 빵에 잼을 바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꽤 친해 보여 끼어들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빵과 커피를 먹고 있는 그녀를 향해 강철이 다가왔다.

“저기….”

“네?”

“좀 괜찮아요?”

“네? 아 네.”

“아침에 얼굴 안색이 너무 안 좋아 보였어요. 그래서 농담한 건데, 많이 당황했죠?”

“어, 아니에요. 커피 한잔 하실래요?”

“아 네. 제가 들고 오죠.”

강철은 주방으로 들어가 커피를 한잔 들고 다시 거실로 나와 설화 바로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데 여긴 왜 온 거예요?”

“아, 그냥 여행하러 왔어요.”

“여행자는 아닌 것 같은데…. 아 오해는 말아요. 지금이 우기거든요. 몬순시즌이요. 비가 엄청 내려요. 오늘처럼 갑자기 내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비가 오기도 해요. 그러면 여행은 못하죠. 길이 다 잠기거든요. 인도가 좀 그래요.”

“아, 그렇군요. 몰랐어요.”

“전, 강 철이에요.”

“아 네. 전 이설화예요.”

“여기서 한국 사람 만나니까 정말 반갑네요. 전 여기 게스트하우스 단골손님이거든요. 그런데 한 번도 한국 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좋은 곳도 아니고, 유명한 곳도 아니라서요. 어떻게 알고 왔어요?”

“아 그냥, 인터넷에서 봤어요.”

“네. 혹시 우리 구면인 거 알아요?”

“네? 전 처음 뵙는데요…”

“하하하.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 분명히 어디서 봤을 거예요.”

“글쎄요. 제가 사람 얼굴은 잘 기억하는데, 강철 씨는 처음 보는데….”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만 기억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네.”

 

그때 안비와 함께 한 여자가 게스트하우스로 들어오고 있었다. 커다란 케리어를 끌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들어오던 그녀는 강철과 설화를 보더니 세상에서 가장 환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난 하야꼬라고 해.”

 

하야꼬가 셀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선 그때, 창 밖의 빗줄기는 잦아들고 햇살이 드리우고 있었다.  강한 햇살 한 줄기가 셀 게스트하우스의 2층 거실을 비추기 시작했다. 하야꼬의 얼굴이 환하게 반짝였다.

“어, 안녕. 넌 일본 사람이구나. 우린 한국 사람들이야. 어서 와. 난 강철이야.”

하야꼬와 강철이 서로 악수를 할 때, 설화는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았다.  



셀 게스트하우스의 비밀_ 5화 보기



소설을 쓰기를 한번 쉬었더니 다시 이어쓰기가 어려웠어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써보겠습니다.

셀 게스트 하우스의 비빌이 궁금하신 분들은 끝까지 읽어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자궁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