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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Nov 19. 2019

7. 과거와 역사

[소설] 셀 게스트하우스의 비밀

똑. 똑. 똑.

마리가 설화의 방문을 두드렸다. 설화는 읽다 만 책을 가만히 내려놓고 방 문을 열었다.  

“나와서 같이 맥주 한잔 할래? 다들 모여있거든.”

설화는 살짝 열린 문틈으로 거실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 그래. 잠깐만.”

설화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카디건을 챙겼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실내 공기는 차가운 에어컨 때문에 꽤 싸늘했다.

 

“어서 와 앉아. 존이 맥주를 사 왔어. 아참, 넌 존 처음 보겠구나? 서로 인사해.”

“안녕. 난 존이라고 해. 진짜 이름이 있긴 하지만, 너무 어려우니까 생략할게.”

“난 설화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쏠라? 쎌라? 너도 이름이 어렵구나. 영어 이름 없니?”

“어. 아직 그런 건 없는데.”

그때 마리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쏠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쏠 어때?”

“쏠? 좀 이상한데? 쎌 어때?”

“쎌? 여기 게스트하우스 이름이잖아.”

마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설화는 웃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이름이 교묘하게 바뀌고 있는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자, 얘 이름은 설화야 설화. 자 따라 해 봐. 설. 화.”

“쏠 하. 너무 어려워. 그냥 쏠 하라니까.”

“아니야. 쎌 이게 더 예쁘다니까.”

“그냥, 너희들 부르고 싶은데로 불러. 난 상관없으니까.”


설화는 캔을 집어 들었다.

“난 설화 이름 좀 예쁜 것 같아. 내 이름은 너무 촌스럽거든. 하야꼬가 뭐야. 하야꼬가. 옛날 사람 이름 같잖아.”

“네 이름도 꽤 귀여워.”

“정말? 고마워.”


하야꼬는 웃을 때마다 눈이 반달이 되었다. 그 모습은 꼭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같기도 하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는 어른 같기도 했다.

 

“그런데 마리. 넌 델리에 이렇게 오래 있어도 괜찮아?”

“응 뭐. 괜찮아.”

“너 생활비는 어떻게 하고?”

“생활비?  아직 통장에 돈이 남아있거든. 그리고 실업급여가 아직 나오고 있지. 우리나라 복지가 얼마나 좋은데. 몇 달은 놀아도 돼.”

마리는 그게 무슨 걱정이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설화는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실업자 출신이지만, 설화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희 나라가 잘 사는 이유는 모두 너희 조상들이 벌인 식민지 정책 때문이야. 그걸 알아야지. 그 옛날에 너희 같은 유럽 강대국들이 우리 같은 작은 나라에 와서 얼마나 많이 착취해 갔는지 너희들은 기억해야 해.”

“어, 잠깐.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네가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우린 너희 나라를 착취한 게 아니라 도움을 준거라고.”

“흥, 모르는 말씀. 동남아의 문화는 미개하다고 생각하고, 너희 나라의 문화를 강요했잖아. 그게 무슨 도와주는 거야?”


“자자자. 여기서 이런 말 그만하자. 우리가 뭐 과거의 일 가지고 싸우려고 지금 만난 거 아니잖아?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한 집에서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만난 게 얼마나 인연인데. 싸우지 말자. 알았지?”

강철의 중재로 준과 마리의 말다툼은 일단락이 되었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흘렀다. 하야꼬의 반달 같은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난 역사 같은 거 몰라, 몰라.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뭐라 뭐라 하는데 난 관심도 없어.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래. 난 케이팝을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걸. 어쩌란 말이야. 좋은 걸. 하지만 이 말은 해야겠어. 난 한국을 사랑해. 그러니 날 공격하진 말아 줘. 난 일본 사람이지, 일본은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그런 것도 아니잖아?”

순간 설화는 기분이 나빠졌다.

“네가 한 일이 아니라고 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  원죄라고 알지? 성경에 나온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말이야. 그들이 지은 죄 때문에 우리 인간들이 모두 죄인 이래. 왜? 우리가 지은 죄도 아닌데? 그 이유는 아담과 하와의 피가 우리 몸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 모든 인간은 그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거라고. 네가 일본 사람이기 때문에 그 책임이 있는 거야. 네 몸에 네 조상들이 잘못한 피가 아직도 흐르고 있거든.”


설화의 말에 순간 분위기는 어름장처럼 차가워지고 말았다.

“자자자, 여러분. 우리 쏠인지 쎌인지 암튼 이분이 많이 취하신 것 같군요. 자 우리 건배해요. 우리의 인연을 위하여~”

 

모두들 어색한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앞에 놓인 맥주캔을 높이 들었다. 설화는 남아있던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강철은 그런 설화가 신경 쓰였다. 그녀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뾰족하게 말을 할 사람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날 밤에 보았던 그녀의 넋 나간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말 못 할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뭐라도 말하려고 하던 찰나, 하야꼬가 강철의 옆으로 와 앉았다.


“그런데 아이언 맨. 넌 뭐하는 사람이야? 아차, 오빠라고 해야 하나? 나 오빠라는 말 너무 좋더라.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오빠들은 다들 너무 멋지거든. 나도 너한테 오빠라고 해도 돼?”

“글쎄. 내가 오빠 같긴 한데…. 난 서른 살이야.”

“아, 오빠 맡네. 난 20대거든. 오빠. 뭐하는 사람이야?”

설화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싶진 않았지만 바로 옆에 있었기에 모두 들리고 말았다. 그저 들리지 않는 척을 하며 맥주를 마실 뿐이었다.

“아, 난 그냥 여기저기 여행하는 사람이야. 최근엔 글도 썼어. 책이 되려면 아직 몇 달 기다려야 하지만.”

“정말? 너무 멋지다. 너무 낭만적이야.”


순간 설화는 누군가가 뒤통수를 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언 맨.


그의 원고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녀에게 맡겨졌었던 일감이었다. 그리고 그의 원고 안에서 셀 게스트하우스를 알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도망치듯 퇴사를 하고, 인도행 티켓을 끊었고, 바로 이곳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바로 그녀의 옆에 앉아있는 이 남자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더 이상 강철과 하야꼬의 대화는 그녀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단지 그의 원고 속에 있던 글들이 되살아 났다.

“저기….”

설화는 참지 못하고 강철을 불렀다.

“혹시, 이 게스트하우스에 대해 좀 알아요?”

“네? 셀 게스트 하우스 말인가요?”

“네. 아는 게 있나요? 아니. 마담 크리스나와 그녀의 딸에 대해 아나요? 친한가요?”

강철은 갑작스러운 설화의 질문에 눈을 꾸뻑였다.


“어…. 글쎄요. 자세히는 모르고요. 크리스나 마담이랑 딸 마야와는 그래도 친한 편이죠. 이곳 단골손님이니까.”

“아, 그렇다면, 그 딸이..... 혹시..... 혼혈인 가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저 아니. 그 마야라고 하는 딸이…. 인도 사람과 한국 사람 사이의 혼혈이냐고요.”

“어….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요. 직접 물어보세요. 곧 온다고 하던데. 그런데 그건 왜 궁금하신 거죠??”

“아, 아니에요. 그냥….”

설화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아빠의 잘못을 캐묻고 다니는 딸.

딱 그 위치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아빠의 잘못이었을까? 아빠의 고단함을 모른 채 하며 살았던 자신의 문제는 아니었을까? 아니, 그게 아니었더라도 지금 내가 이곳에 와 있는 것 자체가 큰 잘못은 아닐까?


과거는 잘한 것들과 잘 못한 것들을 모두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역사가 된다.

설화는 아빠의 과거가 역사가 되긴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설화의 맞은편에는 준과 마리가 소곤거리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과거와 역사 문제로 다투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리는 H 발음이 나는 영어로 계속 말을 하고 있었고, 날카롭게 보이던 준의 눈빛이 부드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20대의 하야꼬는 강철의 옆에 붙어 애교스러운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들리는 그녀의 콧소리로 모든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 것 같았다.


설화는 새 맥주캔을 집어 들었다. 맥주 캔을 따니 거품이 바다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촤악” 설화는 그 바다를 꿀꺽꿀꺽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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