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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by 선량

지난 일요일.

소은이 반 친구 키아라의 생일파티가 있었습니다. 키아라의 아빠는 벨기에 대사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그의 가족은 대사관과 바로 붙어있는 사택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키아라의 생일 파티도 그곳에서 이루어졌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대사관과 붙어있는 대사관저에 사는 사람은 대사님 뿐입니다. 이렇게 직원을 위한 사택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어요.)


생일파티는 거창하지 않았어요. 매우 소소했죠. 그저 쿠키와 마카롱, 주스가 다였고 어른들을 위해서는 와인이 서빙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트램펄린에서 뛰며 놀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어요. 한쪽에서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노는 동안 어른들은 소파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했습니다.

어딜 가나 듣는 질문,

“왜 프랑스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 거니?”

여기서부터 화제가 교육으로 바뀌었습니다.



키아라의 아빠는 벨기에 뉴스에서 한국의 교육에 대해 들었대요. 공부를 많이 시키고, 사교육이 많고, 경쟁이 정말 치열하고, 자살률이 높다고 보도되었다는군요.

유럽의 어느 나라 뉴스에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해 보도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고, 그게 현실이기 때문에 씁쓸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도대체 왜 그러냐는 그의 질문에,

“모두 그게 문제라는 것을 알지만 다들 그렇게 살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라고 답했습니다.




한국에 사는 친한 언니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는데요. 학원 가라고 푸시하지도 않은데요. 하지만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수학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자신도 가야 한다고 했대요. 남들은 다 가는데 자기만 안 가면 뒤쳐질 수 있으니까요.

이제 5학년인데 저녁 10시가 다 되어서 집에 온다고 해요. 그 아이만 그러는 게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고 합니다. 10시가 다 되어 아이 학원 앞에서 기다리는데, 그 시간에 학원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있었대요. 10시가 넘은 시간에 말이죠. 아마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겠죠?

우리 가족이 해외에 살고 있었기에 한국의 교육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하긴, 저희 조카는 이제 9살인데 학원을 8개 다닙니다. 아이가 힘들고 지치는 건 알지만, 엄마기 워킹맘이기 때문에 학원으로 돌려야 하는 거죠. 학교 마치고 혼자 집에 있는 것보다 학원이라도 가서 선생님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요. 그 말이 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어요. 하지만....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을 하는 우리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경쟁을 이어갑니다. 그 경쟁 속에서 마음이 점점 쪼그라드는 경험, 저만 해본 건가요?



최근 연예인들의 자살 보도를 보며, 우리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 몰고, 동조하고, 더 잘하라고 채찍질하는 역할이 아니라,

내 아이가 힘들 때 보듬어주고, 토닥여주고, 품어주는 역할이 아닐까 해요.

우리 아이들이 힘든 일을 겪을 , 홀로 견디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전 넷째 딸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자존감이 무척 낮았습니다. 제 남동생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어요. 그에 비해 저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죠. 하지만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저희 엄마가 차별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경쟁 속으로 내몰지 않으셨어요. 좀 못해도 야단치지 않았고, 제 결정을 존중해 주셨어요. 물론 내가 영어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했을 때, 농사일로 힘들게 모른 쌈짓돈을 보내주기도 하셨죠.

풍족하게 살지 못했고,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사랑은 항상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왔을 때, 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좋은 엄마란, 부족함 없이 아이에게 해주고, 좋은 것 먹이고 입히는 게 아니라,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아닐까요?



무엇보다 경쟁으로 내모는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이 바뀌어야 하겠죠.

유럽의 학교에 경쟁이 없는 이유는 대학 입학이 매우 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수능 점수가 잘 나와야 좋은 대학에 가고, 나쁘면 좋지 않은 대학에 가는 개념이 없다고 해요. 물론, 프랑스에서는 가장 좋은 대학인 그랑제꼴에 가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대요.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런 건 아니라고 합니다.

벨기에는 모든 대학이 3년이래요. 2년제 전문대와 4년제 대학교가 없대요.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가서 시험을 보고 입학하면 된대요. 대신 대학에 가면 치열하게 공부해야 한대요. 모든 대학에서 전공 논문을 제출해야 한대요. 가장 충격적인 것은 대학 졸업률이 겨우 33%라고 합니다. 대학에 입학하기는 쉬우나 졸업은 힘들다고 합니다.

프랑스 같은 경우,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를 보는데요, 이 같은 경우에도 20점 만점에서 10점 이상이면 대학에 갈 수 있대요. 프랑스에서도 대학 졸업률이 매우 낮다고 합니다.


무조건 유럽의 교육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경쟁이 없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는 것이죠.


대학에 가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치열하게 경쟁하는 우리 아이들.

막상 대학만 가면 다 된 줄 알지만, 아니잖아요. 그때부터 새로운 경쟁이 시작되는 거죠.

대학 졸업률은 우리나라가 최고지만 행복지수는

매우 낮다고 합니다. 자살률은 세계 최고고요. 불안장애, 공황장애가 감기처럼 많은 사회입니다.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더라도 마음이 아프고 병든다면 다 무슨 소용인가요?

좋은 직업을 구하고, 돈을 많이 벌더라도 이 세상에 살기 싫다며 극단적 선택을 한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가 유럽처럼 바뀌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렇다고 교육제도가 바뀔 때까지 손 놓고, 그 사회에 동조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 부모들이 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하면 어떨까 해요.

시작은, 아이를 옆집 아이와 비교하지 않은 곳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키아라의 아빠가 물었습니다. 아이들을 계속 프랑스 학교에 보낼 거냐고요, 한국에 가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글쎄요.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계속 해외에 산 다면 계속 프랑스 학교 보낼 거고, 혹시나 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한국의 교육을 받게 되겠죠. 꼭 어떻게 하겠다는 목표는 없습니다.

목표는 아이들이 정하는 것이죠.

목표가 없다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삶이 꼭 목표가 있어야 행복한 건 아니더라고요. 저도 어렸을 때, 특별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이렇게 해외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자신들이 원하고 선택한 곳을 지지해줄 거예요.

아이들의 인생은 아직 길고, 그 긴 인생 동안 불안에 떨지 않고 기쁘게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한국의 교육제도가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없기에, 이렇게라도 글로 적어 목소리를 내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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