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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해결해 줄 문제들

줄넘기와 윗몸일으키기와 풍차 돌리기

by 선량


지난번, 한국에 방문했을 때 아는 지인께서 아이들에게 줄넘기를 주셨어요.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줄넘기를 열심히 한다고 하셨어요. 줄넘기 급수도 있고, 줄넘기 학원도 있고, 학교에서도 줄넘기로 등급을 매긴다고 하더군요. 생소한 문화에 깜짝 놀랐어요. 제가 어렸을 적에는 초등학교 6학년 즈음에 줄넘기로 실기시험을 본 것 같은데, 그 시기가 많이 빨라졌나 봅니다.




몇 주 전, 한국에서 가져온 줄넘기를 꺼내보았어요. 아이들 키보다 훨씬 긴 줄넘기를 아이들 키에 맞춰서 줄이고, 필요 없는 부위는 가위로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큰 아이부터 줄넘기를 한번 해보라고 했어요.

참고로, 인도의 집에서는 줄넘기도 하고, 인라인도 타고, 킥보드도 탈 수 있습니다. 층간소음에 대한 개념도 없을뿐더러, 아무리 뛰어도 소음이 크지 않아요. 바닥이 대리석이고 두꺼워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우리나라처럼 보일러 설치가 필요 없기 때문에 더 두껍게 만드나 싶기도 합니다.

덕분에 미세먼지로 밖에 나가 놀지 못하는 아이들은 집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답니다.



그동안 줄넘기를 거의 해보지 않았던 아이는 줄넘기를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겨우 양 손에 줄넘기를 잡고 아무렇게나 휘두르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시범을 한번 보여줬어요. 이렇게 하는 거라고요. 아이는 제가 줄넘기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더니, 열심히 따라 했습니다.

문제는 다리는 열심히 뛰고 있었지만 손이 따라주지 않아서 결국, 줄이 발에 걸리고 의자에 걸리고, 괜히 옆에 있던 동생이 줄에 걸려 울고 말았습니다.

줄넘기가 매우 쉬운 운동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점프 높이, 점프 타이밍, 손의 힘, 손과 발의 협응력, 결정력, 체력.... 많은 것들이 필요한 운동이었습니다. 결국, 제 아이는 딱 2개 성공하고 포기했어요. 줄넘기는 다시 고이 접어 서랍에 넣어두었습니다.



제 아이는 줄넘기는 못하지만 윗몸일으키기는 꽤 잘합니다.

어느 날, 유튜브로 축구 선수들이 운동하는 영상을 봤나 봐요. 그중에 손흥민 선수가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영상이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게 되었어요.

“축구를 잘하려면 윗몸일으키기를 잘해야 한다.”

그 날부터 갑자기 다리를 잡아달라 하더니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것입니다. 배에 근육을 만들겠다면서요.

첫날에 겨우 다섯 개 하던 아이가 어제는 50개를 했네요.


그런데, 축구를 잘하고 싶다는 아이가 축구는 안 하고 윗몸일으키기만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축구보다는 뛰어 놀기에 바쁘고요.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랄까요.....




전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문제라고 느껴지지만, 나이가 해결해주는 것들이 있다.”


제 아이를 보며 느낀 것입니다.

한글을 빨리 떼고 싶어 스트레스받았지만, 결국 8살이 되니 저절로 되더군요.

8살이 되어도 이가 빠지지 않아 혹시 문제가 있나? 걱정했지만, 9살이 되니 알아서 다 빠졌어요.

얼마 전까지도 곱셈의 개념조차 이해 못하던 아이가 이제는 이해를 하고요, 시계를 볼 줄도 모르던 아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느새 시간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은 줄넘기를 겨우 2개 하지만,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줄넘기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거예요.

나이가 해결해주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겠죠. 바로 제 아이처럼요.

축구를 잘하고 싶다는 아이가 공은 차지 않고 윗몸일으키기만 하고 있어요. 다리 근육을 키워야 하는데 복근만 키우고 있네요.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 아이에게 과도한 학습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나요?

웃음근육을 키워줘야 하는데, 손가락 근육만 키워주고 있진 않나요?

어떤 근육을 키워줘야 하는지 아이와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아이는 어제 뜬금없이 풍차 돌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연속 2회 성공시키더니 의기양양하게 동생을 바라봅니다. 아직 풍차 돌리기를 못하는 동생은 그런 오빠가 멋지다며 손뼉 치고 있더군요. 왕년에(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는 그거 10개씩 했다고 하니, 아이들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어요. 지금 한번 해보라는 아이들 말에 손사래를 쳤습니다. 나이 들어서 지금은 못한다고 했죠.



나이가 들면 해결되는 문제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 못하게 되는 것들도 분명 있습니다.


당신의 풍차 돌리기는 무엇인가요?


저에게 풍차 돌리기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커버 사진 _ unsplah@element5 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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