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마음
며칠 전, 교회에서 성가대 연습을 끝내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집사님 목소리가 정말 좋네요. 발성연습 조금만 하면 저보다 성량도 더 커지고 훨씬 잘하실 것 같아요.”
그분은 저희 교회에서 찬양인도와 하이소프라노를 담당하고 계신 분이셨어요. 그리고는 저에게 복식 호흡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방법과 입 안에서 소리를 어떻게 울리게 하는지, 입 모양은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셨어요. 가르쳐주신 대로 따라 했더니 높은 ‘파’까지 쉽게 올라가는 겁니다.
그 분은 저희 남편에게도 이렇게 말해주셨어요.
“최 집사님 원래 가지고 있는 소리가 정말 좋으시네요.”
남편은 그런 저를 보며 웃었습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아는 저도 따라 웃었어요.
며칠 뒤면 마흔 하나가 되는 아줌마인 제가 그분의 칭찬에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자존감도 함께 한 계단 올라감을 느꼈습니다.
그놈의 자존감이 도대체 뭐길래, 그 전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이제야 슬금슬금 고개를 쳐드는 것일까요?
“자아존중감(self-esteem)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 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아존중감이 있는 사람은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할 수 있고,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된 사람은 자아존중감을 가질 수 있다”
[다음 백과]
전 어려서부터 자존감이 몹시 낮았습니다. 내 삶의 이유를 타인으로부터 찾았으니까요. 부모님으로부터 칭찬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전, 끊임없이 타인으로부터 착하다는 말, 좋은 말을 듣기 위해 노력했어요. 하지만 깨진 독에 물을 채워 넣는 것처럼, 자존감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초기 경험이 자존감을 세우는 데 긍정적이었다면, 그 아이는 자기 가치에 대한 느낌을 내면화해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그는 집단생활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조금 좋지 않게 말하더라도 크게 상처 받지 않으며, 삶에서 어려움을 만나도 잘 극복해나간다. 하지만 초기 경험이 긍정적이지 않아 자기 가치의 내면화에 실패한 아이는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항상 타인의 행동과 반응에 신경 쓰는 것이다. ”[아이의 사생활 중]
저는 어린 시절에 자존감을 확립할만한 긍정적 경험이 부족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80년대 전후에 태어난 분들이 대부분 저랑 비슷할 것 같아요.
그때 우리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다독여주기보다는 혼내고, 야단치고, 매를 드는 것이 자녀를 잘 키우는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했었을 테니까요.
경쟁에 뒤처지지 않게 공부시키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자아존중감, 즉 자존감을
지켜주는 일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 자존감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준다. 살아가면서 생기는 문제를 극복할 때 자존감이 낮은 사람보다 높은 사람은 더 잘 이겨내고 성공한다. 직업, 우정 또는 가족관계에 이르기까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더 잘 해낼 거이다.”
[아이의 사생활 중]
제 낮은 자존감은 결혼 후에도 자꾸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남편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날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내가 준비한 저녁을 먹지 않으면 너무나 속상했지요. 남편에게 작은 부탁조차 하지 못해 눈치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싸우기도 했죠.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더 큰 문제를 일으켰어요. 내 아이와 다른 아이들을 비교하면서 혹시나 나 때문에 내 아이가 뒤쳐지는 건 아닌지, 나 때문에 아이가 느린 건 아닌지 불안하고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엄마의 낮은 자존감은 말과 행동의 물을 타고 아이 마음의 바닷속으로 흘러갔어요. 결국, 내 아이의 모습 속에서 그 모습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존감이 낮을 대로 낮은 내 모습이었어요.
“ 조사연구 결과, 아동기의 경험은 그대로 그들의 자존감 지수에 나타났다. 부모 경험이 좋은 경우 어김없이 성인이 된 지금도 자존감이 높았다. 놀라운 사실 또 하나, 부모의 자존감을 자녀의 자존감과 비교해보니 그 역시 정확히 일치했다. 부모의 자존감이 높으면 자녀 역시 자존감이 높았다. …. 아동기의 경험이 어른이 된 이후의 자존감으로 연결되고 그것은 다시 그들의 자녀에게로 전해졌다. 부모의 자존감은 양육태도를 통해 고스란히 아이의 자존감으로 대물림되는 것이다.”
아이의 사생활 중
다행히도 지금은 나 스스로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있습니다. 너무 늦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낮기만 하던 자존감을 다시 찾아준 사람은 바로 남편입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제 남편은 말도 많지 않고, 표현도 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와 진지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결혼 초에는 제 문제점에 대해 지적을 하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지적을 멈추었습니다. 적응을 한 것인지, 그러려니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 잘못을 따지기보다 그냥 눈감아 주고, 오히려 가끔 칭찬을 해주니 제 자존감이 조금씩 회복되었어요. 부모님께 받지 못했던 부분들을 남편으로부터 충족시키고 싶었지만, 저 역시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어요.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요.
남편은 이런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장인, 장모님께 못 받은 걸 왜 나한테 받으려고 하는거야? 왜 나이 마흔에 소질을 발견하는거야? 진작에좀 발견 하지.”
지금은 서툰 글이라도 꾸준히 쓰는 저를 남편이 인정해주고 칭찬해줍니다. 덕분에 부족했던 자존감이 쑥쑥 자라고 있어요.
자존감은 타인으로부터 듣는 칭찬 백 마디 보다, 가족으로부터 듣는 인정의 말 한마디에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자녀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싶다면, 먼저 부부의 자존감을 챙겨주세요.
부모의 자존감은 흐르고 흘러 아이의 마음속으로 모일 것입니다.
제 두 아이들은 많이 부족합니다. 한글도 완벽하지 않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프랑스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영어나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의사소통을 하고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 정도지요.
하지만 제 아이들은 자존감이 꽤 높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힘들기만 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자존감 높은 아이들이 되었을까요?
다음엔 제 아이들의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커버사진 _ unsplash@giulia_bertel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