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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자존감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

by 선량
난 지안이 같은 아이 못 키울 것 같아.
너니까 키우는 거지. 엄마니까.



제 큰아이, 지안이는 유독 힘든 아이였습니다.

엄마 껌딱지에 낯가림도 심하고, 많이 울고 잠은 자지 않는, 일명 ‘예민한 아이’의 표본이었죠.

어른들이 물어보는 말에 대답도 잘 안 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던 아이.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의 기질과 환경적인 요인이 맞물려 나타난 증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다섯 살 무렵, 저희 가족은 방글라데시 치타공에서 다카로 이사를 가야 했어요. 남편이 직장을 옮기면서 지역을 옮기게 되었거든요. 남편이 다카에 가서 집을 구하는 동안 전 두 아이를 데리고 치타공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때 IS테러가 여러 번 나는 바람에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공포증이 생겨버렸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2층이었어요. 1층에서 마음만 먹으면 올라올 수 있는 위치였죠. 베란다엔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었어요. 문을 잠가도 유리창만 부수면 누구든 들어올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밤마다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어두운 곳에서 뭔가 나올 것 같았어요. 낮에는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지냈죠. 급기야 제 두 귀에서는 진물 이 흘러나왔어요. 귓속에 곰팡이 균이 생겼는지 미치도록 가려웠고, 진물은 흘러나와 딱지를 만들었습니다.

남편도 없고, 차도 없고, 메이드도 없었기에 병원을 갈 수도 없었죠.

아이들을 재워놓고 밤이 되면 홀로 앉아 울면서 기도를 했어요.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아이들에게 엄마의 공포증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다섯 살이었던 지안이는 알았나 봐요. 그 뒤로 아이는 어둠을 무서워 하기 시작했고 방안에 있으면 문을 꼭 닫았습니다. 여전히 어둠을 무서워 하지만, 문을 닫는 증상은 최근에 사라졌습니다.

또 한 번은 손 씻는 강박증이 생겼었어요.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면서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데, 전 울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스트레스 정도를 초과해 뇌가 자꾸 손을 씻어라는 잘못된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어요. 방글라데시에서는 병원에 갈 수 없었기에 집에서 치료를 했습니다.

30초마다 손을 씻는 증상은 3개월 정도 지나니 사라졌어요. 지금은 손이 더러워지는 걸 여전히 싫어하지만 강박적이진 않습니다. 정말 다행이죠.



아이가 워낙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강박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아이에게 푸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과외를 하지 않고, 여러 학원에 보내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예요. 저희에겐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게 더 중요했거든요.

다행히도 이런 것들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지안이는 여전히 엄마 껌딱지예요. 자기 눈에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엄마 뭐해?”라고 찾고 다닙니다. 안방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으면 꼭 안방에 들어와서 기다리고,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꼭 따라 나와 옆에서 놀아요.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녀요.

이런 아이는 엄마의 작은 반응에도 크게 받아들입니다. 엄마의 작은 칭찬, 어루만져주는 손길, 엄마의 눈빛에 반응을 합니다.

이런 엄마와의 시간이 부정적이진 않았나 봅니다. 그렇게 힘들기만 하던 아이가 언제부턴가 부쩍 크더니, 지금은 자존감이 꽤 높은 아이가 되었어요.

실수해도 많이 속상해하지 않고, 다시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아이가 프랑스 학교에 다녀서 좋은 점은, 공부를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프랑스어를 모르거든요. 가르쳐 줄 수가 없습니다. 책 읽기 숙제도 알아서 읽어야 하고, 받아쓰기 공부도 스스로 해야 합니다. 한 번씩 받아쓰기 연습을 함께 하다가도 엄마의 틀린 발음을 교정해 주느라 바쁩니다. 그리고 아이가 좀 틀려도 엄청 잘했다고 칭찬해줍니다. 제가 봐도 어렵거든요.



엄마에게서 받던 인정과 칭찬의 영역이 지금은 더 넓어졌습니다. 학교에서 친구와 선생님으로부터 듣는 인정의 말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있어요.


아이는 9살이지만 한글을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읽을 수는 있지만 한글을 쓸 때 맞춤법이 많이 틀리고 띄어쓰기도 잘 못합니다.

한 번은 근처 사는 한국 친구가 놀러 왔다가 지안이가 쓴 글을 보고는 한글도 못쓰냐고, 다 틀렸다고 지적을 했어요. 그런데 지안이는 아주 쿨하게,

“그거 대충 써서 그런 거야.”라고 하더군요.


한국 친구에게는 지적을 당하지만 학교에서는 다릅니다. 프랑스어 수업시간에 학교 선생님과 반 아이들에게 한글 이름을 써주었대요. 친구들은 너무 좋아하면서 한글로 써진 자기 이름을 들고 다니며 자랑을 했대요. 한글이 너무 멋지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 이후 지안이는 한글을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아이의 자존감도 쑥 올라갔죠.


외국 아이들은 종이접기를 잘하지 못합니다. 유독 한국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색종이를 가지고 놀고, 손도 야무져서 종이접기를 잘하죠.

지안이도 종이접기를 좋아해요. 혼자서 유튜브 보며 접기도 하고, 책을 보며 접기도 해요. 어려운 부분은 제가 가르쳐주기도 하고, 엄마한테 배운 종이접기를 혼자서 해보기도 합니다. 요즘은 색종이로 풍선을 만드는 것에 푹 빠졌어요.

요즘은 아침마다 색종이 몇 장을 가방에 넣어가서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에게 풍선을 접어주고 있대요. 어제는 담임선생님께 하나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 걸 처음 본 선생님은 너 혼자 접었니, 어떻게 했니, 대단하구나! 하고 칭찬해주었다고 합니다.

아이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구골만큼 사랑해.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를 닮은 아이가 있다는 것.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는 것. 두 팔을 벌리면 뛰어 와 내게 안긴다는 것. 온몸으로 안긴다는 것.
내가 지은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내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그 이름으로 살아갈 거라는 것. 그 아이가 온몸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 당신의 사전, 김 버금]



구골이라는 단위를 이 책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전으로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았어요.

구골은 수학 작가이자 교수였던 에드워드 카스너 박사가 만들었다. 그의 조카 밀턴 시로타가 구골보다 더 큰 숫자를 ‘구골 플렉스(googolplex)’로 명명했는데, “손이 아플 때까지 계속해서 1 뒤에 0을 써야 하는 숫자”라는 뜻이다.



아이를 내 품에 처음으로 안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작고, 연약한 아이였지만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아이였죠. 그 작은 손으로 내 검지를 꼭 잡고는 놓지 않았죠. 새근새근 숨소리에도 웃음이 절로 나지 않았었나요?

그 느낌을 기억하면서 아이들을 대한다면, 아이들은 분명 부모의 사랑을 느낄 것입니다.


나를 구골만큼 사랑해주는 아이에게 난 지금 무엇을 주고 있을까요?

내 아이의 20년 뒤, 내 아이의 아이를 생각하면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세요. 구골만큼 사랑하면서요.

(제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성격이 정반대인 딸아이의 자존감에 대한 내용입니다.


[ 커버사진_ 똥을 좋아하는 아들 그림_ 똥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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