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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프랑스학교의 견학 따라가기

내성적인 엄마의 한 걸음

by 선량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델리 프랑스 학교 초등 저학년은 1년에 네 번 견학을 갑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아이들이 함께 하는데, 아이들을 잘 인솔하기 위해 학부모 몇몇이 참여하기도 합니다.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엄마들이 몇 명 있어요. 학부모 대표 엄마와 몇몇의 프랑스 엄마들입니다. 하지만 전, 프랑스어도 못할뿐더러 친한 사람도 없어서 조금은 멀찍이 서서 보기만 하는 입장이었어요.


프랑스 엄마들은 같은 반 엄마라고 하더라도 친하지 않으면 먼저 말을 걸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라서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진 못했어요.

한번 관계가 형성되어 좀 친해지면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지만, 저는 타인과 관계라는 매듭을 맺기까지가 조금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한국 사람과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외국사람과는 오죽할까요....



이번엔 큰 마음먹고 견학을 함께 갈 학부모 명단에 신청했습니다. 초등 1학년인 소은이 반과 함께 가려고 했었지만, 이미 여러 엄마들이 신청한 상태였어요. 다행히도 2학년인 지안이 반에 한 자리 남아 있어서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소은이는 엄마가 저랑 같이 가지 않는다며 투덜이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아예 안 가는 것보다 이렇게라도 함께 가는 게 더 낫지 않냐 말했지만, 아이는 여전해 울상이네요. ㅎㅎㅎ 어쩌겠어요. 냅 두어야지요.



이번에 간 곳은 내셔널 뮤지엄이었어요.

커다란 관광버스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총 4개의 반이 함께 했는데, 아이들은 난리도 아니었어요.

지안이 반(CE1) 은 총 17명이었고 선생님 두 분과 저를 포함한 학부모 3명이 함께 했습니다. 엄마들의 할 일은 끊임없이 아이들 머릿수를 세고, 장난치고 있는 아이들 손을 이끌고, 엄한 곳으로 가고 있는 아이들을 정상 괴도로 데려오는 것이었어요. 정신은 없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그리고 지안이가 친구들과 끊임없이 장난치고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스케치북과 연필을 나누어 주었는데요. 그 스케치북 안에는 몇 가지 사진이 붙어있었습니다. 바로 내셔널 뮤지엄에 전시되어있는 작품의 사진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진은 온전한 사진이 아니라 잘린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관찰한 후, 어떤 작품의 사진인지 맞추어야 했어요. 그다음 사진의 나머지 부문을 직접 그리는 것이 오늘의 미션이었어요.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보며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그곳에서 티아의 엄마와 드디어 관계의 매듭을 지었습니다. 티아의 엄마 바바라와는 그동안 얼굴만 알고 지낸 사이었어요. 그녀는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더군요. 그리고 전 티아의 아빠가 인도 사람이란 것을 모르고 있었고요.

티아가 힌디 글자를 읽는 모습을 보며 한껏 칭찬해 주었더니, 티아의 엄마가 무척 기뻐하네요. 이제부터는 만나면 “봉쥬르”라고 인사할 수 있겠어요.


항상 그렇듯, 일상적이지 않은 일을 하기까지는 왠지 긴장이 됩니다. 위가 울렁이기도 하고 괜히 소변이 자주 마렵기도 해요. 몸은 마흔이지만 제 생각과 감정은 여전히 어리기만 해서 쉽게 위축되곤 합니다. 이번에도 그랬어요. 하지만 이겨내야 했습니다. 엄마니까요.

덕분에 지안이 반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지안이와 친한 아이들이 누구인지도 알게 되었고요, 무엇보다도 내성적인 제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는 것이 스스로 기특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지금은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 물속의 기름 같은 존재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잘 섞이게 되겠죠. 제 아이들처럼요.

그때까지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내디뎌보려고 합니다. 비록 내성적인 사람이라서 시간이 좀 오래 걸리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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