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야 비둘기야 박 씨 하나 물어 오렴!!
비둘기 한 쌍이 있었습니다. 자주 저희 집 베란다에 놀러 와 앉아있다가 똥을 잔뜩 싸 놓고 날아가곤 했어요. 주말마다 베란다 청소하느라 무척이나 힘들었죠.
이놈의 비둘기. 어떻게 하면 못 오게 할까? 곰곰이 궁리해 보았지만, 표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관했어요. 그냥 주말마다 열심히 청소하기로 했죠. 어쩌겠어요. 비둘기가 내 말을 알아들을 것도 아니고요.
지난주, 저희 건물 관리인이 집으로 찾아왔어요. 베란다 모서리 쪽, 우리 집과 아랫집 사이의 빈 공간에 비둘기가 알을 낳았고, 결국 부화되어 비둘기 새끼가 있다고요. 이것들이 남의 집 베란다에서 똥만 싸고 간 것이 아니었나 봅니다.
관리인은 비둘기가 그쪽으로 가지 못하게 철망을 설치해 준다며 사이즈를 측정해 갔습니다. 이틀 후 다시 와서는 철망을 설치해 주고, 빈 공간에 살고 있던 두 마리의 새끼 비둘기를 잡아다가 우리 집 베란다에 두고 가버렸어요. 그냥 우리 집 베란다에 떡하니!!! 어쩌라는 걸까요????
전 다시 관리인을 불러 새끼 비둘기를 가져가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 남편은 비둘기 새끼가 불쌍하다며 집에 있는 박스로 비둘기 집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그동안 비둘기 똥을 치운 사람은 저였거든요.
오늘은 남편이 베란다 청소를 하겠다며 열심히 청소를 하더군요. 아이들은 새끼 비둘기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전 짜증이 났습니다. 결국, 그 비둘기 뒤치다꺼리를 할 사람은 저뿐이라는 걸 알았거든요. 휴…….
남편은 집에 있던 쌀과 잡곡들을 가져다주고, 그릇에 물도 담아다 주었어요. 마치 비둘기 엄마처럼요. 그러면서 새끼들이 잘 먹지 않는다며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비둘기가 뭘 먹는지 검색하더니, 마트에 가서 옥수수 알맹이를 사야겠대요.
“비둘기 엄마가 먹이겠지. 별 걱정을 다 하네.”
그 뒤로 두 마리의 비둘기 새끼는 우리 집 베란다에 살고 있습니다. 엄마 비둘기는 새끼 비둘기들에게 먹이도 주고, 가끔은 옆에 앉아 새끼들을 지키고 있어요. 그리고 베란다 여기저기에 똥을 잔뜩 싸놓고 있네요.
주말을 맞아 베란다 청소를 했습니다. 열심히 쓸고 닦았어요. 비둘기 새끼들은 제가 무서운지 구석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엄마 비둘기는 건너편 집으로 날아가 저를 주시하고 있었어요.
“똥 좀 그만 싸. 요놈들아. 청소하기 엄청 힘들거든? 도대체 뭘 먹는데 이렇게 많이 싸니?”
청소를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베란다에서 삑삑~ 소리가 납니다. 요놈들 어느새 나와서 베란다에서 놀고 있네요. 몇 시간 뒤면 다시 비둘기 똥 천지가 될 것 같아요.
언제 날아갈까요? 설마 여기가 자기들 집인 줄 알고 계속 살진 않겠죠?
“제발 얼른 커서 훨훨 날아가거라. 그리고 박 씨 하나 물어 오렴. 박 씨를 심어서 쑥쑥 새싹이 자라고 꽃이 피고 큰 박이 열리면, 슬근슬근 톱질 한번 해보자. 그 안에 뭐라도 있었으면 참 좋겠구나. 2020년에는 행복한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구나.”
졸지에 비둘기 집사가 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