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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8. 2020

9. 인문학책은 읽지도못하고인터넷 뉴스만 봅니다.

조금 불편한, 선량한 에세이

해외에 살다 보면 인터넷 뉴스를 통해 한국 소식을 듣게 된다. 난 주로 “다음”뉴스를 보는 편인데, 가장 읽기 편하기도 하고, 한눈에 여러 가지 뉴스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약간의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 많아 기사를 읽다 열 받는 일이 적기도 하다.



다양한 칼럼을 읽어서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 볼 요량으로 “모두의 신문”어플을 다운로드하여 놓았다. 그 어플에 들어가면 우리나라의 진보 신문과 보수 신문, 스포츠 신문과 인터넷 신문까지 모두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매일 아침 종이 신문은 못 읽더라도 눈에 띄는 인터넷 칼럼은 꼭 읽으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매번 딱 한 신문만 주르륵 훑어보고는 꺼버리고 만다. 여러 종류의 신문을 읽어보면서 비교, 분석하려 했던 애초의 계획은 게으름과 무지로 작심삼일도 하지 못했다.

결국, 모두의 신문 어플은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야 하는데....’

하는 한 조각의 양심 때문에 삭제도 하지 못하고 있고, 난 매일매일 다음 어플에 들어가 기사를 읽는다.



어려서는 주로 연애 기사를 보았는데, 중년이 된 이후로는 정치, 경제에 대한 기사도 두루두루 읽고 있다.

공수처법 반대를 위한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라던지, 맹학교 학부모들과 주민들의 보수집회 반대를 위한 집회 기사라던지, 서울 집값에 대한 거품과 현실에 대한 기사를 읽는다. 물론 조국에 관련한 기사도 읽고 새로 임명된 추미애 법무부 장관 글도 읽는다. 몇 년 전에는 종종 댓글도 달았었는데 요즘은 참고 있다. 그저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하고 만다.

남편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며 읽지 말라고 하지만,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된 이후 사회와 정치를 모르고 그에 대한 소신 없이 쓴 글은 왠지 소금이 부족한 국물 같아서 아무리 맛있게 요리해도 1퍼센트 부족함을 느낀다.

은유 작가님의 책을 읽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분을 만난 적은 없지만, 그분의 쓰기의 말들은 내 글쓰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그러니까 인문학, 즉 인간 사회에 일어나는 일들에 무지하면 안 된다는, 내 만족을 위해 쓰는 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인문학을 위해 유명한 철학자들의 책을 읽고, 차라투스트라가 어떻게 말했는지 찾아보아야 하는데, 일단 철학적인 지식이 너무도 없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매일매일 인터넷 신문을 읽는다.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라도 제대로 알고, 생각하고, 나만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서.  




최근에 읽은 기사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기사는 어느 걸그룹 멤버의 어머니 기사였다. 그 기사의 제목은 이것이었다.

‘진정한 금수저 찬미’

그 기사는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렸을 적에 매우 힘들게 살았고, 미용실 원장님의 칭찬 한마디로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고, 미용사가 된 후에는 오 갈대 없는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 주기까지 했다는, 매우 훈훈한 기사였다.

그 전엔 관심도 없던 걸그룹이었고, 그 그룹에 찬미라는 아이가 있는지도 몰랐다. 얼굴도 모르는 걸그룹을 찾아보고, 그들의 노래를 유튜브로 들어보기까지 했다.  그 기사는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그 기사의 댓글 역시 칭찬일색이었다. 진정한 금수저라는 말부터, 훌륭하다, 멋지다, 이런 엄마가 있는 찬미가 부럽다 등등. 나 역시 그런 칭찬에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내 엄마가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미용실에 딸린 방에서 살았다고 했다. 날마다 찾아오는 청소년 아이들을 씻겨주고, 밥을 해주고, 잠도 재워줬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내 엄마를 빼앗겼다는 기분이 들었을 것 같기도 한데….

내 가족이 선량하고 착하면 불편함이 따른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의 선한 행실을 보면 칭찬을 하게 된다.


요즘 이슈가 된 또 하나의 기사는 양준일에 관한 기사일 것이다.  변함없는 소년 같은 외모와 그의 순수한 말들을 사람들은  칭찬한다. 그의 인성을 칭찬하고, 그의 겸손한 언어를 칭찬하며 열광한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아주 사소한 잘못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칭찬을 하고 열광을 하던 입들은 어느새 화살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대중은 유명인들에게 평균 이상의 성실함과 평균 이상의 정직함을 요구한다. 그것이 대중의 관심으로 살아가는 스타의 본분이라고 말한다.



남자 연예인들의 휴대폰이 해킹당하면서 과거의 메시지가 세간에 알려지는 일이 일어났다. 여자를 외모로 폄하하고, 평가하고.... 뭐 그렇고 그런 내용이라고 했다. 대중은 바로 등을 돌렸고 정직하게 생긴 그들을 향한 열광은 비난으로 바뀌었다.



몇 년 전, 남편의 남고 동창들의 밴드에 올라온 글을 보고 기겁을 한 적이 있었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남편은 말했다. 이런 애들 엄청 많다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고.


남성이  많은 직장, 남자아이들만 다니는 남고, 남자들만 있는 군대. 그곳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난 모른다. 하지만 저 남자 연예인들이 주고받은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부류의 개이적인 대화들이 아무런 문제가 아닌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범죄가 되는 시대이다.  


그래서 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 된다. 서로 장난치며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아이들에게, 장난이라며 똥침을 하는 아이들에게 심하게 야단을 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양성평등과 성인지감수성, 농담과 성희롱의 경계를 가르쳐야 하는 곳은 학교이지만,  출발은 가정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가 기사를 읽는 이유는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현상들을 인지하고, 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하기 위함이다.

내 아이가 선량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불량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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