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새로운 원고를 쓰기 시작한 시점은, 첫 책을 출간한 지 정확히 일주일 만이었다. 이 때라면 출간의 기쁨을 가득 누리고 있어야 할 시기인데, 난 그러지 못했다. 물론 기쁨도 있었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두려움이라고나 할까.
아는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뭐가 두려운지도 모르는데 심장이 두근거리고, 너무 무섭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두려움의 대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신체가 반응을 한다고. 그분의 말을 들으며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공황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내 두려움을 뭐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두 번째 책을 위해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자신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첫 원고를 투고하고, 기다리고, 계약서를 작성한 모든 과정은 멋 모르고 했던 일이었다. 그냥 무작정 나도 출간을 하고 싶고, 진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버텼다.
그런데 지금은 그 과정을 너무 알아버려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또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라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이 엄청나게 힘들다.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걸어준다면 앞뒤 안 보고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여러 출판사에 투고를 한 행동은, 내 본연의 성향을 깨고 나오는 일련의 탈피였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었고, 꼭 해야 하는 일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받아가며 원고를 쓰고 투고를 했던 것일까?
처음 글을 쓰기 전에는, 한 편의 원고만 다 쓰면 될 줄 알았다. 투고를 할 때는 출판사만 만나면 될 줄 알았다. 그리고 계약만 하면 다 될 줄 알았다. 퇴고만 끝내면, 탈고만 하면, 책이 출간만 되면 다 될 줄 알았다. 스스로 만족하며 풍성한 삶을 살아낼 줄 알았다.
출간 작가가 되긴 했지만, 난 여전히 글을 잘 쓰는 법 따위는 모른다. 아니, 내가 글을 잘 쓰는지조차 모르겠다. 남들처럼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글쓰기 특강을 열심히 듣는 것도 아니고, 글쓰기 모임을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내 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듣지도 못한다. 글쓰기 모임에 대한 갈망은 있지만 그 또한 선뜻 다가가지 못하겠다. 지금 내
위치가 딱 거기까지이다.
난 지금 누구와도 계약을 하지 않은 채, 다시 원고를 쓰고 있다. 누군가가 다가와 손 내밀어 주기를 기다리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새로운 원고를 완성하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과연 될까? 싶지만, 못할 건 또 뭐야?라는 마음으로 인내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책을 출간하고 가장 겁이 났던 건, 가족과 친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던 것 같다.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 나와 함께 같은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내 책을 읽고 혹시나 손가락질 하진 않을까? 등을 돌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오늘 방글라데시에서 정말 좋아했던 언니에게서 카톡이 왔다. 언니의 카톡을 받고, 두려웠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지고, 다시 글을 써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다면, 힘들었던 그 길을 주저하지 않고 다시 가 봐야 할 것 같다.
한 권의 책을 출간하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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