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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0. 2020

14. 마음격조사

[소설] 셀 게스트 하우스의 비밀

“저……. 혹시 노트북 있나요?”

“네? 아 네. 있어요.”

“저 잠깐만 쓸 수 있을까요? 제가 문서 작업을 좀 해야 하는데, 노트북을 안 가져왔어요.”

“네? 아니, 작가라는 사람이 노트북을 안 가져왔다고요?”

“아……. 네. 저도 이번이 처음이라, 특별히 필요 없을 줄 알았어요.”

“아, 잠시 들어오시겠어요?”

“네? 아, 저. 들어가도 되나요?”

. 제가 잠깐 인터넷을  하고 있었거든요. 잠시 들어오세요. 결제만 하면 끝나니까.”

,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설화는 강철의 손에 있는 종이 뭉치가 원고임을 알 수 있었다. 강철에게 받았던 호의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침대에 놓아둔 노트북을 책상으로 옮겼다. 강철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어디 가세요? 비행기표 내요.”

“아, 네. 이제 돌아가려고요. 생각보다 오래 있기도 했고요.”

“마야도 만났고요.”

“네. 그렇죠.”

그래서 문제는 해결됐나요?”


강철이 설화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설화는 강철의 직접적인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잠시 망설였다. 그리곤 이내 입을 열었다. 노트북 모니터를 향하고 있는 그녀의 눈이 살짝 떨렸다.


“네, 절반은요.”

“절반의 문제 해결이라……. 그럼 뭐 거의 다 된 거네요.”

“네?”

“아니 뭐, 절반 정도 성공한 거면, 거의 다 된 거죠.”

그런가요?  절반 밖에,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절반이나 했다’의 마음인지, ‘절반밖에 하지 못했다.’의 마음인지. ‘여기까지나 왔다.’인지, ‘여기까지 밖에 오지 못했다.’인지.

우리 인생이 그래요. 생각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져요. 조사 하나 바꿨을 뿐인데 긍정형이 되기도 하고 부정형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죠.”


설화는 비행기표를 결제하며 강철의 말을 되새겼다. 지금껏 얼마나 부정형의 삶을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좌절하고, 실망하고, 후회하면서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강철 씨는 그럼 모든 순간이 긍정형인가요? 그러니까, 후회하는 순간은 없나요?”

설화는 옆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강철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강철의 입이 지나치게 웃고 있었다.


“왜 없겠어요? 당연히 있죠, 사람인데. 저 얼마 전에 여자 친구한테 차였어요. 이게 대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아, 네.”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어요. 후회도 있고, 실패도 있죠. 누구나 겪는 일이죠. 중요한 것은 그걸 겪느냐  겪느냐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힘든 경험을 했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중요하죠. 어떤 마음격조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부정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는 거죠.

어떤 사람이   이겨내는지는   해도 알겠죠?”


마음격조사.

설화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느껴졌다. 저런 언어를 사용하는 강철의 원고를 무시했었다니.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원고들이 자꾸만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언제 돌아가나요?”

“아, 네. 이틀 뒤예요.”

“그렇군요. 그럼 내일밖에 시간이 없네요.”

설화는 노트북을 강철에게 넘기며 말했다. 그에게 고백할 시간은 지금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설화는 지금  순간 긍정의 마음격조사를 사용하고 싶었다.


“저, 할 말이 있는데요.”

“네. 무슨 말이신지…….”

사실은, ……. 바로 출판사에서 일했었어요.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강철 씨의  원고, 처음에  일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못하겠다고 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강철 씨의 원고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던  같아요.

질투가 났었던  같아요. 저도 글을 쓰고 싶었거든요.  글은  줄도 쓰지 못하면서 강철 씨의 원고를 비하했어요. 물론,  원고에 나온  게스트하우스 이야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미안했고, 고마워요. 그래서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싶어요. 제가 한국에 가기 전에요.”


쌍꺼풀 없는 강철의 두 눈이 웃고 있었다. 놀라지 않는 그의 표정에 설화는 잔뜩 긴장이 되었다.

“와,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네요. 이렇게 편집자를 나에게 붙여 주시다니. 안 그래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좀 힘에 부쳤는데, 잘 됐네요. 저 좀 도와주세요.”

강철의 가벼운 말투에 긴장됐던 설화의 얼굴이 부드럽게 이완되었다.

. 그럼, 같이 한번 볼까요?”


 

설화는 처음으로 편집자로서의 경험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조금은   같았다.

엄마에게 하루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상 자신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하며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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