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밖의 학교
초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기 전에 꼭 거쳐야 하는 일은 바로 입학식이다. 전 학년이 운동장이나 체육관에 모여 입학식을 진행한다. 새내기들은 걱정과 기대의 눈빛을 보내고,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반 배정이 되고 드디어 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을 만난다.
프랑스 국제학교에는 이런 입학식이 따로 없다.(대부분의 국제학교에 입학식이 없다.) 학교에 처음 오는 아이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낯선 눈동자를 굴리는 게 전부이다. 학부모들에게 어떻게 하라는 특별한 지시도 없다. 그저 눈치껏 알아서 아이를 교실로 들여보낼 뿐.
어떤 학교는 어셈블리 시간이라도 있다는데, 프랑스 학교에는 그런 것도 없다. 친절한 설명과 안내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덕분에 눈치만 잔뜩 늘었다.
이런 학교의 분위기는 친절과는 거리가 있어서 한국 사람들의 정서와 차이가 난다. 그래서 조금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프랑스 국제학교는 보통 유치원, 초등, 중등, 고등 과정이 한 학교에서 모두 이루어진다. 입학을 한 후, 학교를 옮기지 않는 한, 평생을 한 학교에 다니게 된다.
하지만 국제학교의 특성상 해외 주재원의 자녀들이 많이 다니고 있기에 매 해 전학을 오고, 가는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2학기가 시작될 무렵이면 학교에서는 설문조사를 하는데 다음 학년에도 자녀를 우리 학교에 보낼 것인지 물어본다. 그것을 토대도 대략의 학생 수를 파악하고 1년 계획을 세우게 된다.
부모님의 귀임이나 해외 발령으로 학기 중에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꽤 많은 편이다. 내 첫째 아이와 친하게 지냈던 아이 두 명도 6개월이 채 안되어 본국으로 돌아갔고, 둘째 아이 반에서도 이미 여러 명 떠났다.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더 많은 아이들이 떠날지도 모르겠다.
학교가 좋긴 하지만, 들고 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아이들의 우정을 유지하는 면에서는 많이 아쉽다. 특히 인도 현지 친구들은 친구들과의 이별 횟수가 갈수록 많아지니, 그 상실감은 더 한 것 같다.
한 인도 친구는 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너도 내년에 떠날 거니? 친한 친구들이 다 떠나버려서 너무 슬퍼. 너도 떠나면 정말 슬플 것 같아.”
그래서인지 이런 국제 학교의 졸업식은 꽤 의미 있고 특별하다. 특히 초등학교부터 계속 다닌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10년 넘게 한 학교를 다니면서 친해진 친구들, 어렸을 때부터 보아 온 선생님들과의 이별은 인생에 가장 특별한 순간일 수밖에 없다.
마음 같아서는 내 두 아이도 이 학교에서 졸업을 시키고 싶지만,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장담할 수도, 확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한 학교에 오래 다녀도 부모와 자녀가 만족하며 다니는 이유는 이 학교가 바로 국제학교이기 때문이다. 즉, 인도의 국립 학교가 아닌 제도 밖의 학교인 것이다. 인도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 이런 국제 학교가 있다. 한국에도 역시 프랑스 학교와 국제학교가 있다. 이런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아이는 외국인이거나 해외에서 이미 국제학교를 다닌 아이들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학교는 한국 교육제도에 해당되지 않는 제도 밖의 학교인 셈이다.
인도에는 여러 국제학교가 있다. 인도 현지 학교이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커리큘럼으로 교육하는 학교가 많다. 인도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서민 중에도 서민인 아이들이 다닌다. 중산층 이상의 아이들은 대부분 사립학교 또는 국제학교를 다니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서민 중 서민이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외국인이고, 국제학교에 다닌다. 회사에서 학비 지원이 되지 않는다면 언감생심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남들은 끔찍하게 가기 싫어하는 나라에(방글라데시에) 삼십 대 초반에 가서 지금은 사십 대가 되었다. 젊은 날 고생한 보람으로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며 프랑스의 교육제도 아래에 있으니, 약간의 보상을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한국에도 이런 학교가 시범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즉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하나로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아마도 국제학교나 해외의 학교 시스템을 따라 하려는 움직임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는 아무리 학교 시스템을
바꾸고, 교육 과정을 손 봐도 좋은 효과를 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을 생각해서 교육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보수와 진보 정당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는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한국의 교육은 다른 나라에 비해 공교육이 잘 되어 있다. 입학할 나이가 되면 알아서 입학통지서가 날아오고,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아동학대는 아닌지 면밀히 조사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급식도 무상이고, 교과서까지 다 나온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사교육은 끊이지 않고, 학생들 사이의 문제와 교사들의 자질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가져다 놔도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워킹맘의 빈자리를 대신해 주는 곳은 정부가 아니고 학원이니까.
아무리 초중고 교육제도를 고치고 대입시험을 절대평가로 봐도 학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대학교가 서열화되어있으며, 지방대 나온 사람을 무시하는 습성이 우리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으니까.
초, 중, 고를 공립화 하는 대신에 대학교를 공립화 하면 어떨까?
자신의 능력에 따라 사립학교를 보내던, 공립학교를 보내던 상관하지 말고 그냥 대학교의 서열화를
없애는 것은 어떨까?
똑똑한 인재들만 갈 수 있는 딱 하나의 대학만
제외하고 나머지 대학은 모두 같은 이름으로 만들면 어떨까? 서울에 있는 대학이나 지방에 있는 대학이나 학과만 다를 뿐 대학 이름이 같다면, 더 이상의
서열화는 사라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취업할 때 이력서에도 전공만 쓰면 될 텐데. 출신 학교는 아무 소용 없어지고 오로지 자신의 특기와 경험, 노력 유무로 취직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대한민국의 공교육 제도 밖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내 아이들은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 언젠가 한국에 가게 된다면 다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 제도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할지.
한국 교육의 제도 안으로 들어간다면 창의성은 잃게
되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능력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가서도 제도 밖의 교육(홈 스쿨링이나 검정고시 또는 대안학교)을 선택한다면 아이들의 창의성은 유지되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긴 힘들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 학교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졸업을 시켜서 어느 대학교든 보내는 것인데, 과연 그때까지 남편이 일을 하며 버텨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도 그 만의 삶이 있으니 참고 버티라고 차마 말 하진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