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꾸준히 걷기.
며칠 전, 교회에 갔다가 교회 요리사가 네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네팔이 저에게 특별한 이유는 안정적인 삶을 박차고 처음으로 멀리 떠났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도 했고요.
교회 요리사와 영어가 아닌 네팔 말로 대화를 나누었어요. 네팔을 떠난 지 12년이 되었지만 쉬운 말은 또 금세 기억이 나더군요.
아이들 학교 끝날 시간이 되어 픽업을 갔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해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아는 메이드가 보였어요. 소은이와 같은 반에 여자 쌍둥이 친구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을 돌봐주는 메이드였죠. 반갑게 인사를 하며 그들 옆에 앉았어요. 그 두 명도 네팔 사람들이었어요. 영어를 잘 못하는 그들에게 네팔 말로 인사를 하고 네팔 말로 대화를 했어요. 카트만두에 대해, 내가 일했던 병원에 대해, 그리고 네팔이 얼마나 멋진 나라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곳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제가 살았던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는 느린 나라들이에요. 유독 약속시간을 잘 지키지 않고, 한 없이 기다려야 하기도 하죠. 비자 때문에 속앓이를 하기도 하고, 금방 될 것 같은 일도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나라들이에요.
그래서일까요? 저도 조금은 느린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성격이 급해서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안달이 나던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오늘 아니면 내일 하면 되지 뭐. 이러고 있어요.
빨리빨리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쳐야 직성이 풀렸는데 요즘은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 이러고 있습니다.
빨리빨리 내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감사한 마음이고요.
빨리빨리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주식으로 번 만 사천 원에 기분이 참 좋습니다.
저랑 함께 병원 생활을 시작했던 동기들은 곧 있으면 20년 차가 됩니다. 그들 중 누구는 책임 간호사가 되었고, 또 누구는 병동에서 가장 높은 간호사가 되었어요. 그런데 전, 병원을 그만두고 손을 놓은 지 오래되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가끔 여전히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대단해 보여요. 그만큼 인정받으며 살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겠죠.
이미 집을 산 친구들도 많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우면서 병원 일도 하면서 취미생활도 하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제가 꼭 루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천천히 걸어서 인도까지 와서 살고 있는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삶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네팔을 떠나면서 언제 또 네팔어를 사용해 볼 수 있을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요즘 델리에 살고 있는 네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 살 때 벵골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었어요. 벵골어 통역사가 되겠다는 야심 찬 꿈도 꾸었지요. 하지만 그곳을 떠나면서 벵골어 역시 쓸모없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망하진 않으려고요. 네팔어처럼 벵골어도 언젠간 사용하게 될 날이 있지 않을까요?
브런치에 글을 쓴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처음엔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이야기들로 쓸 말이 너무도 많았어요. 그렇게 1년 동안 쓰고 나니 더 이상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내가 쓰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리고 전 여전히 글쓰기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 한 권 출간하는 것이 큰 꿈이었는데, 그걸 하고 나니 허무함이 몰려왔어요. 출간 작가가 되었지만 제 일상은 변한 게 전혀 없거든요. 여전히 느리게 걷고 있으니까요.
다행인 것은, 제 아이들과 남편이 끊임없이 소재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쓰고 있답니다.
10년 뒤에 내 모습은 어떨지 가끔 생각합니다. 10년 뒤면 50대가 되거든요. 그때도 똑같은 고민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아마도 지금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겠죠. 하지만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걸었던 걸음걸음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족한 글도 꾸준히 쓰다 보면 조금씩 좋아지겠죠?
조금 느리지만 꾸준히, 그렇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경험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