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의 역사

반항하는 건 아닙니다만.

by 선량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6 년의 시간 동안 내 머리 기장은 몹시 짧았다. 그래서인지 내 10대 시절의 사진을 들춰보면 하나같이 우울한 모습들 뿐이다. 남학생처럼 짧은 머리에 헐렁한 청바지. 언뜻 남자 신발처럼 보이는 투박한 운동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여성스러운 모습이 나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


당시 중. 고등학교는 두발 단속이 심했다. 허락된 머리 길이는 귀 밑 3cm. 선생님들은 자를 들고 다니며 머리 길이를 측정하기도 했다.


나는 단발머리가 지독히도 싫었다. 고개를 숙이면 커튼처럼 시야가 가려지는 것도 싫었고, 아침마다 발라당 까진 머리를 다시 만져야 하는 것도 귀찮았다. 귀 밑 3cm는 하나로 묶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짧게 자르고 다녔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난 사춘기를 크게 격지 않고 지나가는 중이었다. 내 위의 언니가 격동의 사춘기를 보냈기 때문에 나로선 숨죽여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였었나 보다. 겉으로 표출되지 않은 불안이 쌓여갔다. 어느새 내 손엔 가위가 들려 있었다. 그리곤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라버렸다.


자금 생각해보면 조금 섬뜩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머리카락을 내 손으로 자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렇게 들쑥 날쑥한 머리를 하고 학교를 다녔다.

가족들이 그런 날 보며 걱정을 하긴 했을까? 학교 선생님들은 그런 나에게 관심이나 있었을까?

난,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워낙 얌전했고 관심 밖의 아이였다. 10대의 나에겐 어른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숏컷의 역사는 20대가 되면서 끝이 났다. 20대가 된 후부터는 이상하게 여성스러운 모습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었다. 머리를 길러 염색을 했다. 다시는 머리를 짧게 자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이후 한 번씩 숏컷에 대한 열망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자를까? 말까?’

별것도 아닌 일에 고민을 하다 사십 대가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자르고 싶었다. 그냥 변화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또다시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한 것일까?



머리를 시원하게 자르고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출장 간 남편은 사진을 보더니 “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났다. 딸아이는 날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악~~~~” 지안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짧은 머리의 엄마를 처음 본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빤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엄마 너무 못생겼어.”

“한국 휴가 갈 때 까진 길까?”

“진짜 이상해.”


아이들의 관심을 한껏 받고 있으니, 성공이다.



3년 동안 길었던 머리를 싹둑 잘랐습니다.

그 이유는,

반항하려고 그런 건 아니고요.

머리가 너무 길어 감기도 힘들고,

샴푸도 너무 많이 쓰고,

환경오염을 너무 시키는 듯하고,

머리카락이 빠져 온 집이 엉망이고,

그리고 더 늦기 전에 꼭 하고 싶었습니다.

이게 마지막 숏컷일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일지, 모르겠지만.

못생겨졌다는 아이들의 말에

상처 받지 않고 씨익 웃어 보이며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어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니

왜 이렇게 남편이랑 닮아 보이는지요.

약 10년 동안 함께 살았더니

얼굴도 닮아가나 봅니다.

매인 사진은 뽀샵이 많이 들어간 거라

제 실물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또 인도에서 추억의 한 페이지를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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