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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아빠는 서로 사랑하는 거 맞아?

사랑은 표현하는 것.

by 선량

며칠 전 저녁이었어요. 전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저에게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엄마,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뭔데?”

“있잖아... 엄마랑 아빠는 서로 사랑하는 거 맞아?”

“엥? 뭔 말이야?”

“아니, 그냥 궁금해서.”

새침해진 딸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호호호.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는데, 아빠는 모르겠네. 아빠한테 한번 물어보렴.”



아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궁금해졌어요. 남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했고요. 그런데 아이는 아빠한테 물어보는 걸 금세 까먹고 콩콩콩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 치운 후, 온 가족이 따뜻한 안방에

모였어요. 남편은 베이스 기타 연습을, 나와 아이들은 책을 읽는 시간입니다. 그러다 문득 아이의 말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아이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습니다.

“소은아, 아까 궁금하다는 거, 아빠한테 물어봤어?”

“아, 그거 아직 안 물어봤어. 지금 물어볼까?”

“응. 엄마도 궁금하다.”

“그런데 아빠 있잖아, 아빠랑 엄마는 서로 사랑하는 거 맞아?”

남편은 허허허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랑하지. 그런데 그건 왜 물어봐?”

“그런데 왜 엄마 아빠는 서로 손도 안 잡고, 포옹도 안 하고, 뽀뽀도 안 해? 사랑하면 그런 거 하는 거잖아. 우리랑은 뽀뽀도 하고 포옹도 하면서.”

“.......”


순간 정막이 3초 흘렀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전 웃음이 터졌어요.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남편과 남편보다 2살 많은 연상의 아내인 저는 평소에 애정 표현을 자주 하지 않습니다. 서로 대화는 많이 하지만 그 외의 표현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잘하지 못했어요. 곧 있으면 결혼 10년 차가 되는데, 사랑한다는 말이나 포옹같은 표현은 왠지 낯간지럽죠. 다른 부부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전히 알콩달콩 신혼부부처럼 사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해서 부부 사이가 나쁘거나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게 되어 그의 말이나 행동 하나로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건 우리 둘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나 봐요. 딸아이는 그런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며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의 손을 잡아 본 지가 꽤 오래되었네요. 아이들만 남겨두고 단 둘이 외출하지도 못할뿐더러, 아이들과 함께 외출할 땐, 엄마는 “좌딸 우 아들”이, 아빠는 “좌 가방 우 쇼핑백”이 들려있으니까요.



“엄마랑 아빠가 포옹하고 뽀뽀하는 거 한 번도 못 봤어.”

아이의 말에 저 역시 조금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 정도로 애정표현을 하지 않고 살았나? 싶었지요. 얼른 남편 옆으로 가 앉았어요. 그리고 남편을 한번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내친김에 뽀뽀도 쪽 했지요.

“잘 봤지? 엄마랑 아빠는 서로 사랑하고 있단다.”


딸아이에게 남편이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도 너희들이 없을 땐 맨날 손 잡고 다니고 같이 놀고 그랬어. 그런데 너희들이 태어난 후, 너희들 돌보느라 그러지 못하는 거야. 너희들한테 엄마, 아빠 도움이 필요 없어지면 다시 엄마랑 아빠가 같이 다니고, 같이 놀고 그럴 거야.”




아이들에게 서로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싶어졌습니다. 부모의 모습은 아이들의 거울이니까요. 애정표현도 잘하지 않고, 무뚝뚝하기만 한 엄마 아빠를 보며 자란 내 아이들이, 나와 똑같은 모습이 될까 봐 살짝 걱정도 되었고요.


어제는 함께 외출했을 때, 얼른 남편 옆으로 가서 팔짱을 꼈습니다. 아이들이 다가와 제 손을 잡는 바람에 30초 만에 팔을 빼야 하긴 했지만요.

아침에 두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에 갈 때는 일부러 남편과 포옹을 했습니다. 아이들 보라고요.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졌습니다.



사랑해서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낳고 살다 보면 어느새 서로 서원해지기 마련입니다. “가족끼리 왜 이래?”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죠.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만큼 서글픈 말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아이들 덕분에 여전히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다. 애교가 넘치는 딸과 츤데레 아들에게 사랑의 표현 방법을 배우면서요. (물론 싸우기도 하고 삐지기도 하고, 짜증도 냅니다.)


이제 저도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며 살아보려 합니다. 아이들에게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요.

갑자기 변한 제 모습에 남편이 당황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설마 부담스러워하는 건 아니겠죠?


따뜻한 시선이 담긴, 남편이 찍어 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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