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뒷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유튜브를 통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이야기를 듣다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는 아이들용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이 있는데 작년에 한번 쭈욱 읽은 후 그냥 책꽂이에 방치해 놓았었다. 내용은 성인물 저리 가라이고 복잡한 신들의 관계, 어려운 이름들 때문에 솔직히 아이들에게 읽으라는 말을 하기가 조금 쑥스러웠다.
다시 그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신화 속에 숨은 상징과 은유를 직접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의 인문학적 지식도 쌓고 싶었다.
거실로 나와서 그리스 로마 신화 1편을 뽑아 들었다.
“엄마, 그거 읽으려고?”
“응”
“왜 갑자기?”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아이는 나를 따라 2권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내 옆에 나란히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며칠 전 “이태원 클래스”드라마를 보다가 부모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대사가 나왔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대요.”
‘부모는 아이의 거울’, ‘아이는 부모 하기 나름’ 이런 말들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이 참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집 밖에선 좋은 사람이지만 집 안에서는 내 진짜 모습이 나오고 만다. 아이들에게 손찌검 한번 안 할 것 같은 내가 매를 들고 살고, 아이들에게 차근차근 타이를 것 같은 내가 집에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가끔 큰 아이가 둘째에게 함부로 대하는 행동을 볼 때면 깜짝 놀라기도 한다. 내가 했던 행동 그대로 하고 있으니까.
과연 내 등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내 뒷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자꾸만 내 옆의 아이를 본다.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배웁니다. 사실 진짜 교육은 부모의 삶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내 아이를 위한 칼비테 교육법, 이지성/차이 정원]
부모라는 위치가 쉬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공감과 위로가 담긴 육아서를 읽고, 내가 가보지 못한 선배 육아 고수들의 경험담을 찾아 듣는다. 내 아이가 좀 늦되면, 내 아이가 좀 못하면 그게 모두 내 탓인 것만 같고 아이가 아프거나 힘들어하면 그 또한 엄마가 부족해서인 것만 같다.
모든 엄마들이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서”라는 변명을 하며 산다. 왜 이렇게 엄마들은 부담을 껴안고 살아야 할까?
아이의 내면을 튼튼히 하려는 대신 엄마부터 내면이 튼튼한 사람이 되시길. 일단 엄마의 내면이 튼튼해지면 아이는 저절로 튼튼하게 자랄 것입니다.
[내 아이를 위한 칼비테 교육법. 이지성/차이 정원]
아이가 아닌 나의 내면을 위해 오늘도 책을 읽는다.
유리 멘털의 엄마가 조금씩 단단한 내면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비록 순간순간 무너져 내리지만. 다시 한번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며 튼튼한 내면의 집을 만들어 본다.
‘좀 못해도 괜찮아. 좀 느려도 괜찮아. 좀 놀아도 괜찮아.’
이건 내 아이 보다도 엄마인 날 위한 내면의 소리이다.
며칠 전 중간 방학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닌다. 이방에서 저 방으로, 거실에서 부엌으로. 심지어 화장실까지.
내가 책을 보면 옆에 앉아 함께 책을 보고, 엄마가 컴퓨터를 하면 뭐 하냐며 신경을 쓰고,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면 쪼르르 따라 나와 옆에서 재잘거린다. 하루 종일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은 내 등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내가 겨우 그리스 로마 신화 책 한 권을 읽을 때 큰 아이는 줄줄이 다섯 권을 연달아 읽었다. 내용을 이해하는지 모르겠지만, 두 녀석이 같이 앉아서 징그럽네 어쩌네. 대화를 하고 있다. 다행이다. 책 읽은 엄마의 등을 바라봐주어서.
적당한 휴식은 아이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시켜줍니다. 에너지가 모두 방전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책을 열심히 읽어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내 아이를 위한 칼비테 교육법. 이지성/차이 정원]
둘째 아이가 방학 중 하루 계획표를 만들었다. 그런데.... 하루 중 공부 1시간(실상은 30분)이고 나머지 시간은 하루 종일 노는 시간이다. 계획표를 만든 후 매 시간 시계를 보면서 아주 정확하게 계획표대로 움직이고 있다.
내 아이는 휴식 중이다.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충전 중이다. 지겹도록 놀고 또 노는 중이다.
그리고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중이다.
엄마의 내면을 튼튼히 만들기 위해, 아이들이 곤히 잠든 밤. 조용히 거실로 나와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다 쓰면 드라마를 봐야 할 것 같다. 방학 동안의 시간은 너무나도 느리게 가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대끼고 있는 부모님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