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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26. 2020

결혼기념일의 상상과 회상

부부의 세계

“결혼 19주년 기념으로 둘이 데이트 왔어.”

여니 언니가 둘이서 찍은 사진을 단톡 방에 올렸다.

뒤이어 에스더 고모의 사진과 톡이 올라왔다.

“우린 29주년 기념으로 짐라인 타러 왔어.”

“우와~~29주년.... 난 며칠 전에 겨우 9주년이었는데....”

고모의 말에 홍 군과의 20년 뒤 결혼기념일을 상상해 보았다. 우린 과연 어떤 모습일까?




-20년 후 결혼기념일-


이 주 만에 그가 왔다. 얼굴은 볕에 그을렸지만  팔뚝 근육은 그 전보다 더 단단해진 것 같다. 그가 검은 봉다리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애호박이 좀 자랐기에 따왔어. 고추도 좀 있고.”

“아이고, 농부 다 됐네. 이제 안 죽이나 보지?”

“왜 이래. 이제 제법 일 잘해. 콩도 잘 자라고 있고.”

“그래, 다행이네. 그동안 죽어나간 작물 생각해서라도 잘 키워야지.”

“에이, 그런 말은 왜 하고 그러냐.”

“웃겨서 그런다 왜. 나이 들어서 뭔 고생이야.”

“꼭 살아보고 싶었던 삶이야. 당신이 글을 쓰고 싶어 작가가 된 것처럼 말이야.”

그는 커다란 배낭과 바리바리 들고 온 비닐봉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옷을 훌렁훌렁 벗더니 욕실로 직행한다.

“가방에 내 옷 좀 빼줘.”

“하고 있다.”

결혼기념일 선물이 애호박과 고추지만 뭐, 대수롭진 않다. 이때껏 값나가는 선물은 딱 한번 받아보았을 뿐. 그것도 15주년 때 벼르고 벼려서 받아 낸 목걸이, 반지 세트였다. 결혼할 때도 커필링 달랑 하나 했었다. 그땐 그게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이것저것 예물을 한답시고 돈을 낭비할 순 없었다. 둘 다 가진 것이 없었기에 커플링도 감사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게 너무 아쉬워지는 거다.

대단한 보석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반지와 목걸이 세트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가 처음으로 사 준 보석은 젊었던 시절에 독일로 출장을 갔다가 사온 목걸이였다.아주 작은 다이아가 대롱 거리는 물건이었다. 다이아 크기와 상관없이, 그가 날 위해 뭔가 사 왔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그런데 그 다이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큰아이 아니가 여섯 살 무렵이었을게다. 방글라데시에서 살다 잠시 한국에 휴가를 왔었다. 오랜만에 사촌 형아를 만나 잔뜩 방방 거리던 아니가 학원 가는 형아 뒤를 따라 집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 역시 외출할 생각이었기에 둘째 으니를 데리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언니 집은 4층이었다. 1층에서 아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아니는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었다.

“어이구. 왜 따라 나가서는.”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나갔다. 어, 그런데 아니가 없는 것이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 보았다. 아이가 없다.

“아니야~~~”

큰소리로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으니를 안고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혹시나 계단을 통해 다시 집으로 갔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4층까지 올랐는데도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 무렵, 어린아이가 아파트 단지에서 납치 됐다는 기사가 있었다. 손과 발이 벌벌 벌 떨렸다. 난

다시 위로 올라갔다. 아파트는 14층까지 있었다. 그런데 없다. 아이가 없다. 아이가 사라져 버렸다.

으니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빠~ 오빠~ 하며 울고 았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다 큰언니를 만났다. 반쯤 혼이 나간 내 모습에 언니의 눈이 커졌다.

“언니, 아니가 없어졌어. 없어. 갑자기 사라졌어.”

“관리실에 가서 방송해보자.”

언니를 따라 관리실로 향하려는 찰나,

저쪽에서 아니가 낯선 아줌마의 손을 잡고 내려오고 있었다. 폭포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설 수가 없었다.

큰안니가 아니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디 갔었어. 아휴 다행이네.”

아니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형아를 따라 내려갔던 아니는 1층에서 형을 놓쳤다. 형이 학원 버스를 타고 쌩 가버린 것이다. 아직 아파트 비번을 누르거나, 몇 동 몇 층 사는지 아무 개념이 없던 아이는 그냥 울고 있었단다. 그러다 지나가는 아줌마에게 말을 했다고 한다.

“아줌마, 엄마를 잃어버렸어요.”

그 아줌마는 아이를 데리고 방송이라도 해볼까 하고 관리실에 갔다가 사람이 없어 방송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오던 참이라고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아이를 찾아다니던 와중에 목걸이가 끊어지고 말았다. 작은 다이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너무 작아서 찾긴 힘들었다.


결혼 15주년엔 그래도 좀 더 큰 다이아가 박혀 있었다. 내년 20주년엔 뭘 해달라고 할까? 낯간지럽게

리웨딩 포토 같은 건 하기 싫다. 결혼식 사진도 내다

버리고 싶은데 똑같은 짓을 하고 싶진 않다.

둘이 조용한 곳에 여행이나 다녀왔으면 좋겠다. 해외에는 이제 싫고 제주도나 다녀올까?


그가 다 씻었는지 나와서 머리의 물기를 털고 있었다. 농사꾼이 된 지 5년 만에 그는 몰라보게 건강해졌다. 해외에서 일하느라 비쩍 말라가던 몸도, 한 번씩 불안해하던 그의 마음도.


전화가 울렸다. 찍힌 번호를 보니, 프랑스에 있는 으니인가 보다. 아니는 바쁜지 연락도 없는데 그래도 으니는 어찌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엄마, 결혼기념일 축하해.”

“그래. 고맙네.”

“아빠는?”

“응 방금 오셨어.”

“바꿔줘?”

“응.”

“그래, 잠시만.”

그가 활짝 웃으며 내 전화를 건네 받았다.

“응, 아빠야.”

“그랬어? 어허허. 장하네. 우리 딸.”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빠와 딸 사이는 참 돈독하다.

전화를 하고 있는 그를 거실에 남겨두고 주방으로 갔다. 쌀을 씻어 밥을 해야겠다.






“난 올해 49살이다.”

지니 언니의 말이다.

“유니는 39살이지 ㅋㅋㅋ”

“홍 군도 39살인데. ㅋㅋㅋㅋㅋ”

“이 집 저 집 아홉수가 많이도 있네.”

언니들과 한참 카톡 수다를 떨고 있는데,

“엄마~~ 배고파~~~”

10살 아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우리 라면 먹자.”

“엉~ 알겠어~”


휴대폰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갔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라면 3개를 빼놓고 각각 네 조각으로 나눴다. 지금은 넷이서 라면 3개도 충분하지만, 곧 4개를 끓여도 부족할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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